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서 민간 구호트럭의 구호품을 받기 위해 몰린 팔레스타인 민간인 104명(가자 보건부 집계)이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숨졌다고 가자 보건부가 밝혔다. 이스라엘군이 배포한 사고 현장 공중 촬영 영상 중 일부 화면. AFP 연합뉴스
29일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서 민간 구호트럭의 구호품을 받기 위해 몰린 팔레스타인 민간인 104명(가자 보건부 집계)이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숨졌다고 가자 보건부가 밝혔다. 이스라엘군이 배포한 사고 현장 공중 촬영 영상 중 일부 화면. AFP 연합뉴스

구호품을 받으려 기다리던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이스라엘방위군(IDF)의 발포로 100명 이상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사이 휴전 협상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며, 가자지구 민간인 희생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가자 보건 당국은 29일 가자시티 서부의 나불시 교차로에서 구호품 배급을 위해 모여있던 민간인에게 이스라엘군이 총격을 가해 적어도 112명이 숨지고 최소 76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고 영국 비비시(BBC) 등이 전했다. 소셜 미디어에 공유된 현장 영상을 보면, 대형 트럭 근처에 주검들이 널려있는 참혹한 모습이 보인다.

이스라엘군은 인도주의적 통로 확보를 위한 경고 사격을 했을 뿐이며 다수는 군중 사이 혼란으로 압사했다고 주장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29일 저녁 브리핑에서 “트럭 배급품을 놓고 싸움이 벌어져 군중 수십명이 서로 짓밟혀 죽거나 다쳤고, 이를 본 이스라엘군은 인도주의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경고 사격을 해 해산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장을 찍은 영상을 보여주며 새벽 4시40분께 원조물자를 실은 첫번째 트럭이 왔는데 5분 뒤 군중이 트럭으로 달려들어 트럭이 움직일 수 없게 됐고 이스라엘군이 개입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스라엘군이 “군중을 향해 총을 쏘진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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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이 살상을 목표로 주민들에게 직접 발포했다. 모든 목격자들의 증언과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있다”고 반박하는 성명을 냈다.

비비시 방송은 팔레스타인 목격자 말을 인용해 사망자 대다수가 혼란이 발생하자 현장을 벗어나려던 트럭에 치여 발생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161명을 치료한 알아우다 병원의 모하메드 살하 원장 대행은 이 병원에 실려온 이들 대부분이 총상을 입은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인근 알시파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주민 카멜 아부 나헬은 음식을 나눠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밤중부터 트럭을 기다렸다며 에이피(AP) 통신에 당시 현장 상황에 대해 말했다. 나헬은 주민들이 밀가루 상자와 통조림을 트럭에서 내리자 이스라엘군이 군중을 흩어놓기 위해 발포했다고 말했다. 총성이 잦아들자 사람들은 다시 트럭으로 몰려갔고 이스라엘군은 다시 총격을 가했다고 말했다. 그도 다리에 총을 맞고 쓰러졌는데 트럭이 쓰러진 그의 다리를 밟고 지나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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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사회에서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다.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을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마무드 아바스 수반은 “이스라엘 점령군이 추악한 학살을 저질렀다”고 비난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요르단 등 주변 아랍 국가들도 일제히 규탄 성명을 냈다.

트럭 근처에서 구호품을 배급받던 팔레스타인 주민 100명 이상이 사망한 가자시티 서부 해안가 현장의 29일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트럭 근처에서 구호품을 배급받던 팔레스타인 주민 100명 이상이 사망한 가자시티 서부 해안가 현장의 29일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스테판 듀자릭 유엔 대변인은 성명에서 “일주일 넘게 구호품이 전달되지 못한 북부 민간인들이 이번 사망자에 대거 포함됐다”며 가자지구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시급하게 늘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충격을 “절박한 처지에 놓인 가자지구의 민간인들은 시급한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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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는 이번 사건에 대해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성명을 유엔 안보리에 제출했으나 미국이 반대했다고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이 전했다. 리야드 만수르 유엔 팔레스타인 대사는 안보리 이사국 15개국 중 14개국이 성명에 찬성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버트 우드 미국 유엔 차석대사는 미국은 반대했다며 “우리는 근거가 될만한 사실들을 모두 갖고 있지는 못하다. 그게 문제다”라고 말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오늘뿐 아니라 5개월간 너무 많은 무고한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망했다”면서 “현장 상황에 대한 상충되는 보고가 있다. 이스라엘 정부와 연락 취했으며 조사가 진행 중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오는 10일 이슬람 금식 성월인 라마단 시작을 앞두고 인질 및 휴전 협상이 진행되던 시기 이 같은 대형 비극이 터져 분위기는 다시 얼어붙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인질 석방과 휴전 협상이 결실을 보게 될지는 시기상조”라며 “완전한 승리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다”고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한편, 이날 가자지구 보건부는 지난해 10월7일 가자전쟁 발발 이후 가자지구 희생자 숫자가 지금껏 3만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