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8일(현지시각) 프랑스 이시레물리노에서 국제박람회기구(BIE)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를 엑스포 개최지로 선정하자 사우디 대표단원들이 기뻐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11월28일(현지시각) 프랑스 이시레물리노에서 국제박람회기구(BIE)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를 엑스포 개최지로 선정하자 사우디 대표단원들이 기뻐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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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가 이탈리아 로마와 한국의 부산을 제치고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로 선정됐다. 한국 언론들은 “오일머니에 밀렸다”는 점을 일제히 부각시켰다. 정말 그것 때문이었을까? 지금보다 훨씬 경제력이 약했던 시절에도 올림픽과 월드컵을 유치한 한국이었는데 말이다.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교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파트너들의 이야기를 듣고, 엑스포에서 뭘 기대하는지 이해하고, 신뢰를 얻기 위해 무엇을 전달해야 하는지”에 집중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엑스포 유치는 “국제사회가 사우디에 보여준 신뢰의 표현”일 수 있다. ‘비전 2030’ 등등 탈석유 시대로 나아가겠다는 사우디의 야심찬 비전이 호소력을 얻은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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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의 캠페인을 분석한 미국 매체 ‘폴리티코’는 적극적으로 다른 나라에 ‘투자 기회’를 제시한 것을 득표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이탈리아는 사우디가 투표를 대가로 각국에 경제적 제안을 했다며 툴툴거렸다. 그런데 사우디가 표방한 것은 “세계를 위해 세계가 건설하는 엑스포”다. 석유 팔아 번 돈으로 당근을 주겠다고 한 게 아니다. 그 반대로 ‘투자하라, 돈 벌 기회를 주겠다’는 제안으로 세계를 움직였다.

프랑스 지지 이끌어낸 세련된 전략

‘오일머니에 밀렸다’고 하기엔 멋쩍은 것이, 경제 규모도 재정도 한국이 사우디보다 우위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전망을 보면 사우디의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조2500억달러, 한국은 3조1천억달러로 추산된다. 올해 한국의 예산은 640조원인데 사우디는 380조원이다. 사우디는 생각보다 돈이 없다. 재정은 늘 적자다. 지난해 7년 만에 흑자를 기록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고유가 덕이 컸다. 올해는 기름값이 떨어졌고 산유량을 줄여야 했다. 지출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 때문에 줄이기 힘든 형편이라 올해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사우디 재무부는 올해 재정 적자를 지디피의 2%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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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만한 왕실, 부패와 관료주의, 낮은 기술 수준에 꽉 막힌 사회 등등 사우디의 문제로 지적되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그럼에도 변화가 두드러진 것은 사실이며, 그 변화를 모티브로 사우디는 위상을 높였다. 2017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실권자로 득세한 이후의 변화는 눈이 핑 돌 정도다. 일례로, 5년 전까지 외국 관광객들은 들어갈 수 없었고 여성은 운전조차 할 수 없던 나라가 지금은 자동차 산업을 키우려 한다. 사우디 국부펀드인 공공투자기금(PIF)은 규모가 7천억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오일머니를 펑펑 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현대자동차와 함께 공장을 짓는데, 합작회사의 지분 70%를 사우디 국부펀드가, 현대차가 30%를 갖기로 했다. 공장 짓는 돈은 누가 낼까. 국부펀드가 ‘한국 돈을 빌려서’ 낸다. 국부펀드는 지난 28일 한국무역보험공사(K-SURE)가 지원하는 금융 신디케이트로부터 최대 50억달러의 텀론(분할상환 대출)을 받기로 했다. 사우디가 각국에 내미는 ‘투자 제안’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알아서 돈을 들고 와서 공장을 짓고 이윤을 내라는 것이다.

