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한 이슬람국가(IS) 격퇴 전쟁이 전기를 맞고 있다. 방관하던 터키가 참전하면서 터키-시리아 국경지대에 ‘안전지대’를 설치하자는 터키의 요구에 미국이 동의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28일 터키의 요청으로 28개 회원국의 긴급회의를 열고, 이 사안을 논의했다. 나토 역사상 한 회원국의 요청으로 회원국 전원 비상회의가 열린 것은 5번째다.
중동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을 갖춘 터키의 참전과 안전지대 설치는 이슬람국가와의 전쟁에서 양날의 칼이다. 이슬람국가뿐만 아니라, 이에 맞서는 쿠르드족 무장세력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다. 터키의 이번 조처는 쿠르드족 견제에도 무게가 실려, 터키 안팎에서 쿠르드족의 무장투쟁을 격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양날의 칼, 안전지대 시리아 북부의 터키 접경지역에서 이슬람국가 세력을 축출해 ‘안전지대’로 만들자는 계획은 터키가 이슬람국가와의 전쟁 초기부터 요구해온 사안이다. 안전지대가 이슬람국가의 세력 확장과 외부 접촉을 막는 한편 난민들의 보호처가 될 것이라고 터키는 주장했다.
터키의 안전지대 설치 주장의 이면에는 쿠르드족 민병대 및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정권 견제 목적이 있다. 현재 이슬람국가와의 전쟁에서 가장 유력한 지상군 세력은 시리아의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다. 이들은 지난해 코바니에서 이슬람국가와 치열한 전투를 벌여 이 도시를 지켜냈다. 인민수비대는 터키 내에서 독립을 추구하는 쿠르드노동자당(PKK)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 시리아의 민주연맹당(PYD)의 군사조직이다.
터키는 인민수비대가 이슬람국가와의 전투를 통해 서방의 지원을 받으며 세력을 확장하는 것은 자국내 쿠르드족의 세력 신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하고 있다.
터키가 제안하는 안전지대는 사실상 인민수비대의 근거지이다. 이슬람국가 세력 축출을 명분으로 한 안전지대 설치를 통해 인민수비대 등 쿠르드족 무장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있다. 미국은 터키의 주장이 이슬람국가에 맞서는 인민수비대의 위축을 부르는 한편 시리아 아사드 정권에 대한 압박 쪽으로 전력을 분산시킬 것으로 우려했다. 하지만 지난주 이를 전격적으로 수용했다. 대신 터키로부터 인지를리크 공군기지 사용을 허가받는 한편 이슬람국가와의 전쟁에 적극적 역할을 하겠다는 확답을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안전지대는 유프라테스강 서안에서부터 약 109km 길이에 약 60km의 폭으로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안전지대는 시리아 반군이 치열한 전투 끝에 함락한 알레포와 연결된다. 안전지대가 알레포와 연결되면, 반군의 활동지역이 대폭 늘어난다. 또 인지를리크 기지에서 출격하는 미군 전투기의 작전 범위도 넓어져, 이슬람국가와 아사드 정부군 모두를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게 된다.
■ 이슬람국가 격퇴인가, 분쟁의 확산인가 터키는 지난 24일 밤과 25일 오전 시리아 접경지대의 이슬람국가 세력뿐 아니라, 이라크 접경지대의 쿠르드노동자당 무장세력도 폭격했다. 이 폭격으로 터키 정부가 2012년에 쿠르드노동자당과 합의한 휴전이 파기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사설에서 “쿠르드 분리주의 세력에 대한 터키의 폭격은 이슬람국가를 봉쇄하려는 새로운 노력을 저해할 것이다”고 평하는 등 서방 언론들은 일제히 우려를 나타냈다. 친정부 언론을 제외한 터키의 국내 언론들도 쿠르드노동자당 세력에 대한 공격은 터키를 내전으로 이끌 것이라고 일제히 비판하고 있다고 <비비시> 방송은 전했다. 인민수비대도 27일 터키군의 탱크가 터키 접경의 코바니에 있는 자신들의 기지를 폭격했다고 비난했다.
미국은 터키의 이런 조처들 앞에서 곤혹스러워 하면서도, 터키의 참전을 환영하는 쪽으로 분명히 방향을 틀고 있다. 브렛 맥거크 국무부 이라크·이란 담당 차관보는 터키의 쿠르드족 폭격과 관련해 미국이 한 역할이 없다면서도, 터키의 자위권은 인정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