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올해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세운다. 주관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16일 전력수급계획 수립을 위한 전력정책심의회를 처음 시작했다. 전기사업법은 전력수급 안정을 위해 수요를 예측하고 전력설비와 전원 구성(전기에너지믹스)을 설계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을 2년마다 세우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또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 따라 전기를 포함한 국가 에너지 전체의 수급 안정을 위한 20년짜리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5년마다 새로 짜야 한다. 지금은 2014년 1월에 수립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과 2015년 7월 확정된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시행 중이다. 최근 전력 수요 추세는 두 기본계획의 전망치와 크게 어긋나고 있다. 전력설비와 전원 구성을 다시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환경운동연합이 에너지기본계획과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환경운동연합이 에너지기본계획과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폭염에도 전력수요 증가 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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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전력수급계획은 시행 첫해인 2015년 전력수요 증가율을 4.3%로 잡았으나 실제는 1.3%였다. 지난해 증가율은 4.7%로 예측했으나 상반기에 판매된 전력량은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1.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역대급 폭염을 겪은 하반기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 11월까지 전력수요 증가율은 2.6%에 불과하다. 봄 날씨였던 12월 통계를 합산하면 지난해 전력수요 증가는 전망치의 절반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팀 처장은 “기본계획의 수요예측에 쓰인 한국개발연구원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예측과 산업연구원의 산업구조 전망치는 희망적인 지표여서 현실과 맞지 않는 것 같다. 산업연구원 예측치는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전기로제강산업과 조선업의 구조조정을 전망해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7차 계획뿐만이 아니라 2010년 이후 세워진 5·6차 전력수급계획과 2014년의 2차 에너지기본계획의 전력수요 전망도 실제 전력사용량과 큰 차이를 보인다. 오히려 현재의 추세는 2008년 수립된 4차 전력수급계획 전망치 패턴에 근접하고 있다.

실제 사용치 보니, 예측치보다 적어 과잉 전망에 원자력·석탄 설비 과잉 현 추세면 추가 건설, 수명연장 불필요

과학기술 연구자 단체인 청년과학기술자모임의 연구팀도 최근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근래 전력소비량은 2차 에너지기본계획 예측치보다 낮은 상황으로 추세적으로는 2008년에 수립됐던 1차 에너지기본계획의 예측치에 근접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2010~2011년 10% 정도의 급격한 전력수요 증가율이 일시적 현상인지, 2013~2016년의 1%대 낮은 증가율이 일시적인 것인지를 통계적 기법으로 분석했다. 연구 결과 전력소비 증가율과 경제성장률이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2010~2011년 산업용 전력소비 증가율의 급증은 경제성장률을 크게 웃돌았다. 연구팀은 “전기로 증설과 같은 전력 다소비 산업의 일시적 증가가 원인으로 추정된다. 잘못된 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바탕으로 원전을 2035년까지 현 수준의 2배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은 수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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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25기로, 2차 에너지기본계획상으로는 2029년까지 11기의 원전을 추가로 더 짓는 것으로 돼 있다. 이미 5기는 건설 중이다. 신고리 4호기는 거의 완공됐으며 신한울(울진) 1·2호기 공정률도 92%에 이른다. 설비용량은 현재 23GW에서 2029년 40GW로 늘어난다. 석탄화력발전의 경우 계획대로 73기까지 늘어나면 설비용량이 현재 29GW에서 44GW로 증가한다. 환경운동연합은 현재의 전력수요 증가율 추세가 지속되면 이미 완공에 가까운 신고리 4호기와 신한울 1·2호기를 제외한 나머지 8기의 원전과 올해 완공되는 신보령 2호기를 뺀 신규 석탄발전 9기 건설을 취소하고, 2029년까지 수명 연한이 끝나는 원전 12기와 석탄발전 10기의 계속 가동을 중단한다고 해도 설비 예비율은 8.5~32.2%에 이른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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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관리 왜 실패했나

이런 분석에 대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쪽은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다. 경기침체 등으로 전력소비량 증가율은 둔화하고 있으나 발전설비 규모를 결정하는 최대전력은 7차 수급계획을 웃돌고 있다는 것이다. 예로 지난해 여름 폭염 영향으로 최대 전력수요가 세 차례나 경신되고 8월12일에는 8518만㎾를 기록해 7차 계획 최대전력 전망치를 57.1만㎾나 초과해 전력예비율이 8.5%까지 낮아진 사실을 들고 있다. 전력설비 과잉과 부족 현상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전력수급 상황을 고려할 때 단기적 결과로만 신규 발전설비 건설의 적절성을 거론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게 한수원 주장이다. 오진호 한수원 기술전략처 전원기획부장은 “2015·2016년 전력수요 증가율 4.3%·4.7%는 기준수요 증가율을 전망한 것으로 실제 발전설비계획 수립 등에 활용하는 것은 목표수요다. 목표수요는 기준수요에서 효율화나 수요관리 등 다양한 정책을 도입해 수요를 줄이는 목표를 뺀 수치로 각각 2.5%·4.1%다”라고 말했다.

