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대만 타오위안의 민진당 총통 선거 유세장에 라이칭더 후보와 동료들이 등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타오위안/이정연 기자
지난 6일 대만 타오위안의 민진당 총통 선거 유세장에 라이칭더 후보와 동료들이 등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타오위안/이정연 기자

9일 오후 3시18분, 대만 사람들의 스마트폰에 강한 경보음과 함께 “국가경보―중국 위성 발사”라는 긴급 메시지가 떴다. 중국어로는 위성이었지만, 영어로는 ‘미사일’이라고 표기됐다. 타이베이 원산구에 사는 장후이원(63)은 경보를 보고 크게 놀란 듯했다. “최근에 이런 경보를 듣거나 본 적이 없다. 선거를 앞둬서인가”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머잖아 언론이 쏟아내는 기사들과 시민들이 저마다 올리는 정보로 소셜미디어(SNS)가 들끓었다. 대만 총통 선거의 핵심 열쇳말 중 하나인 ‘중국’과 관련된 소식이라 어느 때보다 반응이 빠르게 쏟아졌다. 중국의 선거 개입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함께 현 대만 정부의 과도한 불안 조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대만 국방부는 이날 저녁 9시께 ‘미사일’이라는 표현은 잘못 쓴 것이라고 사과했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은 앞선 오후 3시께 쓰촨성 위성발사센터에서 ‘아인슈타인’이라는 새 천문위성을 창정 2호 로켓에 실어 쏘아 올렸다고 전했다.

13일 치러지는 대만 총통·입법위원 선거가 나흘 앞으로 다가오며 세계의 눈길이 대만에 쏠리고 있다. 대만은 지정학적으로는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불리는 미-중 전략 경쟁의 최전선이자, 지경학적으로는 티에스엠시(TSMC)를 거느린 세계 반도체의 핵심 생산기지이다. 대만의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은 반중·친미 정치색을 띠고 있고, 야당인 중국국민당(국민당)은 중국에 유화적인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대만 총통 선거가 미·중 대리전 성격을 띤다고 얘기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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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전역은 1900만 유권자의 기대와 희망, 긴장감 등이 뒤섞인 정치 축제의 장이 되고 있다. 대만은 4년에 한번 총통과 입법위원(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를 한날에 치른다. 총통 선거가 중시되지만, 국정을 이끄는 데 꼭 필요한 입법위원 의석을 하나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선거를 일주일 앞둔 6일 저녁, 대만 6대 도시 중 하나인 타오위안에서는 2㎞ 간격을 두고 민진당과 국민당의 유세전이 펼쳐졌다. 국민당 유세가 열리는 타오위안 라오제시역을 나서자마자 익숙한 노래가 크게 울려 퍼졌다. 한국 그룹 코요태의 ‘순정’이었다. 흥이 난 유권자들은 국민당 총통 후보인 허우유이의 얼굴 사진이 담긴 작은 깃발을 흔들며 유세장에 자리잡았다. “허우유이! 둥쏸(凍蒜·얼린 마늘이란 뜻이지만 중국어로는 ‘당선’과 발음이 같다)! 허우유이! 둥쏸!” 유세장 맨 앞 무대 위 진행자들은 쉬지 않고 ‘총통 당선’의 열망을 부채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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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가족과 함께 유세장을 찾은 황밍광(57)은 “더는 불안하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평화롭고 안전하게 가족들과 살아가고 싶다”며 국민당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밝혔다. 중국과의 긴장감이 높아지는 상황에 염증을 느끼는 유권자들이 국민당 유세장으로 몰렸다. ‘평안 대만’이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던 리는 “중국과 통일을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경제 교류는 빠르게 회복되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 6일 대만 타오위안의 국민당 총통 선거 유세장에서 지지자들이 대만 국기를 흔들고 있다. 타오위안/이정연 기자
지난 6일 대만 타오위안의 국민당 총통 선거 유세장에서 지지자들이 대만 국기를 흔들고 있다. 타오위안/이정연 기자

