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고 차베스(52)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올 한 해 지구촌을 풍미한 ‘문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미국 등 서방으로부터 ‘포퓰리스트(인기 영합 대중주의자)’ ‘독재자’ 등 갖은 비난을 받았지만, 이달 초 대선에선 60%가 넘는 지지율로 ‘뚝딱’ 3선에 성공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포퓰리스트인가 볼리바르주의자인가?=그에게는 인기를 위해 오일머니를 뿌리고 다니는 포퓰리스트란 비판이 늘 따라다닌다. 올해 빈곤층을 위한 사회보장비로 8억5700만달러를 책정했지만 10월까지 무려 70억달러를 사용했다고 미국 일간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은 보도했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현지에서 베네수엘라를 연구 중인 미 사회학자 그레고리 월퍼트는 4일 미 독립매체 <데모크라시나우>와 인터뷰에서 “오일머니가 차베스 인기의 중요한 요인이지만 참여 민주주의 도입이라는 다른 요인도 있다”고 분석했다. 2000년 재선 뒤 토지·노조개혁 등을 단행하고 공동경영과 공동체의회 확대를 통해 노동자와 지역민의 참여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르몽드> 기자인 르노 랑베르는 <르몽드디플로마티크> 9월호에서 1998년 1000여개이던 협동조합이 올해 초 10만여개로 증가했고, 전국에서 지역민들이 참여하는 공동체의회가 수천개 출범했거나 출범 중이라고 보도했다. <가디언>의 전 남미 특파원 리처드 고트는 그를 ‘민중의 호민관’으로 불렀다. 그가 중남미 통합과 민중의 정치 참여를 주창한 ‘중남미 독립의 아버지’ 시몬 볼리바르의 계승자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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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민족주의 약발 있나?=그가 4월 자원국유화를 선언하자 서방은 자유무역주의에 위배한다며 강력 반발했다. 하지만 자원국유화 선언에도 많은 서방 기업들이 베네수엘라의 유전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현지 온라인 매체인 <브이헤드라인닷컴>은 4월 보도했다. 세금이 인상되고 고유가가 지속하기만 하면 기업의 순익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미국 엑손모빌이 일부 유전에 대해 국유화 계약을 포기하자, 스페인의 렙솔이 이를 차지했다.

차베스 계속 잘 나갈까?=미 사회학자 월퍼트는 그의 ‘21세기 사회주의’가 완성되려면 두 가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나는 미국 정부와 반대파 등 외부적 요인, 그리고 다른 하나는 1인 권력집중에 따른 부패다. 미 싱크탱크인 인터아메리칸다이얼로그의 마이클 시프터는 <포린어페어스> 5월호에서 “베네수엘라 경제는 석유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유가가 하락하면 차베스 정책은 지속가능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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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좌파 도미노 어디까지?=중남미에선 올 한 해 동안 6명의 좌파 정치인이 집권 또는 재집권에 성공했다. 니카라과에선 사회주의 혁명 지도자였던 다니엘 오르테가가 16년 만에 재집권했고, 브라질에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가 재선에 성공했다. 에보 모랄레스(볼리비아), 미첼 바첼렛(칠레), 라파엘 코레아(에콰도르)도 대선을 통해 좌파 대통령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좌파라고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를 따르는 룰라와 바첼렛이 중도좌파라면, 차베스와 모랄레스는 반미와 자주를 강조해 좀더 급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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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중남미에 불어닥친 좌파 바람은 80년대 유입된 신자유주의적 시장모델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제 위기와 관료들의 부정부패, 빈부격차의 심화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새 정치세력을 강력히 희망한 것이다. 하지만 좌파 도미노가 중남미의 경제통합을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과, 사정이 제각각이어서 이른바 ‘좌파 시너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