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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미국·중남미

보편복지냐 선별복지냐…바이든 3조5000억달러 예산안은 어디로

등록 :2021-10-11 17:31수정 :2021-10-12 02:35

바이든 핵심 의제 담은 대규모 예산안
사회안전망 확대, 기후변화 대응 담아
민주당 내 중도파 반대로 절충 시도
1조5000억~3조5000억달러 사이 예상
민주당 지도부, 10월말까지 처리 목표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 3일(현지시각) 미국 민주당의 중도파인 키어스틴 시너마 연방 상원의원(애리조나)은 자신이 강의하는 애리조나주립대에서 진보단체 활동가들의 ‘습격’을 받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하는 3조5000억달러(약 4200조원) 규모의 사회복지 예산안을 지지하는 활동가들이 카메라를 들이댄 채 화장실까지 쫓아가 협조할 것을 압박한 것이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활동가들의 무리한 행동을 비판하는 성명 초안을 만들어 의원들의 동참을 유도했다. 그러자 미 ‘진보진영의 대부’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무소속)이 ‘민주당 지도부는 시너마 의원이 3조5000억달러 예산안을 지지하기를 희망한다’는 취지의 문장도 성명에 함께 넣자고 요구했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서명하지 않았다. 결국 진보단체 비판 성명은 없던 일이 됐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이 일화는 바이든 대통령이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 중인 3조5000억달러 사회복지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민주당 내부의 날카로운 힘겨루기를 보여준다. 민주당은 지난 8일 공화당의 협조로 12월 초까지 임시로 연방 부채한도를 4800억달러 늘림으로써 이달 중에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가 닥치는 것을 막았다. 급한 불을 끈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는 내부 이견을 조정해가며 1조20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예산안’과 3조5000억달러 규모의 ‘사회복지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

민주당이 처리하려는 예산안은 다리·철로·공항·항만·수로·전력·광대역통신망 등을 확충하려는 인프라 예산안과 사회복지 확대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예산안 두가지로 나뉜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 세대에 한번 있는 투자”라며 야심 차게 꺼내든 대규모 물적·인적 인프라 확충 계획이다. 미국이 전통으로 유지해온 ‘작은 정부’ 노선을 버리고 ‘큰 정부’로 선회해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을 이뤄내려는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적 야심이 담겨 있다. 과감한 재정지출과 복지확대를 뼈대로 하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뉴 딜’이나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 정책에 비교되기도 한다.

이 가운데 인프라 예산안은 민주당과 공화당 합의로 지난 8월 상원을 통과해 하원 처리를 남겨두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애초 2조2500억달러 규모의 초대형 인프라 투자 계획을 내놨으나, 두 당의 초당파 의원들이 공통분모를 찾아내 1조2000억달러 규모로 합의를 이뤘다. 하원 다수당인 민주당은 이 인프라 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킬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 내 진보파 의원들은 사회복지 예산안 처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인프라 예산안도 통과시키지 않을 것이라며 당 지도부와 중도파를 압박하고 있다. 결국, 사회복지 예산안이 논쟁의 핵심인 것이다.

‘인적 인프라’ 예산안이라고도 불리는 3조5000억달러 안은 향후 10년에 걸쳐 보육·교육·보건 등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메디케어(65살 이상 의료보험)의 적용 범위 확대(치과·시력·청력까지), 3~4살 무료 유치원, 양육보조금 지원, 아동 세액공제 2025년까지 연장, 커뮤니티칼리지 2년 무상 교육, 12주 유급 가족·의료 휴가, 처방약 가격 인하 등이 들어 있다. 또 화석연료에서 풍력·태양력·원자력으로 전환하는 전기회사들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지역사회에 태양광 패널이나 전기차 충전소 설치를 지원하는 등 기후변화 관련 내용도 담겨 있다.

