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시장에는 기업을 평가하는 잣대가 잘 만들어져 있다. 자기자본이익률(ROE), 부채비율, 주가수익비율(PER)처럼 기업의 수익성, 안정성, 성장성 등의 지표가 한 기업의 현재 상황을 그때그때 보여준다. 하지만 실업해소나 장애인 고용 같은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사회적기업의 가치는 일반기업과 같은 잣대로 평가하기 어렵다. 따라서 사회적기업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를 손쉽게 측정하고 간명하게 알려주는 평가지표 개발이 절실하다.
지역에서 청소 용역 사업을 하는 두 회사가 있다. ㄱ사는 효율적인 내부 시스템을 만들어서 낮은 가격에 청소 도구를 구매하고, 인건비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덕분에 ㄱ사의 청소 서비스는 가격경쟁력이 우세하고 시장점유율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에 대한 고려가 소홀하고 지역사회 고용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않아 지역사회의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다.
반면, ㄴ사는 친환경 청소용품과 도구를 사용한다. 지역의 취약계층 고용을 회사 운영의 주된 목표로 삼다 보니 가격경쟁력은 떨어지고, 회사 운영이 어렵다. 지역사회가 갖고 있는 다양한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는 ㄴ사를 지역사회가 나서서 도울 방법은 없을까?
사회적기업 올해 안 1000곳 돌파할듯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이 시행된 지 만 6년이 지난 지금 고용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은 900곳을 넘어섰다. 연내에 1000번째 사회적기업 탄생이 예상된다. 사회적기업을 통해 1만3000명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이 중 상당수는 취약계층의 일자리다.
사회적기업의 급격한 성장은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는 시장 원리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먼저,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 정부기관들은 사회적기업을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유력한 대안으로 보고 있다. 고령자 일자리 확보, 장애인 고용, 북한이탈주민의 안정적 정착, 환경과 자원재생 문제 등이 대표적인 예다.
기업 사회공헌활동과 다양한 연계 가능기업 입장에서도 사회적기업은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기존 사회공헌활동과 연계해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점이 사회적기업이 가진 매력이다. 포스코가 설립한 포스코휴먼스는 기존 장애인작업장인 포스위드와 사회적기업 포스에코하우징이 합병한 회사다. 지역사회의 취약계층 고용과 친환경 스틸하우스 제작을 통한 지역사회 환경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사회적기업 기부방송을 통해 편로를 지원하고 있는 롯데홈쇼핑, 지에스(GS)홈쇼핑 등은 자사의 핵심 역량을 활용해 사회공헌활동과 연계한 좋은 예다. 올해 7월 고용노동부 인증을 받은 행복나래는 대기업이 단순히 사회공헌활동을 수행하는 것에서 탈피해 직접 사회적기업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는 사례가 되었다.
시민단체의 관심도 빼놓을 수 없다. 2011년 12월 시민사회단체, 봉사단체, 종교계, 재계, 학계의 참여 속에 발족된 ‘사회적기업 지원 네트워크’는 정부의 관심 영역 외에 좀더 폭넓고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기업의 역할에 주목한다.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도구로서 사회적기업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기업에 대한 수요 증가가 장밋빛 전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기업을 바라보는 우려 역시 엄연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인증제에서 등록제로 전환’ 논의에서 비롯먼저, 정부의 지원은 사회적기업에 단기적으로 도움이 되겠지만,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또 중소기업 시장과의 충돌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근본적으로는 사회적기업의 가치와 이들을 선별해낼 수 있는 명확한 도구가 없다는 것도 사회적기업 이해관계자들이 풀어내야 할 난제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할 방책은 없나? 정부가 올해 공표를 계획하고 있는 ‘사회적경제 사회가치 측정 기본지표’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사회가치 측정의 필요성이 본격 대두한 것은 사회적기업을 인증제에서 등록제로 바꾸자는 논의가 시작되면서였다.
민주적 의사결정구조, 사회적 목적 추구, 상법상 회사의 경우 이윤의 3분의 2 이상 사회적 목적에 우선 사용 등의 사회적기업 인증 요건은 공공성과 투명성 확보엔 도움이 되지만, 다양한 사회주체들이 진입하는 데 만만치 않은 장벽이 되고 있다. 좀더 많은 사회주체들의 사회적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시기이기에 더욱 그렇다. 정부가 중장기적으로 사회적기업 등록제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진입 문턱 낮추는 대신 평가 엄정해야등록제로 시장 진입의 규제를 낮추려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관리·감독 기능의 강화다. 이는 기존 등록제에서 언급한 ‘사회적기업 진입의 문턱은 낮게, 사회적기업 진입 이후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엄정하게’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사회가치 측정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외부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로부터 신뢰도가 개선될 것이다. 기업의 사회·공익적 역할에 대한 평가의 공정성은 시장 신뢰로 이어지고, 이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우수 사회적기업 선별 및 지원을 위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사회적 자본시장에도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평가 도구가 끼치는 영향은 크다.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 투명한 경영방식과 건전한 재무구조를 확보할 수 있고, 기업 본연의 수익창출을 위한 기업 경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무늬만 사회적기업, 시장 퇴출 효과도또한 기존 정부 지원만을 바라보고 사회적기업에 진입한 무늬만 사회적기업인 이들을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더불어 이들이 일으킬 중소기업 생태계 교란을 막기 위해서도 사회가치 평가 제도는 매우 유용하다. 단적인 예로, 사회적 성과가 낮은 사회적기업은 우선구매제도에서 탈락할 것이다. 판로가 막힌 사회적기업은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도태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정부 지원이 같은 업종의 중소기업들을 어려움에 빠뜨려 시장을 교란한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행정만능주의나 자본만능주의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경험하고 또 학습했다. 사회적기업이라는 이름이 아니었을지라도 사회 구성원의 역량, 기업의 역동성에 기반을 두고 사회문제를 스스로 치유하고 해소하는 주체들을 육성하는 일은 미룰 수 없다. 이제부터는 이 소중한 대안인 사회적기업, 사회적 경제가 좀더 정교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사회적기업의 사회가치 평가는 이를 시작하는 출발선에서 고민해야 하는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