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치료 수업에 참여해 카드를 만드는 백혈병 환우와 보호자. 허윤희 기자
미술치료 수업에 참여해 카드를 만드는 백혈병 환우와 보호자.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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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혈액암 치료 현장에서 필수·기초 항암제 품절 상황이 반복되면서 치료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지난달 26일 ‘2026 대한혈액학회 국제학술대회’(ICKSH 2026) 기자간담회에서 대한혈액학회는 “도노마이신, 빈블라스틴, 블레오마이신, 5-플루오로우라실(5-FU) 주사제 등 기초 화학항암제의 공급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김혜리 대한혈액학회 홍보이사(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는 “일부 항암제는 원내 약국에서 품절 경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치료의 기본이 되는 약물이 반복적인 품절 위기를 겪는다면 환자에게 안전한 치료를 제공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혈액암이란 급성 및 만성 백혈병, 골수이형성증후군, 골수종, 각종 림프종 등 혈액 속 백혈구나 림프구 등에 발생한 악성 종양을 가리킨다. 암세포가 혈액이나 림프를 통해 온몸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외과적 수술로 치료할 수 없어 치료 난이도가 비교적 높다. 항암치료 역시 전신을 대상으로 해 1세대 항암제라고 불리는 화학항암제(혹은 세포독성항암제) 종류를 기초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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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기술의 발전으로 카티(CAR-T·키메릭 항원 수용체 T세포) 치료 같은 차세대 세포치료제나 유전자치료제 개발이 활발하다. 전신 부작용을 줄이면서 치료 효과도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아직 기존의 표준치료를 대체하기보다 일부 단계에서 병행되는 경우가 많고 치료비가 비싸다는 한계도 있다. 따라서 그간 혈액학회는 혈액암 신약의 국내 도입과 국민건강보험 치료비 급여 보장성 확대 등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 확대 문제를 자주 강조해왔다. 그렇다보니 이번 간담회에서 신약 접근성 문제보다 기초 치료제 부족 문제가 비중 있게 강조된 것은 이례적 상황이다.

지난달 26일 ‘2026 대한혈액학회 국제학술대회’(ICKSH 2026) 기자간담회에서 대한혈액학회 임원진이 취재진의 질의 내용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용 총무이사, 김석진 이사장, 임호영 학술이사, 김혜리 홍보이사. 최지현 기자 jhchoi@hani.co.kr
지난달 26일 ‘2026 대한혈액학회 국제학술대회’(ICKSH 2026) 기자간담회에서 대한혈액학회 임원진이 취재진의 질의 내용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용 총무이사, 김석진 이사장, 임호영 학술이사, 김혜리 홍보이사. 최지현 기자 jhchoi@hani.co.kr

임호영 학술이사(전북대병원 내과)는 “최근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제가 발전했어도 기존의 화학항암제는 여전히 백본(기본 치료 골격)으로 중요하게 사용된다”며 “이 약들이 빠지면 치료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홍경택 부총무이사(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역시 “이들 약제는 최근의 수급 불안정 때문에 ‘희귀의약품’으로 취급되기도 하지만, 과거 50년 가까이 항암치료에 사용돼온 고전적인 약제”라며 “혈액암 항암치료 현장은 고가 신약이 속속 나오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는 기본적인 치료제에서조차 흔들리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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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는 이런 일이 10년 넘게 반복돼온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는 신약이 개발되면 기존 약제의 가격을 점차 낮추는 건강보험 급여 관리체계의 부작용이다. 국가 의료재정을 절약하고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려는 정책이지만, 일부 약제 가격은 생산 원가 이하로까지 떨어지기도 해 제약사가 생산·수입을 포기할 수 있다. 이날 언급된 항암제들 역시 출시된 지 오래된 약품인데다 일부는 가격이 ‘한 알에 백원대’로 떨어진 것도 있다. 이렇게 품절이 반복되면 진료실에선 어쩔 수 없이 더 비싼 신약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어 환자의 부담이 커진다.

학회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을 요청했다. 박용 총무이사(고려대 안암병원 혈액내과)는 “기초 치료 약제는 공공 영역에서 관리해야 한다. 쌀 수매제도처럼 국가에서 일정 물량을 재고로 관리하는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석진 이사장(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은 “제약사가 제품 생산과 공급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절한 가격을 보장하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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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통합정보시스템을 통해 488건의 필수의약품 목록과 총 766건의 공급 중단·부족 의약품 현황을 작성하며 의약품 수급 상황을 상시 점검 중이다. 지난달 26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약가제도 개편안을 심의하며 필수의약품 공급 불안 해소 대책을 내놨다. 의약품 수급 불안정 상황에 대응하는 민관 공동 협의체를 확대 개편하고 퇴장방지의약품 제도를 개선해 제약사에 원가 보전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최지현 기자 jhcho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