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현지시각) 독일 헤센주 카셀대 학생회관 앞 공간. 대학이 지난 9일 이곳에 있던 ‘평화의 소녀상’을 기습 철거한 뒤 학생과 시민이 “소녀상을 되돌려놓으라”며 설치한 손팻말이 소녀상이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 대신 놓여 있다. 카셀/노지원 특파원
15일(현지시각) 독일 헤센주 카셀대 학생회관 앞 공간. 대학이 지난 9일 이곳에 있던 ‘평화의 소녀상’을 기습 철거한 뒤 학생과 시민이 “소녀상을 되돌려놓으라”며 설치한 손팻말이 소녀상이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 대신 놓여 있다. 카셀/노지원 특파원
15일(현지시각) 독일 헤센주 카셀대 학생회관 앞 공간. 대학이 지난 9일 이곳에 있던 ‘평화의 소녀상’을 기습 철거한 뒤 학생과 시민이 “소녀상을 되돌려놓으라”며 설치한 손팻말이 소녀상이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 대신 놓여 있다. 이날 오후 열린 대학의 기습 철거 규탄 집회에 참석한 시민이 소녀상 터를 바라보고 있다. 카셀/노지원 특파원
15일(현지시각) 독일 헤센주 카셀대 학생회관 앞 공간. 대학이 지난 9일 이곳에 있던 ‘평화의 소녀상’을 기습 철거한 뒤 학생과 시민이 “소녀상을 되돌려놓으라”며 설치한 손팻말이 소녀상이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 대신 놓여 있다. 이날 오후 열린 대학의 기습 철거 규탄 집회에 참석한 시민이 소녀상 터를 바라보고 있다. 카셀/노지원 특파원

따스한 볕이 드는 교정에 앉아 있어야 할 소녀는 온데간데없었다.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던 맨발의 소녀가 사라진 자리엔 “자유가 철거됐다”, “기억을 없애는 일은 가해자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것”이라 적힌 팻말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한때 이곳에 ‘평화의 소녀상’이 놓여 있었다는 사실은 그를 지키려 했던 학생·시민들이 그린 소녀의 그림으로만 짐작할 수 있었다.

세계 여성의 날(8일) 이튿날인 9일(현지시각) 독일 중부 헤센주 카셀시에 있는 카셀대는 학생 자치공간 앞마당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기습 철거했다. 이 학교 총학생회가 지난해 7월 한-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에 요청해 학생회관 앞에 세운 상이었다.

이 소녀상엔 ‘누진’(NÛZÎN)이란 이름이 붙었다. 쿠르드어로 ‘새로운 인생’이라는 뜻이다.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의 이름을 쿠르드어로 붙인 이유는 전시 성폭력이 한-일 양국 관계를 넘어서는 보편적·국제적 인권·식민주의의 문제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소녀상이 치워진 자리를 채운 안내문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이 운영한 위안소에 대한 내용이 더 많이 담겨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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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4시 카셀대 학생회관 앞 소녀상이 있던 빈터로 카셀대 학생과 독일 시민 등 100명이 모였다. 베를린 소녀상을 유심히 지켜봐 왔다는 괴팅겐 시민 자하(26)와 카셀대 학생인 리자(24)는 “소녀상을 제자리에 되돌려놓으라”라는 구호에 목소리를 보탰다. 카셀 현지는 물론 베를린·프랑크푸르트·함부르크 등 독일 전역에서 온 이들은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소녀상을 갑자기 없애버린 대학을 규탄하기 위한 집회를 열었다.

