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대상 업황 전망 조사에서 대부분 업종은 약간 개선되는 흐름을 타고 있는 반면, 반도체·조선 분야는 나빠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부문 업황 전망이 특히 어두운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경제 전반이 반도체 산업에 의존하는 정도가 커, 전반적인 경기 전망에도 그림자를 드리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반도체 최대 시장인 중국의 경기 부진이 이어지고, 미국 주도의 대중국 견제 전략으로 여겨지는 4자 반도체 협의체(‘칩4’) 결성이 추진되는 등 대외 환경 급변 상황이 반도체 업황의 추가 악재로 꼽힌다.
산업연구원이 21일 내놓은 ‘산업경기 전문가 서베이 조사 결과’ 중 9월 전망을 보면, 반도체 업황 전망 ‘전문가 서베이 지수’(PSI)가 35로 전달(48)보다 13포인트 떨어졌다. 제조업 전체 전망 지수가 74에서 84로 오른 것과 대조적인 흐름이다. 이번 조사 결과는 에프앤가이드·매트릭스에 의뢰해 전문가 168명을 대상으로 이달 8~12일 수요 여건(국내시장 판매·수출), 공급 여건(생산수준, 재고수준, 투자액), 수익 여건(채산성, 제품 단가)을 물어 집계 분석한 것이다. 지수(0~200)가 0에 가까울수록 전월 대비 감소(악화) 의견이 많다는 뜻이다.
조사 대상 10개 업종 가운데 전달보다 하락한 업종은 반도체와 조선뿐이었다. 조선업 전망 지수는 86에서 85로 떨어졌다. 9월 전망 지수가 가장 높게 나타난 업종은 자동차 부문이다. 전달보다 18포인트 높아진 130으로 조사됐다. 철강과 바이오·헬스도 기준점(100)을 웃돌아, 각각 108(+58)과 105(+14)로 조사됐다. 전자(휴대폰·가전) 전망 지수는 66에서 79로 높아졌다. 세부적으로 보면 가전은 75에서 56으로 떨어졌고, 휴대폰은 60에서 92로 대폭 높아졌다.
현재 상태를 나타내는 8월 업황 현황 조사에서도 반도체는 매우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현황 지수는 7월 38에서 8월 30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제조업 전체 지수는 73에서 76으로 올랐다. 현황 지수가 전달 대비 떨어진 업종은 반도체, 조선(110→90), 바이오·헬스(100→95)뿐이었다. 업황 현황 지수가 기준점을 웃돈 업종은 자동차가 유일해, 110(+1)이었다. 자동차에 이어 바이오·헬스, 조선 90(-20), 섬유 84(+16), 화학 77(+12) 순으로 높은 편이었다.
반도체 경기 현황과 전망 모두 어둡게 나타난 것은 주로 중국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라 중국 주요 도시들이 봉쇄되면서 부품 조달과 제품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고, 중국 내 정보통신(IT) 수요가 위축된 영향이 컸다. 한국이 대중국 교역에서 5월부터 이례적으로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들의 중국 내 매출 비중이 줄줄이 하락하고 있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 바 크다. 삼성전자의 올해 상반기 매출(별도 기준) 115조3655억원 가운데 중국 매출은 30조4620억원으로 26.4%를 차지했다. 지난해 상반기 29.4%에 견줘 3%포인트 떨어졌다.
반도체 분야는 한국 경제 전반의 흐름을 좌우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경제 전반을 수출에 기대는 정도가 크고, 그 수출에서 반도체는 최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올해 1~7월 반도체 수출액은 802억달러로 전체 수출(4111억달러)의 19.5%를 차지했다. 반도체에 이어 2위, 3위를 차지한 석유화학(373억달러), 자동차(295억달러) 비중은 각각 9.1%, 7.2% 수준이었다.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액 중 중국 비중은 40% 수준이며, 홍콩을 포함하면 60%에 이른다. 중국의 경기 부진이 반도체를 고리로 한국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 주도로 한국, 일본, 대만을 묶어 반도체 협의체를 꾸리려는 움직임을 비롯한 대중국 견제 전략과 더불어 국내 반도체 업계와 정부의 고민을 키우는 대목이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