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2014년 5월 한진그룹 계열사인 인천 그랜드하얏트호텔 신축 조경 공사장에 찾아와 (왼쪽) 현장 직원의 팔을 붙잡고 끌어당기고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2014년 5월 한진그룹 계열사인 인천 그랜드하얏트호텔 신축 조경 공사장에 찾아와 (왼쪽) 현장 직원의 팔을 붙잡고 끌어당기고

“바지 유니폼 입지 말라. 말 많이 걸면 싫어하니 말 시키지 말라. 한두 개가 아니에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공식 사과와 두 딸의 경영 일선 퇴진에도 불구하고 총수 일가의 갑질과 비위 행위에 대한 폭로가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카카오톡에 익명의 단체방을 만들어 그동안 직접 겪고 들은 총수 일가의 부적절한 행위를 외부로 알려내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단체방 참여 인원은 한계 인원인 1천명에 도달해, 두번째 방까지 만들어진 상황이다.

23일 단체방에 참여한 승무원 경력 10년이 넘는 김아무개씨와 박아무개씨에 따르면, 총수 일가가 비행기를 타기 전이면 승무원들은 평소보다 3~4시간 일찍 출근해 총수 일가 응대 매뉴얼을 숙지한다고 말했다. 또 평소보다 훨씬 많은 청소 노동자가 비행기 곳곳을 쓸고 닦는 장면도 연출된다. 김씨는 “누가 봐도 ‘아 오늘 그분들 타시는구나’ 싶을 정도로 난리가 난다”며 “4년 전 땅콩회항 사건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총수 일가가 타기 전이면 바지 유니폼을 입지 말라, 머리핀은 파란색과 아이보리색을 승무원들끼리 섞어서 착용해라 등 이런저런 매뉴얼이 전달된다”고 말했다. 또 “비행을 마친 뒤에는 사무장이나 팀장급 승무원이 총수 일가의 지적사항 등을 꼼꼼하게 적어서 보고서로 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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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기자들을 만나게 된 것에 대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것 같아 용기를 냈다”며 “승무원 준비를 할 때는 대한항공에만 입사하면 내 인생이 피겠구나 했지만, 회사를 다닌 지 10년이 넘은 지금은 이곳은 나를 직원으로 존중하지 않고 통제하고 관리하는 대상이자 돈 버는 도구로만 부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며 씁쓸해했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단체 카카오톡 방을 통해 조양호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벌이자는 의견도 모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아내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직원을 밀치거나 삿대질하고, 설계 도면을 바닥에 던지는 등 ‘갑질’ 영상이 공개됐다. 그동안 이 이사장의 폭언에 대한 증언은 있었지만, 영상 파일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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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취재와 영상 자료 등을 종합하면, 2014년 5월 한진그룹 계열사인 인천 그랜드하얏트호텔 신축 조경 공사장에 이 이사장으로 보이는 인물이 찾아왔다. 영상을 보면, 이 여성은 안전모를 착용한 한 여직원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꾸짖었다. 주변에 서 있는 남성 직원 4명도 이 여성 앞에서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여성은 잠시 뒤 몇 걸음을 옮겨 공사 현장 바닥에 놓인 자재를 발로 찼다. 그러다 다시 여성 직원에게 다가가 삿대질을 하는 장면이 보인다.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갑자기 여성 직원에게 다가가 왼팔을 끌어 잡아당겼고, 직원의 등을 손으로 밀쳐내기도 했다. 주변에 있던 한 남성 직원이 이 여성을 붙잡고 말렸지만, 그는 오히려 양손 주먹을 들고 화를 내는 장면도 담겼다. 이어 손에 들고 있던 도면을 빼앗아 바닥에 던져 버렸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한 관계자는 “(시공) 업체가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과정에서 이뤄진 일”이라며 “이 이사장이 현장 방문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지시사항을 전달할 때마다 이런 갑질 행태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영상을 공개한 관계자는 “영상은 실내에서 창밖을 촬영한 것이라 음성은 정확히 들리지 않지만 (현장 직원에게) 폭언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해당 영상을 본 대한항공 전·현직 관계자들은 “옷 스타일이나 체격 등을 보면 영상 속 인물이 이명희 이사장이 맞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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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업체 쪽에선 이 이사장의 현장 방문에 대해 시인했지만, 갑질 의혹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건물 시공을 맡았던 업체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공사 당시 (이 이사장이) 상당히 자주 온 것은 맞지만, 그 외의 일은 더 이상 언급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 쪽은 총수 일가 비행 때 승무원 매뉴얼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 “대한항공이 공식적으로 만든 매뉴얼이 아니다”라며 “승무원들끼리 어떤 게 편하다, 어떻게 하면 좋다와 같은 이야기가 구전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명희 이사장의 ‘갑질 영상’에 대해서는 “회사 외부에서 일어난 문제라서 사실관계 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최하얀 박수진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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