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73) 엘지(LG)그룹 회장이 20일 오전 별세하면서, 엘지의 ‘4세 경영’ 체제가 막을 올렸다. 후계자로 지명된 구본무 회장의 아들 구광모(40) 엘지전자 상무가 앞으로 전문경영인 6명과 함께 엘지그룹 경영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구 회장은 이날 오전 9시52분 서울대병원에서 뇌종양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숨을 거뒀다. 엘지 쪽은 “구 회장이 1년간 투병을 하는 가운데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평소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서울대병원에서 외부 조문과 조화 등을 받지 않고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구본무 회장의 둘째 동생인 구본준(67) ㈜엘지 부회장은 ‘장자 중심 경영권 승계’라는 엘지 가문의 관례대로 계열분리 등의 방식으로 엘지그룹에서 떨어져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트 구 회장 체제’에서 동생 구본준 부회장을 중심으로 일정 기간 그룹 경영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돼 왔지만, 이런 시나리오보다는 ‘구광모 체제’ 안착을 위해 그룹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것이라는 분석이 대두하고 있다. 구본무 회장의 첫째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과 셋째 동생인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은 이미 계열분리해 독립해 있다. 엘지그룹 쪽은 “구 부회장의 경우 당장 (거취에서) 어떤 변화가 예정돼 있는 건 아니지만, (장자 경영승계가 이뤄진 만큼) 삼촌으로서 독립해 별도의 영역을 개척해나가는 것이 그동안의 그룹 전통”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구 부회장이 지분 3.01%의 보유해 개인 최대주주로 있는 엘지상사와 몇몇 계열사를 분리해 독립하는 시나리오를 유력하게 점친다. 엘지상사는 그룹 내 다른 계열사와 출자관계를 맺고 있지 않아 계열분리하기에 용이한 지분구조를 갖고 있으며, 구 부회장이 엘지상사 부회장을 맡은 적도 있다.
구 상무의 구체적인 역할과 직책은 다음달 임시 주주총회 이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 17일 ㈜엘지 이사회에서 지주회사의 등기이사가 된 구 상무는 다음달 29일로 예정된 임시 주총을 통해 공식적으로 등기이사에 오른 뒤, 이후 또 한 차례 이사회에서 지주사에서의 역할·지위·직책 등이 결정될 예정이다.
엘지그룹의 네 번째 선장이 될 구 상무는 구본무 회장의 양아들로, 첫째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친아들이다. 구본무 회장 아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2004년 큰집에 양자로 들어갔다. 구 상무는 2014년 말 구본능 회장으로부터 ㈜엘지 지분 190만주를 양도받기도 했다. 구 상무는 2006년 엘지전자 대리로 입사해 2014년 지주사인 ㈜엘지의 시너지팀, 경영전략팀 상무로 승진했다. 그룹의 주력사업과 미래사업을 챙기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기획하고, 계열사 간 시너지를 높이는 일을 맡았다. 올해 초에는 엘지전자 비투비(B2B)사업본부 사업부장(상무)으로 옮겼다.
앞으로 구 상무는 하현회(엘지), 조성진(엘지전자), 한상범(엘지디스플레이), 차석용(엘지생활건강), 권영수(엘지유플러스), 박진수(엘지화학) 등 6명의 부회장 직책 전문경영인의 보좌를 받으며 엘지그룹을 이끌 전망이다. 지주회사 체제로 일찍 전환돼 상속세 납부 이외에 4세 승계 과정에서의 다른 선결 이슈는 찾아보기 어렵다.
구 상무로의 4세 승계가 ’정도경영’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나온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18일 논평을 통해 “구광모 상무는 내부에서조차 가시적인 경영성과를 보여준 게 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번 승계가) 공정한 대우와 정당한 경쟁을 핵심으로 하는 엘지의 ‘정도경영’에 합당한지 반문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구 상무는 부친인 구 회장의 ㈜엘지 지분(11.28%·1945만주)을 모두 넘겨받는다고 가정할 때 상속세율 50%를 적용하면 약 1조원의 상속세를 낼 것으로 보인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