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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시내 한 은행 앞에 대출 관련 홍보물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10일 서울 시내 한 은행 앞에 대출 관련 홍보물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보통주자본비율 목표치(13~13.5%)를 최우선으로 관리하겠다.”

외국인주주 비율이 60~70%에 이르는 국내 금융지주회사들이 저마다 올해 ‘자본비율’ 지표 집중 관리를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실물경제 활력을 위해 기업 금융을 늘리기보다, 규제 목표를 한참 상회하는 양호한 자본비율 유지에 집착하면서 이를 위해 ‘위험자산 산출 방식을 완화해 달라’고 당국에 요청하고 있다. 은행들은 ‘현행 방식이 기업금융 대출여력을 제약한다’고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외국인 주주 이탈을 의식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최근 금융당국이 주도하는 생산적 금융 전환을 위한 은행권 건전성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2023년 이후 시중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담합 관련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최대 1조원대 예상)을 위험가중자산(RAW)에 반영하면 자본비율 관리에 부담이 크다”며 과징금은 자본비율 산정에서 제외하거나 유연하게 적용해달라고 당국에 건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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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가중자산은 은행들이 영업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하는 국제결제은행(BIS) 자본비율(손실흡수능력 지표)을 산출할 때 분모에 들어가는 핵심 항목이다. 가계·기업 대출자산에서 차주별 상환위험에 따라 가중치를 차등 반영하고 여기에 시장 전체 위험과 개별 금융사의 운영 리스크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산정되는데, 과징금은 운영 리스크에 포함된다.

현재 주요 은행금융지주와 시중은행에 감독당국이 규제하는 대표적 자본건전성 지표인 보통주자본비율(CET1·보통주자본/위험가중자산)은 9.0% 이상이다. 보통주자본은 자본금, 자본준비금, 이익잉여금 등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은행지주(은행·증권·보험·카드 등 계열 자회사 연결기준)마다 이 규제비율을 크게 웃돌며 양호한 수준을 충족하고 있다. KB금융은 지난 3월말 기준 13.68%, 신한금융·하나금융 13.27%, 우리금융 12.43%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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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마다 충분한 보통주자본비율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과징금 반영을 우려하는 이유는 ‘주주환원 프로그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올해 은행지주들의 공통적인 경영목표는 ‘보통주자본비율 13% 이상 유지 혹은 13~13.5% 달성’으로 설정돼 있다. 그러면서 지난해 말 “13%~13.5% 목표치를 넘는 자본은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환원 재원으로 쓰겠다”고 대대적으로 약속했다.

그런데 과징금 등으로 위험가중자산이 늘어나면 이 비율이 목표 아래로 낮아지게 될 것이고, 이 경우 주주환원 여력 감소에 실망한 외국인투자자들이 빠져나가고 주가도 내려갈 거라고 금융지주 경영진은 걱정한다. 지난 11일 기준 외국인주주 비율은 KB금융 77.73%, 신한금융 60.03%, 하나금융 67.18%, 우리금융 46.93%다. 이익잉여금이 늘면 보통주자본이 증가해 자본비율도 높아질텐데, 실적 늘리기 보다는 위험가중자산 반영을 줄여 자본비율 13% 초과분을 만들어내는 데만 골몰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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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비율 관리를 목표로 하는 은행들의 이런 주식가치 제고 정책은 생산적인 기업대출을 제약하기도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5대 은행이 위험가중자산을 산출할 때 적용하는 평균 위험가중치는 일반 기업대출 47.5%, 부동산담보대출(가계·기업) 28.0%, 주거용 부동산담보 17.8%로 추산된다. 기업대출을 늘릴수록 자본비율 부담이 커지는 터라 예금자산을 안전한 부동산담보대출에 우선 사용하려는 유인이 작동한다. 실물경제에 자본이 돌지 않게 되는 셈이다.

반면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자산규모 기준 일본 8대 상장은행(스미토모미츠이 은행그룹 등)의 주식가치 제고 방안을 살펴보면 자기자본비율 관리목표와 연계된 주주환원 정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신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대응을 통한 성장성 제고와 자본비용 절감 같은 장기적 기업가치 증대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권흥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은행도 적정한 수준의 주주환원을 통해 시장 신뢰를 확보하고, 주주 관점뿐 아니라 금융안정과 ESG 경영, 금융중개 역할 같은 여러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밸류업과 경영목표를 수립·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계완 선임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