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와 함께 지구촌 ‘여풍’ 이끌어
여성 참정권 획득 110년만의 쾌거 될까?
프랑스어로 대통령은 남성 관사를 붙여 ‘르 프레지당’(Le President)이다.
하지만, 내년에는 여성형인 ‘라 프레지당트’(La Presidente)가 더 자주 쓰일지 모른다. 세골렌 루아얄 프랑스 사회당 대선후보가 첫 여성 프랑스 대통령에 바짝 다가서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인 입소스가 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루아얄은 집권 대중운동연합의 유력 후보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과 맞붙었을 때 50 대 50의 숨막히는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측됐다.
시사주간 <뉴스위크>는 18일치 최신호에서 주목할 내년의 인물 19명 가운데 한 명으로 루아얄을 뽑았다. <뉴스위크>는 “프랑스가 그를 지켜봤지만, 이제 전 세계의 차례”라고 전했다.
미국에서는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 대신 최초의 ‘퍼스트 젠틀맨(first gentleman)’이 나올 수 있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2008년 미국 첫 여성 대통령 자리를 노리고 있다. 미국은 1984년 제럴딘 페라로가 여성 부통령 후보로 출마한 적은 있지만, 민주·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여성이 뽑힌 적은 없다.
10일 발표된 미국 시사지 <내셔널저널> 조사 결과, 워싱턴의 정치전문가 220명 가운데 69%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힐러리가 가장 유력하다고 꼽았다. 공화당 실력자였던 톰 딜레이 전 하원 원내대표는 12일 차기 대선에서 ‘대통령 힐러리-부통령 바라크 오바마’ 짝이 필승 카드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정치드라마 ‘커맨더 인 칩’에서처럼, ‘퍼스트 젠틀맨’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핑크빛으로 장식된 ‘퍼스트 레이디’의 방을 써야할지 모른다.
루아얄과 힐러리는 올 한 해 국제정치 무대에 불어닥친 ‘여풍’을 상징한다. 루아얄은 화려한 치마와 목걸이를 즐기며 자신의 여성성을 최고 전략으로 활용한다. 힐러리도 최근 자녀양육 관련 책인 ‘한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저서를 들고 여성이자 엄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
지난 달 미국에서 낸시 펠로시가 첫 여성하원 의장에 추대된 것도 2006년 ‘여풍’의 한 단면이다. 1월에는 미첼 바첼레트가 첫 칠레 여성 대통령에 당선됐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내년 상반기 유럽연합 의장으로 유럽을 지휘한다.
프랑스와 미국에서의 여성 대통령 도전은 여성 정치사에서도 한 획을 그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 참정권 획득의 어머니 수전 앤서니는 밧줄로 몸을 묶은 채 투표권을 요구했지만 “투표권 없이 투표했다”는 죄로 1873년 100달러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1893년 여성이 세계 최초로 뉴질랜드에서 참정권을 얻은 지 110여년 만의 쾌거가 될 것이다. 루아얄은 11월 사회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뒤 “프랑스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유석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공동대표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유력 여성 대통령 후보가 등장한 것은 서구사회가 민주화의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는 것을 상징한다”며 “과거에는 여성들이 주어진 선거권을 수동적으로 행사했지만, 이제는 여성들이 대통령에 당선될 만큼 참정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실질적 민주화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