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핵폐기장 부지 선정 시민소통위원회’(시민소통위)가 지난 2월11일 베를린 예루살렘교회에서 연 핵폐기장 부지 선정에 관한 공청회에서 시민들이 시민소통위의 모니카 뮐러 전문가위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독일 시민소통위 제공
독일 ‘핵폐기장 부지 선정 시민소통위원회’(시민소통위)가 지난 2월11일 베를린 예루살렘교회에서 연 핵폐기장 부지 선정에 관한 공청회에서 시민들이 시민소통위의 모니카 뮐러 전문가위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독일 시민소통위 제공

요리나 주코우(24)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법학을 배우는 대학생이다. 그는 지난해 9월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핵폐기장 부지 선정 시민소통위원회’(시민소통위) 활동에 참가할 의사가 있나요?”

전화는 독일 연방정부가 시민소통위에서 활동할 ‘시민위원’을 꾸리기 위한 설문조사였다. 40년 가까이 핵연료봉 등 고준위 핵폐기물의 처분장 건립에 대해 공론화를 진행해온 독일은 2014년 각계 전문가 34명이 모인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위원회’를 운영해왔다. 이 위원회는 2년 동안 활동을 마친 뒤 최종보고서에서 “2032년까지 핵폐기장 부지를 선정해야 하며, 시민소통위를 만들어 독일 연방 방사선보호청과 연방 환경부에 부지선정 과정에 관한 의견을 반영하자”고 제안했다. 설문조사는 성별이나 나이를 감안하지 않고 임의로 뽑은 6만9천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시민소통위에서 시민위원으로 활동할 의사를 묻는 질문에 571명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고, 최종적으로 123명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요리나도 그들 중 하나다.

“사실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내용이고,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였어요. 연락을 받고 나서 (참여를 해도 될까) 고민을 했지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관심이 생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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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현지시각) 독일 함부르크서 만난 요리나는 10월 법학 국가고시(졸업시험)를 앞두고 있고, 법률 사무소에서 인턴으로도 일한다. 공부를 하면서 틈틈이 시민위원 활동을 한다. 다른 위원과 베를린에서 정기적으로 만나 회의를 하고, 필요에 따라 공개토론회를 열거나 지역주민을 만나러 간다. 매달 평균 사흘 남짓 활동하는데, 정부에서 활동비로 500유로(약 67만원)를 준다. 그는 “10월에는 함부르크에서, 11월에는 칼스루헤에서 지역 주민과 회의 일정을 잡아둔 상태다”라며 “시민소통위는 핵폐기장 부지의 선정 과정이 잘 이뤄지는지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할 뿐이며 의사결정을 내리는 곳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독일 시민소통위가 위원을 뽑는 방식은 이른바 ‘시민배심원제’를 뼈대로 하고 있다. 불특정한 시민을 선발해 특정 사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숙의민주주의 방식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가 신고리 핵발전소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2만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선발하려고 하는 ‘시민대표 참여단’도 비슷한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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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위원의 선발 과정은 말 그대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기대 이뤄졌다. 베를린에 있는 시민소통위 사무실은 행정 지원만 할 뿐이다. 지원자들은 전화 설문조사가 끝나고 한달 뒤, 각 지역에서 첫 모임에 참석했다. 요리나도 독일 베를린에서 비슷한 또래(16~28살)인 청년 20여명과 첫 모임을 했다. 각 지역 모임에서 뽑힌 30명의 후보는 지난해 11월 2차 모임을 열고 요리나를 포함해 3명의 시민위원을 뽑았다. 그는 “청년포럼에서 후보를 정하는데 특별한 기준은 없었다. 참가자가 돌아가면서 자기소개에 대한 짤막한 소개를 한 뒤, 서로에 대한 투표를 진행했다. 후보를 정하면서 ‘이러한 모임에 쓸 시간이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그럴 시간이 없다’고 답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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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핵폐기장 부지 선정 시민소통위원회’(시민소통위)가 지난 2월11일 베를린 예루살렘교회에서 연 핵폐기장 부지 선정에 관한 공청회에서 요리나 주코가 의견을 말하고 있다. 독일 시민소통위 제공
독일 ‘핵폐기장 부지 선정 시민소통위원회’(시민소통위)가 지난 2월11일 베를린 예루살렘교회에서 연 핵폐기장 부지 선정에 관한 공청회에서 요리나 주코가 의견을 말하고 있다. 독일 시민소통위 제공

요리나에게는 시민소통위 안에서 ‘청년대표’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시민소통위에 3명의 시민위원과 6명의 전문가위원이 있는데 그는 유일한 20대다. 시민소통위를 구성할 때 남성과 여성의 비율, 세대별 구분, 그리고 전문가와 시민의 비중 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공동위원장은 전문가 위원인 클라우스 퇴퍼 전 환경부 장관과 미란다 슈로이어스 뮌헨공대 교수(환경·기후정책)가 맡고 있다. 미란다 공동위원장은 “요리나의 세대는 핵폐기장이 가동될 때 사회를 이끌어나갈 세대이므로, 시민소통위 안에서 누구보다도 그 역할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3년 임기로 일하는 위원은 임기연장을 하면 최대 9년까지 활동할 수 있다. 내년에 9명의 전문가·시민 위원을 더 뽑아 18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시민과 전문가가 어울려 일하는 게 어렵진 않을까? 요리나는 지난달 열린 핵폐기장 부지 선정과정의 법적 문제에 대한 토론을 예로 들었다. 그는 “법학을 전공해서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어떤 토양이 좋은지에 관한 토론은 전혀 모르는 내용이어서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며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항상 물어보면서 진행하기 때문에 특별히 어렵다고 느끼는 점은 없다”고 말했다.

독일 ‘핵폐기장 부지 선정 시민소통위원회’(시민소통위)에서 시민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요리나 주코가 지난 8월6일 저녁 독일 함부르크 시내의 한 식당에서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미란다 슈로이어스 뮌헨공대 교수(환경·기후정책)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강이현 통신원
독일 ‘핵폐기장 부지 선정 시민소통위원회’(시민소통위)에서 시민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요리나 주코가 지난 8월6일 저녁 독일 함부르크 시내의 한 식당에서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미란다 슈로이어스 뮌헨공대 교수(환경·기후정책)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강이현 통신원

공론화에서 가장 중요한 힘은 ‘시민의 상식’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요리나는 “핵폐기물 부지라는 것은 안전이라는 선정 기준이 매우 명확한 문제이다. 모든 사람들과 관련된 문제다. 따라서 시민의 상식을 따르는 것은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독일의 경험을 비춰볼 시민의 상식은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공론화에 대해서는 “남녀 성비를 미리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 세대의 문제이기 때문에 청년대표 자리도 확보해야 한다.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이후 미래 세대에도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취재 함부르크(독일)/강이현 통신원(뮌헨공대 박사과정), 정리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