사우디는 1970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할 때부터 경제 다각화를 표방했다. 그 뒤 30년이 지나도록 성과가 별로 없었다. 2000년대에 외부에서 경제 동력이 등장했다. 이라크전쟁 뒤 고유가와 중국의 석유 수요가 성장의 기둥이 된 것이다. 2005년 세계무역기구(WTO)에 들어간 뒤 나름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외국인 투자 환경이 개선됐고, 인프라가 늘었고, 금융시스템도 좋아졌다. 2016년부터 탈석유 프로젝트를 본격화했다. 이번엔 성과가 가시적이었다. 국내총생산에서 석유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대 중반 40%대에서 2017년 이후 20%대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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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심쩍게 보던 바깥의 시선도 달라졌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성명에서 “사우디는 엑스포를 비롯한 주요 국제행사를 열기에 이상적인 장소가 됐다”고 했다. 작년 카타르 월드컵 때 서방 미디어는 노동 문제 등을 제기하며 헐뜯기 바빴지만, 카타르는 세계의 예상보다 훨씬 수준 높은 이벤트를 선보였다. 2021년 엑스포를 개최한 두바이는 올해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로 손님들을 불러모았다. 사우디는 엑스포로 리야드에 4천만명이 찾아오길 기대한다. 2034년 월드컵 개최는 거의 정해졌고, 올림픽 유치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번 엑스포 외교전은 사우디의 역량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보여줬다. 얼마 전만 해도 인권 문제로 비판받는 사우디가 엑스포를 열겠다는 것에 유럽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결정적인 반전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사우디 지지 선언이었다.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싶은 마크롱은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에 힘을 기울였고, 양쪽 지도자의 친밀한 행보가 이어졌다. 프랑스 기업들이 사우디 시장을 노리고 있는 것도 물론 중요한 요인이다. 올해 6월 무함마드 왕세자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 에어버스는 리야드항공과 초대형 계약을 맺고 싶어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우디는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를 살까 말까 저울질하며 ‘밀당 기술’을 발휘했다. 독일이 인권 문제를 들며 사우디에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를 파는 것에 반대하고 있는데, 프랑스를 끼워넣어 독일을 설득하려는 것으로 해석됐다. 38살 왕세자가 엑스포 외교를 알차게 활용해 몸값을 높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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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BTS·오징어 게임…

부산에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캠페인 자체에서도 사우디가 앞섰다. 6월 프랑스 방문 때 무함마드 왕세자는 대규모 수행단을 데리고 에펠탑 옆 전시장을 찾았다. 거기서 그는 국제박람회기구(BIE) 쪽 인사들, 각국 대표들과 2시간 동안 만났다. 레바논계 이민자 출신인 프랑스 외교장관,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 등과 대화를 나누며 지적이고 개방적인 이미지를 선보였다. 프랑스 홍보회사의 조언을 받아 큰 파티를 열고 코트디부아르 출신인 축구 스타 디디에 드로그바를 깜짝 초빙해 아프리카 대사들을 즐겁게 했다.

‘뉴욕타임스’는 한 해 동안 사우디가 이전에는 관계가 없던 나라들과 투자를 논의하고 외교관계를 만든 것에 주목했다. 사우디 대표단이 올해 5월 콜롬비아를 방문해 대사관 개설을 약속하자 콜롬비아는 엑스포 유치에서 리야드 지지를 선언했다. 이달 열린 사우디와 카리브해 국가들 간 첫 정상회의도 눈길을 끌었다.

반면 대통령과 장관들이 대거 나섰던 한국의 캠페인에 대해서는 외국 언론들의 보도가 많지 않다. 폴리티코는 “케이팝 스타 싸이와 방탄소년단이 부산을 홍보했고, 윤석열 대통령이 삼성과 엘지 등 대기업 경영진의 호위 속에 파리를 찾았다”고만 적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은 ‘오징어 게임’ 스타 이정재와 방탄소년단을 홍보대사로 임명하는 등 총력을 기울였다”고 소개했다.

홍보 영상에서 사우디는 네옴시티 등 미래형 메가프로젝트에 초점을 맞췄다. 사우디를 “진보와 지속가능성의 등대”로 묘사한 대목에서 비판적인 이들은 실소를 자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검투사 차림을 한 배우 러셀 크로를 내세운 로마, 싸이와 방탄소년단을 계속 불러낸 부산보다 메시지는 더 효과적이었을 수 있다. ‘케이(K)-컬처’가 세계를 휩쓰는데 홍보에서조차 사우디에 밀린 것은 그저 기술적인 문제였을까, 국가의 비전이 있고 없음에 따른 근본적인 문제였을까.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신문기자로 오래 일했고,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10년 후 세계사’ 등의 책을 냈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