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 무인항공기

2004년 6월 어느날. 아프가니스탄과 접경한 파키스탄 연방부족자치구인 남 와지리스탄의 파슈툰 부족 반군 지도자 네크 무함마드는 위성전화로 서방 기자들과 인터뷰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하늘에서 맴도는 이상한 새 모양의 금속성 물체를 보았다. 24시간이 지나지 않아 미사일이 그의 은신처를 강타했다. 그와 소년 2명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죽었다. 파키스탄군은 자신들의 포격으로 이들이 죽었다고 발표했으나, 아라비아해에 떠있던 미해군 전함에서 발진한 무인기 드론(사진)의 소행이었다.

무함마드의 사망은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의 새 전쟁방식으로 채택된 드론전쟁의 본격적 시작이었다. 드론전쟁을 통해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정보기관에서 준군사조직으로 성격을 탈바꿈시켜, 정보수집과 공작보다는 전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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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는 자사 기자인 마크 메제티가 테러와의 전쟁 이후 중앙정보국의 비밀공작을 파헤친 탐사보도 저서인 <무력의 방법: 중앙정보국, 비밀군대, 지구 끝에서의 전쟁>을 인용해, ‘드론 전쟁’에 얽힌 비화를 7일 보도했다. 이 책에 따르면, 미국과 파키스탄은 무함마드에 대한 무인기 공격에 앞서, 파키스탄 영공에서 미국의 무인기 활동을 양해하는 비밀협약을 맺었다.

미 중앙정보국과 파키스탄 군정보기관인 아이에스아이(ISI)는 이 비밀협약을 통해, 파키스탄에서 모든 드론 활동을 비밀공작으로 수행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무인기의 미사일 공격 사실을 미국이 결코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파키스탄도 그로 인한 사망에 침묵한다는 뜻이다. 그후 미 중앙정보국은 미국 본토 버지니아의 랭리 본부에서 무인기를 컴퓨터로 조정하며, 기존과 전혀 다른 방식의 전쟁으로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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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은 연방부족자치구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부족 반군들을 미국의 힘을 빌려 제어하려 했고, 미국은 이 지역에서 피난처를 구하던 알케에다와 탈레반을 추적하려 했다. 특히 네크 무함마드는 당시 이 지역에서 세력을 급속히 확장해, 파키스탄 정부군이 굴욕적인 휴전협상을 해야 했던 골칫거리였다. 미국은 무함마드 제거를 미끼로 이 비밀협약을 체결한 셈이다.

미 중앙정보국이 드론전쟁에 적극 나선 데에는 체포한 테러범에 대한 비인도적 처우와 고문 등에 따른 국제법 위반 부담도 한몫했다. 테러범의 체포에서 살해로 아예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내부 보고서가 제출됐다. 1975년 제럴드 포드 당시 대통령이 시행한 요인 암살 등 비밀공작 금지 정책에 발목이 잡혀 있던 중앙정보국은 드론을 활용한 테러분자 추적과 사살을 전쟁행위로 규정해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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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전쟁은 중앙정보국의 정체성 혼선과 함께 심각한 도덕적 문제를 야기해, 미 행정부 안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드론전쟁을 기획·추진한 대표적 인물인 존 브레넌 중앙정보국 국장조차 중앙정보국이 정보수집과 분석이라는 전통적인 임무로 복귀해야 한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