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소형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 지구의 통신과 인터넷망을 장악하고 여기서 돈을 벌겠다는 이른바 ‘우주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러시아의 소유스 2호 모습. 연합뉴스
우주에 소형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 지구의 통신과 인터넷망을 장악하고 여기서 돈을 벌겠다는 이른바 ‘우주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러시아의 소유스 2호 모습. 연합뉴스

우주로 돈이 몰린다. 상식 밖이다. 우주라니? 인류가 달에 첫발을 디딘 게 52년 전이다. 그러나 그곳은 아직 과학소설(SF)에서나 다뤄지는 미지의 세계이거나 부유층의 전유물이다. 우주로 쏘아 올리는 대형 로켓 발사 비용은 1천억원이 넘는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준비 중인 우주정거장 여행의 하루 숙박비는 약 4천만원이다.

그런데 요샌 평범한 사람들도 우주에 관심을 둔다. ‘우주 테마주’ 투자 열풍 때문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상상해보라. 중력이 없는 깜깜한 우주 허공에 내 친구와 이웃이 투자한 1만원, 5만원짜리 지폐가 떠다니는 모습을.

이번에 소개할 쎄트렉아이는 국내에서 우주 테마의 가장 앞에 서 있는 기업이다. 이 회사 주가는 2021년 들어 한 달 반 만에 2.5배 올랐다. ‘에이, 우주가 무슨 돈이 되겠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회사 재무제표를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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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별 1호’ 개발자가 만든 국내 유일 위성기업

쎄트렉아이는 국내에 유일한 인공위성 생산 기업으로 갓 1천억원의 자산을 넘긴 중소기업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졸업생들이 1999년 설립해 2008년 증시에 상장했다. 국내 최초 위성인 우리별 1호 개발자가 창업 주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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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트렉아이라는 이름은 인공위성연구소의 영어 표기인 ‘SaTRec’(쎄트렉)과 주도권을 뜻하는 영어 단어 ‘Initiative’(이니셔티브)의 첫 글자를 합친 말이다. 인공위성 산업을 이끄는 회사가 되겠다는 의미다. 직원 수 280여 명, 본사는 대전에 있다. 쎄트렉아이는 정부 지분이 전혀 없는 순수 민간기업이다. 정부 지원이나 보조 없이 스스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얘기다.

인공위성이 과연 상품성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있다. 상장 당시인 2008년 208억원이던 쎄트렉아이 매출은 2019년 702억원으로 3배 넘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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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 1대 마진이 제네시스 1만2500대와 같아

쎄트렉아이가 만드는 인공위성은 지구 관측 위성이다. 렌즈 지름이 60~90㎝인 대형 카메라를 달고 우주에서 지구를 촬영하는 무게 50㎏~1t가량의 초소형·중형 위성을 주로 생산한다. 지상에서 우주에 있는 위성을 조종하고 위성이 보낸 영상을 수신해 처리하는 장비와 프로그램도 함께 만든다.

쎄트렉아이가 만든 위성(지상 장비 포함) 판매가격은 고해상도 위성 기준 6천만~1억달러 정도다. 우리 돈으로 한 대에 660억~1100억원을 받는 셈이다.

인공위성을 제작해 판매하는 과정은 아파트 공사와 비슷하다. 발주처에서 일감을 따내 2~3년 동안 제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수주 산업이다. 회사 매출도 건설업과 같이 수주한 일감의 진행률에 맞춰 인식한다. 발주처에 위성을 1천억원에 팔기로 하고 수주 첫해에 제작비의 30%를 투입했다면 300억원을 그해 매출로 반영한다. 수주가 매출과 직결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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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트렉아이의 인공위성 수주 잔액은 2008년 490억원에서 2020년 9월 말 2075억원으로 늘었다. 일감이 4배 많아졌다는 뜻이다. 주요 거래처는 아랍에미리트, 터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중동과 동남아시아 국가의 정부, 정부출연연구소, 대학 등이다. 쎄트렉아이 위성 사업 매출액의 65%가 수출에서 발생한다.

위성 사업은 돈이 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쎄트렉아이가 인공위성을 팔아서 남기는 마진(영업이익률)은 15% 안팎에 이른다. 수출용 위성은 25%에 이른다. 600억원짜리 인공위성 한 대를 팔면 150억원이 회사 이익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반면 현대차의 차량 부문 영업이익률은 2%(2019년 기준)에 불과하다. 요즘 가장 잘 팔리는 고급차 제네시스 G80 모델 6천만원짜리를 팔면 회사엔 120만원이 남는다. 인공위성 한 대 마진이 G80 모델 1만2500대와 같다. 주로 해외 정부 기관을 거래처로 둬서 돈 떼일 위험이 없다는 점도 위성 사업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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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대기업과 경쟁하는 토종 우주기업

쎄트렉아이의 재무 상태는 크게 눈여겨볼 게 없다. 워낙 탄탄하기 때문이다. 농담 섞어 말하면 공과대학 출신다운 우직함이 숫자에서도 엿보인다.

쎄트렉아이는 2008년 상장 이후 현재까지 매출이 줄어든 적은 있어도 영업적자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해가 한 번도 없다. 창업 뒤 회사에 쌓인 누적이익(이익잉여금)은 560억원, 순차입금은 마이너스(-) 270억원이 넘는다. 은행에서 빌린 돈보다 보유 현금이 훨씬 많다는 이야기다.

쎄트렉아이는 2021년 초 한화그룹 방위산업체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부터 1089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이 때문에 회사의 최대주주도 한화로 바뀔 예정이다. 그러나 기존 최대주주는 자기 주식을 한 주도 팔지 않고 계속 경영을 맡는다. 쎄트렉아이의 최대주주 손바뀜이 창업자 개인의 사익보다 대기업 자본을 유치해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쎄트렉아이의 경쟁 상대는 만만치 않다. 글로벌 거대 기업들이 우주를 배경으로 ‘쩐의 전쟁’을 벌이고 있어서다. 우주개발 주도권은 이미 국가에서 민간으로 넘어갔다.

미국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창업한 우주 기업 스페이스X, 아마존 최고경영자 제프 베이조스가 설립한 블루오리진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우주개발 회사를 차린 것이 정말 화성을 지구의 식민지로 만들거나 우주여행을 하기 위해서일까?

그렇지 않다. 우주에 소형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 지구의 통신과 인터넷망을 장악하고 여기서 돈을 벌겠다는 게 진짜 목표다. 스페이스X가 띄우려는 인공위성은 총 1만2천 개, 블루오리진은 3200여 개다. 현재 우주에 있는 위성 수보다 훨씬 많은 인공위성을 발사해 지구인의 돈을 쓸어 담겠다는 것이다. 이 기업들이 위성통신을 넘어 관측시장까지 뛰어들지 말란 법이 없다.

1992년 TV에 나오는 우리별 1호의 발사 영상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 뉴스 자막에 ‘우주 시대 개막’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제 우주 자본주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쎄트렉아이 같은 토종 기업의 활약을 기대한다.

박종오 <이데일리> 기자 pjo22@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