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8일(현지시각)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에 미국 쪽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맨 오른쪽)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오른쪽 둘째), 중국 쪽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맨 왼쪽)과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왼쪽 둘째)이 참석했다. 앵커리지/AP 연합뉴스
지난 3월18일(현지시각)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에 미국 쪽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맨 오른쪽)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오른쪽 둘째), 중국 쪽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맨 왼쪽)과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왼쪽 둘째)이 참석했다. 앵커리지/AP 연합뉴스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 중국의 무력시위와 미국-대만 간 관계 밀착이 긴장의 상승곡선을 그리며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 안보 위협으로 인식돼, 상대방을 자극하는 행태로 이어진다. ‘안보 딜레마’의 전형적인 징표다.

중국의 역대 대만정책은 크게 두 갈래였다. 외교·경제적 수단을 통해 대만 통일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한 축이라면, 무력시위를 통해 대만 내 독립 여론을 꺾는 게 다른 한 축이다. 전자가 효력이 없으면, 후자로 무게중심이 쏠리기 마련이다.

지난 2016년 친독립 성향의 차이잉원 총통 집권 이후 중국은 대만의 외교적 고립에 집중했다. 차이 총통 집권 이후 모두 7개국이 외교관계를 끊으면서, 대만의 수교국은 단 15개국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차이 총통은 지난해 1월 역대 최고 득표수(817만여표)를 기록하며 압도적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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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압박도 마찬가지다. 2019년 8월 중국 당국은 대만에 대한 개별 여행 금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해 대만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는 전년 대비 7% 늘어난 1184만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올해 들어서도 중국은 지난 2월 말 수확철을 맞은 대만산 파인애플 수입을 전격 중단시켰다. 지난해 중국은 대만 파인애플 수출량의 95%에 이르는 약 4만톤을 수입한 바 있다. 하지만 중국의 금수조처 이후 파인애플 소비촉진운동이 벌어지면서,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일본 등지로 모두 4만8천톤가량이 판매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만 세관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대만-중국 교역 규모는 1660억2400만달러(약 184조원)로 대만 전체 교역량의 26.3%에 이른다. 반면 중국 교역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6%에 그친다. 중국 일각에서 대만과 경제적 탈동조화(디커플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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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가 있다. 대만에 중국이 최대 수출시장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만산 첨단제품에 대한 중국의 의존도 역시 무시 못 할 수준이기 때문이다. 실제 대만 대륙위원회가 발행하는 <양안경제통계월보> 최신판을 보면, 올해 들어 1~2월 중국 본토와 홍콩으로 수출한 대만 상품 가운데 62.5%가 집적회로·반도체 등 전기설비·장비·부품이다. 금액도 163억3천만달러(약 18조원) 규모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35.3% 늘었다. 미국의 제재 속에 중국이 섣불리 대만과 경제관계를 단절할 수 없다는 뜻이다.

외교·경제적 압박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면서, 중국은 최근 부쩍 군사적 압박에 골몰하고 있다. 특히 미국-대만 당국 간 접촉이 이뤄질 때면, 대대적인 무력시위가 일상이 됐다. 지난해 8월 앨릭스 에이자 보건장관이 대만을 방문했을 때, 인민해방군이 대만해협에 가까운 동남부 푸젠성에서 육군·해군·해병대가 참여한 대규모 통합 상륙작전 훈련을 진행한 것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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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정책 선회’의 기로에 섰다.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미국의 대만정책은 이른바 ‘이중 억지’가 원칙이었다. 대만을 겨냥한 중국의 군사행동도,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대만의 섣부른 독립 움직임도 미국의 억지 대상이다. 미-중 수교 직후 의회를 통과한 ‘대만관계법’은 이런 미국의 ‘현상유지’ 정책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만관계법은 그 조항만 놓고 보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경우 미국이 대만 방어에 나설 것이란 명확한 언급은 없다. 그렇다고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뜻도 아니다.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을 통해 현상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중국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대만을 포함한 동북아 일대에서 힘의 균형에 변화가 생겼다. 중국이 갈수록 노골적으로 미국의 ‘의중’을 떠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중국뿐이 아니다.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처지로 몰린 주변 일대 우방과 동맹국도 미국의 반응을 살피고 있다. 미국이 대만 방어를 포기한다면, 지역 패권을 중국에 넘겨주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귀환’을 강조하며 출범한 조 바이든 행정부로선 더 이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게 전략적으로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 미국 주재 대만 대표가 공식 초청된 이후, △대만 겨냥 무력도발 중단 촉구 △미국-대만 해안경비대 협력 양해각서 체결 △대만 당국자 접촉 확대 관련 지침 발표 등으로 이어진 미 국무부의 행보는 ‘모호성’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요동치는 정세 속에 중국의 ‘대만 침공 임박설’까지 등장했다. 크게 3가지 측면에서다. 첫째, 중국이 대만 무력통일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을 이미 갖췄거나 곧 갖출 것이란 평가다. 필립 데이비드슨 미 인도태평양 사령관은 지난 3월 퇴임을 앞두고 상원에 출석해 “중국이 향후 6년 안에 대만을 무력으로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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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압박 수위가 최근 급격히 높아졌다. 지난해 9월 이후 중국은 대만 서남부 방공식별구역(ADIZ) 침범을 사실상 정례화했다. 이달 들어서도 25일 현재까지 단 5일을 빼고 연일 대만 상공에 출몰했다. 특히 미국 ‘비공식 대표단’의 대만 방문 이틀 전인 지난 12일엔 최신예 전투기와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폭격기 등 공군기 25대가 투입돼 ‘실전 대비 훈련’을 벌였다.

셋째, 중국 대외정책이 최근 급격히 공세적으로 바뀐 것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인도 국경지대와 남중국해 분쟁 수역 일대에서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고,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홍콩에선 보안법 시행과 선거제도 개편을 통해 확고한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특히 홍콩 사태에 대한 미국의 대응 수위가 말뿐인 지지와 허울뿐인 제재에 그치면서, ‘홍콩 다음은 대만 차례’란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 내에선 강경론에 힘이 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 국방·안보 전문 싱크탱크 랜드연구소는 지난 19일 펴낸 <한반도와 대만 해협 억지의 현황> 보고서에서 크게 3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대만 일대에 군사력을 증강 배치해 미국의 대만 방어 의지를 분명히 한다. 둘째, 대만을 포함한 역내 우방과 동맹국에 대한 안보 수호 의지를 강조한다. 셋째, 대만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조처를 취한다. ‘전략적 명확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미 상원 외교위원회는 지난 21일 통과시킨 ‘2021 전략경쟁법안’에서 “대만 (무력)통일은 중국의 역내 패권 달성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규정했다. 또 중국의 영향력 확산 차단을 위한 대만 방어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40여년 유지돼온 미국의 전략 기조가 달라질 조짐이다. 중국은 이를 ‘적대행위’로 받아들 수 있다. ‘안보 딜레마’로 빨려드는 미-중 갈등 속에 대만이 위태로워 보인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