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언론 보도를 보면,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의 발화 원인 분석에 다시 착수했다고 한다. 자체 인력은 물론이고 대학과 국내외 전문업체의 도움까지 받는 모습이다. 필요하다면 그동안 발화 제보에 따라 수거한 기기들을 모두 제공하겠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이번에는 배터리에 국한하지 않고 다른 부품과 설계 과정까지 샅샅이 살펴 원인을 기필코 밝혀내겠단다. 발화 원인은 정부기관인 한국기술표준원과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도 찾고 있다.

당연한 수순이고,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그래야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고 다음 신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 발화 원인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규명하지 못하면 스마트폰사업을 접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벌써부터 일각에서는 상명하복의 투명하지 못한 의사결정 구조와 ‘무조건 빨리빨리’ 문화에 칼을 대지 않는 원인 찾기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삼성은 제품을 출시하면서 홍채 인식과 방수·방진 기능을 앞세웠는데, 이게 원인일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내년 2월 선보일 예정인 ‘갤럭시S8’에 이런 기능을 채택하려면 ‘누명’부터 벗겨야 한다.

하지만 사용자 쪽에서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당장 ‘무엇을 근거로 리콜 결정을 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나아가 ‘발화 원인을 찾지 못하자 배터리 결함이라고 일단 단정짓고 상황 반전을 노린 것 아니냐’는 의심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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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휴대전화사업을 총괄하는 고동진 사장은 1차 리콜 때 ‘배터리 결함 탓’을 했다. 하지만 새 배터리를 장착한 제품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는 제보가 잇따르면서 이 발표는 신뢰를 잃었다. 그리고 올 가을 프리미엄 스마트폰시장을 풍미하던 갤럭시노트7을 단종시키는 대가를 치렀다. 그만큼 직접적 손실과 기회 상실 비용이 증가했고, 삼성과 갤럭시 브랜드에 대한 타격도 커졌다.

삼성전자는 사업 당사자로서 잘못했으니까 대가를 치렀다고 치자. 사용자들은 무슨 죄일까? 1차 리콜 뒤 국내에서만 30만명가량이 기기를 교체했다. 이동통신 대리점을 찾아가고 기기를 교체하며, 전화번호부와 사진·동영상 등을 옮기는 과정에서 적어도 각각 2시간 이상을 허비했다. 그런데 사용자들은 같은 일을 또 해야 한다. 비행기 반입이 전면 금지된 데다, 미국에선 갤럭시노트7을 갖고 비행기에 타다 걸리면 2억원 가까운 벌금을 물린다니 다른 방법이 없다. 삼성전자는 이를 조기 회수의 지렛대로 삼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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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상권인 이통사 유통점들 손해도 크다. 초기 판매량이 전작의 2배를 넘었는데, 모두 이들의 손을 거쳤다. 이들은 사용자들이 다른 갤럭시 스마트폰으로 바꾸지 않으면 가입자 유치 수수료가 취소되고 이미 지급된 것도 회수한다는 통보를 받은 상태다.

‘관리의 삼성’의 대처 방식이 어찌 이리 허술했는지 의아하기 그지없다. 삼성전자한테 소비자들이 허비한 시간과 불편을 보상하라고 하면 너무 한다고 하려나.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