전력소비량 증가율은 줄어드는데 최대 전력수요는 계속 늘어나는 구조정부, 전력수요 관리에는 관심 없나

하지만 전체 전력수요가 크게 늘어나지 않는데도 최대 전력수요만 기록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전력수요는 계절·요일·시간마다 다르다. 지난해 11월까지 평균전력 증가율은 0%인 데 비해 최대전력 증가율은 8.1%나 됐다. 양이 처장은 “산업부가 수요자원 거래시장 관리를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 등 정부의 전력 수요관리 실패가 원인의 하나”라고 진단했다. 수요자원 거래시장은 정부가 참여 기업들에 전력 수요가 피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될 때 전기 사용을 줄이라는 급전지시를 내리는 대신 보상을 해주는 제도다. 그러나 전력거래소는 지난해 8월12일 급전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급전지시를 내렸다면 최대전력은 8200만㎾에 그치고 전력예비율도 12.7%로 높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수요관리 실패는 전기요금 체계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있다. 한국전력통계 속보를 보면, 지난해 폭염에 누진제로 ‘요금폭탄’을 맞은 주택용 전기요금과 달리 상가와 오피스텔에 적용되는 일반용 전기요금은 누진제가 없다. 일년 전체 전기소비 비중은 주택용이 13%, 일반용이 22% 정도이지만 겨울과 여름에는 일반용 비중이 26% 안팎으로 증가한다. 전기요금 상승에 따른 수요량 변화를 나타내는 전력수요 가격탄력성의 경우 주택용은 낮은 반면 일반용은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나타난다.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를 보면, 주택용 전기요금을 1% 올렸을 때 전력판매량은 16GWh 줄어드는 데 견줘 일반용은 76GWh나 줄어든다. 주택용 누진제보다 일반용 누진제의 정책적 효과가 더 클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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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용의 가격탄력성은 훨씬 커 일반용의 10배나 된다. 한재각 녹색당 정책위원은 “산업용 전기요금의 인상은 전력수요를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기업들의 제조업 제조원가 중 전력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대를 유지하면서 계속 낮아지고 있어 전기요금의 인상이 기업에 큰 부담을 주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포스코·현대제철 등 20개 대기업은 한전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싼 ‘산업용 을’ 요금에다 ‘경부하 요금’(시간대별로 가장 낮은 요금) 혜택까지 받아 원가에 못 미치는 요금으로 2012~2014년 3년 동안만 해도 3조7191억여원을 할인받았다.

친환경 가스발전, 유지비 연 6조 쓰며 ‘개점휴업’ 값싼 원전·석탄발전만으로 수요충당미세먼지 없는 가스발전 가동률 20%장기적 관점서 구매 우선순위 바꿔야

발전원별로 전력 거래를 할 때 가장 싼 전기부터 우선으로 구매하도록 하는 이른바 ‘경제급전’의 개선 움직임도 원전과 석탄발전 위주로 된 현재의 전원 구성에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가을철의 경우 최대 전력수요가 65GW 정도여서 원전과 석탄발전만으로도 전력 수급이 가능하다. 2015년 원전과 석탄발전의 발전량 비중은 70%에 이른 반면 가스발전은 20%가 채 안 된다. 원인은 싼 전기부터 사들이게 돼 있어 상대적으로 비싼 가스발전을 가동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아이티학과 교수는 “기후변화협약 발효에 따른 제약, 미세먼지 등 환경적 요인, 국민 안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력매입 순서를 정하는 이른바 ‘환경급전’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구체적으로 법안 개정에 들어가 있다. 장병완 국민의당 의원(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장) 등이 발의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은 지난해 말 상임위를 통과해 법사위로 넘어가 있다. 개정안은 ‘전기판매사업자는 발전원별로 전력을 구매하는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 경제성, 환경 및 국민안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김 교수는 “전기 소매가(전기요금)는 고정된 상태에서 도매가(전력거래소 구매가격)는 시장에 맡겨져 있어 유가나 환율에 따라 흑자와 적자가 반복되다 보니 전력판매자(한전) 입장에서도 경제급전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껴 법률 개정이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환경급전이 제도화하면 원전과 석탄발전의 비중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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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동 여부 상관없이 고정비용만 6조원 나가

지역별 전기요금을 달리 매기는 지역별 요금제도 전기에너지믹스에 변화를 줄 수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서울의 전력 자립률(발전량 대비 전력소비량)은 1.8%에 불과하다. 경기도 28.2%에 그친다. 반면 원전이나 석탄화력발전이 집중돼 있는 충남·전남·경남·경북은 158.9~325.2%에 이른다. 지역이 수도권의 전력을 공급하는 배후지인 셈이다. 하지만 수도권에 전력공급을 할 수 있는 설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천의 영흥화력발전소(1~6호기 870㎿)를 포함해 가스발전소 등 발전설비를 총가동하면 수도권의 자립률은 117%에 이른다. 원전과 석탄발전만으로도 전력 공급이 가능한데다 전력소비는 늘지 않아 가스발전소의 가동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도 2015년 한전은 실제 발전량과 무관한 용량요금 4조7500억원 등 6조2천억원의 고정비용을 각 발전사에 지급했다. 정부는 전력설비를 유지하기 위해 전력을 생산하지 않더라도 모든 발전소에 설비투자비와 기본 운영비를 보장해주기 위해 용량요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양이 처장은 “수도권 가스발전설비를 가동하면 충남이나 영호남 지역이 수도권을 위해 원전과 석탄발전 시설을 확대하지 않고 줄여나갈 수 있다. 지역별로 생산하는 전기발전단가에 맞춰 전기요금을 산정하는 지역별 요금제를 도입하면 싼 전기요금이 필요한 산업이 자연스럽게 지방으로 이전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글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인포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