“해가 뜨기도 전에 소녀상을 철거했는지,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요. 주먹으로 얼굴을 맞은 것 같습니다. 마치 범죄처럼, 도둑맞은 것처럼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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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셀대 총학생회 간부인 라르스 셰퍼(25)는 아직도 소녀상이 지금 어디 있는지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 학교는 학생들의 대화 요청을 무시하며 여전히 철거에 대한 공식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대학 당국은 온라인 누리집에 소녀상 설치가 “한시적”이었고 “허가가 이제 만료됐다”는 입장만 내놓은 상태다. 셰퍼는 “총학생회는 소녀상을 되찾고 싶고,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15일(현지시각) 독일 헤센주 카셀대 학생회관 앞 공간. 대학이 지난 9일 이곳에 있던 ‘평화의 소녀상’을 기습 철거한 뒤 학생과 시민이 “소녀상을 되돌려놓으라”며 설치한 손팻말이 소녀상이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 대신 놓여 있다. 카셀/노지원 특파원
15일(현지시각) 독일 헤센주 카셀대 학생회관 앞 공간. 대학이 지난 9일 이곳에 있던 ‘평화의 소녀상’을 기습 철거한 뒤 학생과 시민이 “소녀상을 되돌려놓으라”며 설치한 손팻말이 소녀상이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 대신 놓여 있다. 카셀/노지원 특파원
15일(현지시각) 독일 헤센주 카셀대 학생회관 앞 공간에서 열린 대학의 ‘평화의 소녀상’ 기습 철거 규탄 집회에서 토비아스 슈노어 전 총학생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카셀/노지원 특파원
15일(현지시각) 독일 헤센주 카셀대 학생회관 앞 공간에서 열린 대학의 ‘평화의 소녀상’ 기습 철거 규탄 집회에서 토비아스 슈노어 전 총학생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카셀/노지원 특파원

지난해 총학생회장으로 소녀상 설치를 주도했던 토비아스 슈노어는 이날 집회에서 “(전시 성폭력은) 일본뿐 아니라 독일에서도 일어난 일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역사를 상징하는 것이 소녀상인데, 대학이 이를 없애려 합니다. 학생 자치공간에 세운 소녀상을 철거한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이날 집회에는 독일 좌파당 소속인 하이데 쇼이히파슈케비츠 헤센주 의회 의원도 참석해 “일본 정부가 자신들의 식민주의적 역사를 되새기고 싶지 않아 소녀상을 이곳에 세우는 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며 “대학은 소녀상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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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셀대가 학생과의 소통·협의 대신 기습 철거라는 ‘무리수’를 둔 배경에는 현지 일본 외교당국의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카셀대의 전·현직 총학생회와 코리아협의회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해 7월8일 소녀상이 설치된 뒤 일본 프랑크푸르트 총영사를 비롯해 일본의 우익과 시민들이 대학 총장과 부총장 등 총장단에 다양한 방식으로 ‘소녀상을 없애라’는 거센 압력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슈노어 전 총학생회장은 직접 받은 적이 있는지 묻는 말에 “나에겐 일본 교수 2명이 직접적으로 편지를 보내왔다”며 “응답을 하지 않으니 더 공격적으로 행동했다”고 말했다.

15일(현지시각) 독일 헤센주 카셀대 학생회관 앞 공간에서 열린 대학의 ‘평화의 소녀상’ 기습 철거 규탄 집회에서 제바스티안 엘러스 총학생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카셀/노지원 특파원
15일(현지시각) 독일 헤센주 카셀대 학생회관 앞 공간에서 열린 대학의 ‘평화의 소녀상’ 기습 철거 규탄 집회에서 제바스티안 엘러스 총학생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카셀/노지원 특파원

지난해 총학생회가 코리아협의회와 소녀상 영구임대계약을 체결했을 때 부회장이자 현재는 회장을 맡고 있는 제바스티안 엘러스는 이날 <한겨레>에 “대학이 학생회와 협의회의 영구임대계약 내용을 모두 이해한 뒤 교내 공공장소에 소녀상을 설치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 총장단은 지난 2월 말 총학생회에 소녀상 철거를 공식 요구한 뒤 9일 일방 철거를 결정했다. 학생들은 소녀상이 물리적으로 사라진 빈 공간을 보고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

집회 현장에 나온 한 교민은 “대학의 기습적인 소녀상 철거를 보니, 예전에 여성들이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간 역사가 떠올라 더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과 시민들이 소녀상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법적으로 대학이 교내 공공부지의 사용과 관련한 허가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소녀상이 시민 여론에 힘입어 철거 위기에서 벗어났던 것처럼 카셀대 소녀상의 운명은 앞으로 얼마나 많은 학생과 시민이 존치를 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현지 시민과 학생들은 ‘소녀상 지킴이’라는 이름으로 앞으로 매주 수요일 소녀상이 있던 자리에서 시위를 이어갈 계획이다.

카셀/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