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에 사는 레베카 리(43)가 한국인 엄마 성을 이름에 쓰기로 했을 때 모두 놀랐다. 레베카 리는 “나는 네덜란드 입양아지만 온전히 네덜란드 사람이라는 느낌이 없었다”며 “몇 년 전 한국에 처음 갔을 때 모든 게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든 쉽게 이름을 바꾸지 않지만, 나는 이름을 바꾸고 더 온전한 나가 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얼마 전 남편과 이혼한 그는 이제 다섯 살 딸에게 엄마 성 ‘리’를 물려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아이가 아빠 성과 엄마 성이 함께 들어있는 이중 성을 쓰게 하고 싶어 한다. 그는 “딸이 한국인의 피와 네덜란드인의 피를 함께 물려받았다는 걸 알면 자랑스러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 이는 아이 아빠의 동의 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네덜란드에선 1811년까지 아이는 자동적으로 아빠의 성을 물려받았다. 1998년부터 엄마 성을 따를지, 아빠 성을 따를지 부모가 선택할 수 있게 됐다. 또 올해는 엄마와 아빠 성을 모두 쓰는 이중 성이 허용됐지만, 아이의 부모가 모두 동의할 때만 가능하고 이마저도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네덜란드에 아이에게 엄마 성도 함께 물려주고 싶어하는 여성은 레베카 리만이 아니다. 그런 여성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법정에 호소하고 있다고 영국의 가디언이 22일(현지시각) 전했다.
여성운동단체 ‘클라라 비히만’은 이런 여성들을 지원하고 있다. 클라라 비히만의 린데 브리크는 “이런 낡은 관습은 유럽 인권협약과 어긋난다”고 말했다. 그는 “법이 아빠의 성을 물려받도록 하는 체제에 서 있으며 엄마를 간접적으로 차별한다”며 “아이가 부모의 성을 모두 물려받아 이중 성을 쓰는 것이 기본값이 아닐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클라라 비히만의 문제제기에 많은 이들이 동조하고 있다. 송귈 무틀루어 노동당 의원은 이런 법체계가 전형적인 성차별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의회 질의에서 “여성은 배우자와 아이에게 누구의 성을 물려줄지 합의하지 못하면 원치 않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남성에 사실상 결정권을 주는 법체계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네덜란드 법무부 대변인은 무틀루어 의원의 질의에 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암스테르담 출신의 한 여성(46)은 “엄마 성을 세 살배기 딸에게 물려주는 건 중요해서 1심에서 전 남편에게 진 뒤 항소했다“며 “딸 아이도 평등한 권리를 위해 싸우는 건 중요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