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한겨레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한겨레 자료사진

“무역 갈등도 두 정상이 밥 한번 먹더니 풀었잖아요. 양국 관계도 좋아지지 않겠어요?”

미국과 중국이 미래 패권을 건 심각한 전략적 갈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진단이 나오는데도 중국 베이징 중심가 궈마오의 ㅅ유학원 상담사(31)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지난달 19일 만난 그는 중국 경제가 성장하며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를 쏟아내기 바빴다. 갈등이 심화되면 유학생이 줄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도 “극히 일부 전공 말고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미국 대학의 학비 수입 4분의 1은 중국 학생들 돈”이라고 말했다.

광고

1·2위 대국 미국과 중국이 2019년 1월1일로 수교 40돌을 맞았다. 여느 때라면 워싱턴과 베이징에서 풍성한 기념 행사가 열릴 법하지만, 냉랭해진 관계 탓에 분위기는 조용하다 못해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다.

베이징 유학원 직원의 낙관과 달리, 문화 교류까지 유탄을 맞고 있다. 미국에서는 대학들에 설치된 공자학원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약 100곳 가운데 2018년 최소 6개가 폐쇄되거나 폐쇄 계획이 나왔다. 공자학원은 중국 정부가 중국 언어와 사상, 문화 전파를 목적으로 140개국에 500여곳을 운영하고 있다. 공자학원의 수난은 중화사상 중심 교육만 하고 심지어 ‘스파이 기관’으로 활동한다며 압박하는 미국 행정부 및 의회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광고
광고

미·중에게 지난 40년은 크게 봐서 공영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급성장한 중국이 국력에 걸맞은 영향력이 마땅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미국에서는 중국이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 편입을 거부할 뿐 아니라 그것을 위협한다는 시각이 팽배해지면서 대결의 시간이 본격화하고 있다. 당장은 지난해 개전하고 연말에 ‘90일 휴전’에 들어간 무역전쟁이 주요 전선이다. 중국이 △자동차 관세 인하(40%→15%) △대두 수입 재개 △미국이 비판하는 산업 정책인 ‘중국 제조 2025’ 수정 등 양보안을 내놓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지만, 해결 전망은 불투명하다.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의 멍완저우 최고재무책임자(CFO) 체포 사건처럼 어떤 돌발 변수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미국 내 분위기는 심각하다. 이를 명확히 드러낸 것이 지난해 10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허드슨재단에서 한 연설이다. 이 연설의 정서는 ‘거대한 실망’이었다. “소련 붕괴 이후 우리는 ‘자유로운 중국’이 필연적이라고 봤다. 낙관적 기대 아래 미국은 베이징이 미국 경제에 자유롭게 접근하게 하고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도 도왔다. 전임 정권은 중국 내의 자유가 경제뿐 아니라 정치 영역에까지 확장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중국을 도우면 미국과 함께 세계 질서를 유지할 ‘책임 있는 이해당사자’가 되리라는 기대가 무너졌다는 주장이다.

광고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깜짝 방중’으로 확고한 단계로 접어든 미-중 관계 정상화는 79년 국교 수립으로 결실을 맺었다. ‘죽의 장막’ 뒤에 있던 중국은 대만을 밀어내고 일약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고, 뒤이은 개혁·개방으로 경제의 가속 페달을 밟았다. 미국도 중국과 합세해 숙적 소련을 고립시킬 수 있었고, 중국의 엄청난 노동력 합류로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가 큰 활력을 얻었다. 무엇보다 미-중 화해는 소련 붕괴와 냉전 해체에 기여했다. 1985년 76억달러이던 미-중 교역액은 2017년 83배인 6352억달러(약 709조원)로 늘었다.

미-중 관계가 이렇게 발전하는 동안 국제 관계의 변증법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에는 중국의 위협이 커 보이기 시작했다.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도광양회)는 중국의 대외 정책 기본 방침은 의심받기 시작했다. 2013년 최고 지도자가 된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중국몽)을 내세웠다. 그해 6월 방미한 시 주석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태평양은 두 대국을 수용할 만큼 넓다”며 ‘신형 대국 관계’를 제시했다. 중국은 2015년부터는 남중국해 암초섬에 대한 군사기지화에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 재균형’ 정책으로 견제의 시작을 알렸다.

광고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2월 ‘국가안보전략’(NSS)을 통해 “강대국 간 경쟁의 시대가 회귀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지역과 세계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재주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엄청나게 쌓인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중국의 ‘정당성’을 문제삼고, 중국 국력의 토대인 경제를 공격하는 소재로 쓰기에 제격이었다. 이런 맥락이 지난해 무역전쟁 개시로 이어졌다.

2017년 11월 중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함께 자금성 계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17년 11월 중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함께 자금성 계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중의 전략적 대결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예측하긴 힘들다. 다만 냉전 시절 미-소 관계와 달리, 미-중은 거대한 국제적 분업 체제에서 상호 의존이 심화된 상태다. 단기적으로 중국은 미국의 요구를 일정하게 받아들이며 화해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중앙경제공작회의가 최근 발표한 ‘2019년 경제정책 운용방침’은 “무역 마찰에 온당히 대응한다”, “지난 정상회담의 공통 인식을 실시해 무역 협의를 실시한다”고 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양쪽이 합의 가능한 ‘공동의 가치’와 ‘상호 이해’의 틀을 만들지 못하는 한, 패권국과 도전국의 관계는 파국으로 이어진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한 발씩 다가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길윤형 기자, 베이징 워싱턴/김외현 황준범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