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성추문과 부패 시비에도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콧대’가 주저앉았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13일 저녁 밀라노 광장에서 열린 집권 자유국민당 집회에서 연설을 마친 뒤 지지자들에게 사인을 해주던 중 마시모 타르탈리아(42)라는 남성이 던진 성당 모형 조각상에 얼굴을 정면으로 맞고 쓰러졌다고 현지 <안사>(ANSA) 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베를루스코니는 입술과 코 주변이 피범벅이 된 채 인근 병원으로 긴급이송됐으며, 컴퓨터 단층촬영(CT) 결과 코뼈 일부가 무너지고 치아 2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끔찍한 돌발상황은 고스란히 국영 텔레비전 전파를 탔다. 주치의인 알베르토 찬그릴로는 “(총리가) 얼굴에 큰 부상을 입었다. 윗입술의 상처는 봉합수술을 해야 한다”며 “완치까지는 수주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보좌관들과 동료 정치인들에게 “난 괜찮아, 난 여전히 건재하고 그들은 날 막지 못할 거야”라고 말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전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낸 그는 상처가 깊어 14일 입원을 하루 연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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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검찰은 조각상을 던진 타르탈리아를 현장에서 붙잡아 범행 동기와 배경을 수사중이다. 검찰은 타르탈리아가 범죄 전과는 없으나 지난 10년간 정신질환 치료를 받은 경력이 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정치권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총리에 대한 조각상 공격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베를루스코니 쪽은 이번 사건을 정치적 반대자의 소행으로 의심하는 반면, 비판 진영 일부에선 베를루스코니의 부적절한 처신과 부패 혐의가 자초한 사태라는 논평도 내놓아 미묘한 시각차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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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연정 파트너인 움베르토 보시 북부동맹당 당수는 “그들이 총리에게 한 짓은 테러리즘”이라고 비난했다. 중도좌파 성향의 제1야당인 민주당의 피에르 루이지 베르사니 총재도 “이건 말도 안 되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이탈리아 정치권 부패 수사를 이끌었던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 출신 검사인 안토니오 피에트로 이탈리아가치당 의원은 “총리의 부적절한 행동과 ‘난 개의치 않아’ 식의 태도가 이번 폭력사태를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인디펜던트> 온라인 기사에는 “그들은 내가 콜걸들과 잠자고 부패행위를 하는 것을 막지 못할 거야”라고 베를루스코니의 말을 패러디한 댓글이 붙었다.

이번 사태가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최악의 위기에 몰린 베를루스코니의 처지를 더욱 약화시키는 악재가 될지, 아니면 거센 역풍을 잠재우는 반전의 계기가 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베를루스코니는 잇따른 혼외정사 추문으로 거액의 이혼 소송에 걸려 있다. 그뿐만 아니라 탈세와 회계부정 등 부패 혐의가 잇따라 터져나오면서, 면책특권을 박탈당한 채 재판이 진행중이다. 최근엔 마피아 연루설까지 불거졌다. 지난 5일 로마에선 최소 10만명이 모여 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불과 두 달 전 68.7%에 이르는 지지율을 자랑했던 것과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