민주당은 필요 재원을 ‘부자 증세’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법인세를 현행 21%에서 26%로 올리고, 연 40만달러 이상 소득자의 최고 소득세율을 37%에서 39.6%로 인상하며, 자본소득에 대한 최고 세율도 20%에서 25%로 올릴 계획이다. 이를 거쳐 향후 10년간 2조달러 이상의 세수 증가를 예상하고 있다.

공화당은 이 예산에 반대하고 있다. 코로나19 경기부양책 등으로 재정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추가적인 대규모 지출은 재정적자를 키우고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의 성과 달성을 방해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있다.

결국, 민주당은 사회복지 예산안을 공화당의 협조 없이 처리해야 한다. 민주당은 이를 위해 상원 예산조정(Reconciliation) 절차를 활용할 계획이다. 상원에서 소수당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무력화하려면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60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예산과 관련해 특정한 경우에만 쓸 수 있는 이 절차를 활용하면 단순 과반(51명)으로도 처리가 가능하다. 현재 민주당(무소속 2명 포함)과 공화당 상원의원이 각각 50명인 상황에서, 민주당 전체가 찬성하고 당연직 상원의장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가세하면 51명으로 의안을 가결할 수 있다.

하지만 당 내 다수인 ‘진보파’와 소수인 ‘중도파’가 ‘보편복지’와 ‘선별복지’ 논쟁을 벌이며 충돌하는 등 의견 통일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진보파의 주축은 샌더스 상원의원(무소속·버몬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 의회 진보코커스 대표인 프라밀라 자야팔 하원의원(워싱턴주) 등이다. 대척점에는 중도파를 대표하는 조 맨친 상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과 시너마 상원의원이 버티고 있다. 민주당이 상원에서 보유한 다수당(51 대 50)의 지위가 매우 취약하다 보니 맨친·시너마 의원 단 2명이 반대하는데도 법안을 밀고 갈 수 없는 상황이다.

맨친 의원은 “미국을 재정 혜택 사회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부자들은 제외하고 손길이 꼭 필요한 이들에게 ‘선별적’으로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메디케어 확대를 두고도 “2026년이면 신탁기금이 파산할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기금의 건전성부터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회복지 예산안 규모를 1조5000억달러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너마 의원 또한 예산안 가운데 기후변화와 관련한 1000억달러 삭감을 원한다고 <뉴욕 타임스>가 9일 전했다.

진보파는 보육·교육·보건에 빈부 차이를 따져서는 안 된다는 ‘보편복지’론으로 맞서고 있다. 샌더스 의원은 “노인들이 치아를 갖거나 어린이들이 돌봄을 받는 것은 혜택이 아니라 정의”라고 말한다. 워런 상원의원도 “1학년 어린이를 받으면서 부모에게 얼마를 버는지 묻지 않고, 도로·다리를 건설할 때 그가 그걸 이용할 수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고 비유하면서 복지 서비스가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다수는 시민들의 지지가 높은 이 법안을 처리해야 내년 11월 치러지는 중간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 예산안을 이달 말까지 처리한다는 목표다. 혼돈의 아프가니스탄 철군과 코로나19 델타 변이 확산 등으로 지지율이 40% 아래로 떨어진 바이든 대통령도 예산안 통과를 통해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는 지난달 말 의원들을 만나 “지금은 교착상태이지만 결국 내가 약속한 것을 지킬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바이든 대통령과 당 지도부는 소속 의원들을 설득하며 예산안을 2조3000억달러 이하로 줄이는 절충안 마련을 시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진보코커스 대표인 자야팔 의원도 맨친 의원이 주장하는 ‘1조5000억달러’는 “우리의 우선순위를 달성하기에 너무 작다”고 일축하면서도, 최종 예산 규모는 애초의 3조5000억달러와 1조5000억달러 사이일 것이라고 <시엔엔>(CNN) 인터뷰에서 말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 경우 민주당 지도부가 커뮤니티칼리지 무상 교육, 무상 유치원 등의 대상을 중·저소득층으로 한정하려 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위대한 사회’의 첫발을 무사히 뗄 수 있을까. 이를 위한 민주당 내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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