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월 취업자 수 증가가 1만명을 밑도는 등 이례적인 고용부진이 계속되면서, 정책당국과 전문가들도 그 배경이 무엇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친 것도 아닌데, 유독 고용지표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저조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 효과가 크지만 영세하고 생산성이 떨어져 경기 영향을 민감하게 받는 산업 영역에서 ‘소리(저항) 없는 구조조정’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 당국도 예상 못 한 하반기 고용지표의 추락
올해 고용은 지난 2월부터 이상 신호를 보이기 시작했다. 전년동기비로 30만명대 수준이던 취업자 수 증가폭이 2월 이후 10만명대 안팎 수준에 그쳤다. 물론 인구요인을 고려하고 봐야 한다. 올해 들어 생산가능인구(15~64살)는 매달 3만5천~8만명씩 줄어왔다. 여기에 지난해 상반기 취업자 증가폭이 컸던 데 대한 기저효과도 원인으로 꼽혔다.
전문가들은 5월 이후로는 인구요인과 기저효과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의 성재민 동향분석실장은 “대체로 5월 이후 흐름이 달라졌다”고 분석한다. 2~4월 취업자 증가폭은 10만4천명→11만2천명→12만3천명으로 다소간 나아지는 흐름이었다. 다달이 생산가능인구 감소폭이 커졌고 기저효과도 상당했지만 그에 견줘선 더 악화되진 않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5월 취업자 수 증가폭은 7만2천명에 그쳐 10만명 선이 붕괴됐고 7~8월에는 아예 5천명과 3천명으로 떨어졌다. 이전보다 외려 기저효과는 줄었지만 지표는 더 악화된 것이다. 한 예로, 한해 전인 지난해 8월 취업자 수 증가폭은 21만명으로 크게 둔화된 상태였는데도 8월 지표는 외려 최악이었다. 이에 따라 올해 하반기로 갈수록 취업자 증가폭이 ‘상저하고’ 형태로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던 정부와 연구기관들의 관측도 줄줄이 엇나가기 시작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고려한 고용률(15~64살 기준)도 지난 6월 한해 전보다 0.1%포인트 낮아진 뒤, 7~8월에도 각각 0.2%포인트와 0.3%포인트 하락했다.
경기둔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지만 전반적으로 경기가 심각하게 나빠지지는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용부진은 유독 두드러지는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7월 전산업생산은 1.2% 증가했고 소매판매액지수도 같은 달 전년동기 대비 6% 증가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년동기보다 2.8% 늘어 애초 정부 전망치인 2.9%에 미치지 못했지만 2016~2020년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8~2.9%로 추정되는 점을 고려하면 큰 폭의 침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설비투자와 건설투자가 부진을 겪고 있지만 이는 현재보다는 향후 생산과 관련된 부분으로 당장의 고용부진 근거로 삼기엔 무리가 있다.
■ 다른 경기지표와 고용지표 간 괴리, 왜?
정부는 반도체나 석유화학 등 수출과 성장을 이끌고 있는 업종의 고용창출효과가 상대적으로 낮은 데 견줘, 고용효과가 큰 산업의 침체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고광희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은 “전체 산업을 합한 경제지표는 크게 나쁘지 않은 수준이지만, 고용효과가 큰 숙박·음식점업과 도·소매업, 조선·자동차업종 등의 상황이 좋지 않은 점이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1차금속 등 다른 제조업 고용에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조선업의 경우, 일부 대형 조선사를 중심으로 수주가 개선되고 있지만 중소 조선사 구조조정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영세 부품업체가 하청관계로 얽혀 있는 자동차도 수출 시장에서 고전하는 중이다. 고 과장은 “서비스업종은 중국인 관광객이 정점에 이르렀던 2016년 기준에 맞춰져 있던 고용 규모가 전체 생산이 감소한 뒤에도 한동안 유지되다 최근 들어 급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매출액이나 부가가치가 크지 않지만 고용 비중은 큰 영세업체를 중심으로 고용이 부진한 점도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직원 1~4인을 둔 사업체는 전체 취업자의 36% 정도를 차지한다. 이들 영세업체 취업자는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10만명 이상씩 늘어오다가 지난해 10월 감소세(-1만6천명)로 돌아선 뒤 감소폭을 키워왔다. 8월에는 한해 전보다 14만4천명 줄어들며 올해 들어 가장 큰 감소폭을 보였는데, 같은 달 5~299인(7만9천명), 300인 이상(6만8천명) 사업체에선 취업자가 늘었던 것과 대비된다. 제조업의 경우, 300인 이상 기업의 취업자 수는 2~8월 평균 1만8천명씩 늘었지만 같은 기간 1~4인 업체 취업자 수는 5만명씩 감소했다. 도·소매업의 1~4인 사업체에선 같은 기간 취업자가 평균 6만8천명씩 줄었다.
영세업체는 전체 생산지표에 끼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 까닭에 일부 경기지표에는 반영되지 않기도 한다. 속보성 지표로 인용되는 통계청의 제조업 동향조사는 20인 미만 기업을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고, 서비스업 동향조사는 매출액 1억원 미만 영세 사업체를 조사하지 않는다. 이들 사업체는 노조조직률도 떨어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소리 없는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추정해볼 수 있다.
■ 취약노동자 중심 실업대책 필요
최근 정부는 고용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으로 최저임금 인상 등 정책적 요인에 대한 재검토 방침을 밝혔다. 황인웅 기재부 정책기획과장은 “지난 7월부터 서비스업 고용이 더 부진한 것은 내년 최저임금 인상 결정에 대한 시장의 선제적 대응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현재 고용 사정을 해석하는 것은 무리여서 이를 중심으로 정책 수립에 나서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반론이 나올 수 있다. 박윤수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근본적으로 생산성이 낮았던 영세 제조업과 자영업, 임시·일용직 등의 일자리가 타격을 받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그동안 잠재돼온 구조조정 수요가 광범위하게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대형 기업들의 구조조정 시기에 정부가 대규모 실업대책을 수립하는 것처럼, 취약노동자 중심의 실직에도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형 실업부조 조기 도입과 직접일자리 제공 등 당장 일자리를 잃은 이들을 위한 재정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