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러 7일 오전 일본 도쿄를 출발해 평양에 도착했다. 그는 이날 당일치기 4차 방북을 마친 뒤, 저녁에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방북 결과를 전할 예정이다. 이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실무만찬을 한다.
8월 말 취소 뒤 한달 여만에 이뤄진 폼페이오 장관의 이번 방북은 북한의 비핵화 초기 조처와 미국의 상응조처 사이의 ‘빅딜’ 성사 여부를 가를 중대 분기점으로 꼽힌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에 관한 윤곽이 나올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폼페이오 장관이 이번 도쿄~평양~서울~베이징 방문 비행기에 오르면서 한 발언들로 이번 방북에서 논의될 내용들을 짐작해볼 수는 있다. 우선 폼페이오 장관이 북-미 ‘신뢰 구축’을 언급한 게 눈에 띈다.
그는 지난 5일(현지시각) 첫 방문지인 일본으로 향하던 길에 경유한 앵커리지에서 동행 기자들에게 “우리는 (도달해야 할) 최종 상태를 안다. 그것은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4가지 요소로 제시됐다”고 말했다. 북-미 공동성명은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의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지향 △전쟁포로·실종자 유해 발굴·송환으로 이뤄져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를 위해서는 많은 필요조건들이 있다”며 “그 끝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조처들을 취할 수 있도록 쌍방이 충분한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뢰 구축’은 리용호 외무상이 지난달 2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일방적 핵무장 해제는 있을 수 없다”며 상응조처를 요구하면서 강조하는 등 북한이 미국에 해온 말이다. 물론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에 앞서 신뢰 구축을 언급한 것은 북한에게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행동을 요구하는 의도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강조해온 그가 “쌍방의 신뢰”를 입에 올린 점은 이채롭다. 북한이 핵심 시설인 영변 핵시설 폐기 의사까지 밝힌 만큼, 미국도 이번 평양 방문에서 한국전쟁 종전선언 등 일부 상응조처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있다. 북한과 미국 양쪽 모두 각각 제재 완화와 추가적 핵프로그램 폐기 등 ‘플러스 알파’를 요구할 수도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앵커리지에서, 신뢰 구축 차원에서 미국이 조처를 취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이미 했다”며 퉁명스럽게 반응하기도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 대화의 목표를 ‘서로 원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비핵화 진전에 전념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큰 틀에서 목표를 말하면 이렇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나와 내 카운터파트, 실무차원, 이 중 일부는 한국과의 왕래 등 많은 대화가 있었다”며 “임무는 각자(쌍방)가 진짜로 달성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방북에서도 김 위원장,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만나 서로 원하는 것과 내줄 것을 직접 확인하는 게 주요 목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번 방북에서 종전선언이나 핵프로그램 목록 제출 등이 다뤄질지를 묻는 질문에 “협상 중인 사안에 관해 말하지 않겠다”며 답을 피했다.
방북길에 오르면서 폼페이오 장관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시기·장소 윤곽이 나올 수 있다고 예고한 점은 긍정적 신호로 읽힌다. 그는 “다음 정상회담을 준비하려고 한다”며 “일정과 수송 문제 등이 복잡하다. 당장 확정될 것 같지는 않지만 최소한 장소와 시기에 대한 옵션을 진전시키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략적인 날짜와 장소는 나오느냐’는 질문에 “그러길 바란다”면서도 “아마 발표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두가 알고 싶어하지만 협상이라는 게 공개적으로 이뤄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당장 정확한 날짜·장소를 발표하지는 않더라도 미국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기정사실로 하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이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만나서 담판을 벌인 뒤 비핵화와 종전선언 등의 ‘빅딜 성사’를 선언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쪽으로 이미 방향이 잡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물론 최종적인 빅딜은 스티브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북한 쪽 카운터파트의 실무협상과 맞물려 향배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과거의 북-미 합의가 실패한 점을 거론하면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한 것은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는 “이는 우리가 완전하게 검증된, 불가역적 방식으로 비핵화에 도달하고 나서 북한 주민들을 위해 더 밝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약속을 실제로 이행하는 개념”이라며 북한의 비핵화가 선행돼야 함을 재확인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한반도 ‘평화협정’을 언급하며 중국의 참여를 명시적으로 밝힌 것도 눈길을 끈다. 그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중국·러시아 방문에 대한 질문에 “우리가 (북한 비핵화를) 잘 해내서 끝에 다다를 때 우리는 (한국전쟁) 정전을 끝내는 평화협정에 서명하게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 중국이 그 일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그들의 오랜 이웃인 중국과 이야기하려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종전선언 뒤 남-북-미-중이 참여하는 평화협정을 상정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미-중 무역갈등과 별개로 북한 문제에서 중국의 협력을 얻어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 방문 전날인 6일 도쿄에서 아베 신조 총리, 고노 다로 외무상과 만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FFVD) 원칙을 재확인했다고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이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아베 총리와 만나 “북한 방문에서 미사일, 생화학무기, 납북자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말했다고 국무부는 밝혔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