저녁 7시부터는 국민당 유세장으로부터 2㎞ 떨어진 곳에서 민진당 유세가 시작됐다. 대만 선거는 현직 총통이 유세에 나설 수 있는데, 이날 차이잉원 총통이 직접 나와 지지를 호소했다. 유세장 앞에는 민진당의 라이칭더 총통 후보와 샤오메이친 부총통 후보의 얼굴 사진과 구호 등이 담긴 기념품을 파는 노점이 늘어섰다. 라이 후보의 얼굴 사진이 담긴 머그컵을 든 천메이산은 “일주일 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다음 총통은 라이칭더”라며 “대만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메이더잉’(美德赢·샤오메이친, 라이칭더와 ‘이기다’는 뜻의 중국어를 합한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유세장에는 6만명이 몰렸다고 민진당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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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 총통이 무대에 서자 유권자들은 “쭝퉁 하오!”(총통 안녕하세요!)를 연호하며 반겼다. 차이 총통은 “우리는 세계에 대만의 민주주의, 진보를 보여줬다. 우리는 옳은 길을 걸어왔다”며 라이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또 “입법위원은 (국정 운영의) 엔진”이라면서 과반 의석 확보를 위한 정당 지지를 강조했다. 저녁 9시가 다 되어 등장한 라이 후보는 “우리에게 7일의 시간이 있다. 옳은 사람을 선택하고, 옳은 길을 걷자”고 말했다.

라이 후보는 근소한 차이로 허우 후보를 누르고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애초 라이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허우웨이룬은 “지지 후보가 없었는데, 텔레비전 토론회를 보고 지지를 결정했다”고 했다. 그는 “라이 후보는 토론회에서 정확하게 질문하고, 답했다. 다른 두 후보는 난감한 질문을 피하는 데 급급했다. 총통이라면 적어도 제대로 토론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민진당도 국민당도 싫은 유권자들은 대만민중당(민중당) 커원저 후보를 연호한다. 이날 국민당 유세장에서 민진당 유세장으로 이동하며 만난 택시기사 진펑은 “둘 다 아니다”라고 입을 뗐다. 그는 “민진당은 우리가 바라는 바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월급이 적어 괴로워한다”며 “국민당은 너무 늙었다. 나는 우리가 중국과 가까워지는 게 걱정스럽다”고 했다. 진은 “커원저가 타이베이 시장이었을 때 보여준 행보가 정말 마음에 든다. 매일 버스로 아침 7시 반에 출근했다. 이제까지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정치인은 없었다”고 했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등 각종 디지털 플랫폼을 적극 활용해온 커 후보는 20·30대 젊은 유권자 사이에 인기가 높다. 커 후보를 지지하는 허우팅(29)은 “대만에서는 중국의 공격보다 길거리의 차나 오토바이가 더 무섭다는 이야기가 있다. 중국이 대만 공격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텐데 ‘중국’에 대한 입장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기존 정치권에 염증이 난다”고 했다. 2020년 총통 선거 때는 중국이 가장 뜨거운 화두였는데, 이번 선거에는 ‘중국 피로감’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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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후보에 상관없이 유권자들은 ‘중국’과의 관계 설정보다 먹고사는 문제에 방점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 대만 국립정치대학 선거연구센터의 지난해 7월 조사를 보면, 대만인들의 절대다수(88.1%)가 중국과의 관계에서 ‘현상 유지’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달 6일 대만 언론 펑찬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이번 선거의 관심사로 경제를 꼽은 이가 74.3%였고, 내정(42.2%), 중국과 관계(39.5%) 등이 뒤를 이었다. 대만인 저우는 “대만의 일부 대기업은 세계적인 규모이지만, 젊은이들의 임금은 전혀 세계적이지 않다. 평화도, 민주주의도, 인권도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당장 월세를 내면 사라지는 월급을 보면 정치가 과연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지난 7일 오후 대만 타이베이의 다안삼림공원 입구에서 민중당 커원저 총통 후보의 선거운동원이 손팻말을 들고 거리유세를 하고 있다. 타이베이/이정연 기자
지난 7일 오후 대만 타이베이의 다안삼림공원 입구에서 민중당 커원저 총통 후보의 선거운동원이 손팻말을 들고 거리유세를 하고 있다. 타이베이/이정연 기자

타이베이 타오위안/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