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최순실 게이트’의 수사 범위를 최씨를 지원한 재벌들로 본격 확대하면서, 재벌들의 지원 성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르와 케이(K)스포츠 재단 설립에 출연한 대다수 재벌은 “우리도 피해자”라며 억울하다는 반응이지만, 지원 성격과 유형에 따라서는 일부는 뇌물죄 등으로 처벌될 가능성도 있어 재벌이 긴장하고 있다. 경제계에서는 최씨 쪽과 재벌 간 거래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보고 있다. 첫째는 지원 요청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른 ‘보험형’이다. 두 재단에 출연한 18개 그룹의 상당수가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두 재단에 모두 출연한 4대 그룹의 한 고위임원은 “청와대가 요구하는데 거부할 수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되겠냐. 언젠가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른 것인데 처벌 대상이 되느냐”고 하소연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케이스포츠재단의 10억원 기부 요청을 거절했다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쫓겨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둘째, 특정한 목적으로 지원을 한 ‘대가형’이다. 부영은 2월 케이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지원하는 대가로 안종범 당시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세무조사를 무마해달라고 청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롯데가 5월 말 재단 쪽의 70억원 지원 요청에 응한 것도 검찰 수사설이 무성한 상황에서 순수하게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씨제이(CJ)는 2014년 말부터 1조4천억원이 투입되는 경기 고양시 ‘K-컬처밸리’ 설립을 진행중인데, 이를 포함하는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은 최씨의 최측근인 차은택 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이 주도해왔다. 이런 정황과 올해 8월 광복절 특사를 받은 이재현 씨제이그룹 회장의 상황이 관련이 있다는 의혹도 나온다. 에스케이(SK)가 2월 80억원 지원 요청을 받고 30억원을 주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도 당시 옥중에 있던 최재원 부회장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기업들은 ‘대가성’을 부인하고 있다. 셋째, 당장 구체적 대가를 챙기기보다 장기적·포괄적 이익을 도모한 ‘유착형’으로, 삼성이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삼성은 두 재단에 재벌 가운데 가장 많은 204억원(전체 모금액의 26%)을 내놓은 것은 물론 지난해 최씨가 독일에 세운 개인회사인 비덱스포츠와 컨설팅 계약을 맺는 형식으로 35억원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독일 승마장도 표면적으로는 모나미가 매입한 것으로 돼있지만 그 뒤에 삼성이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참여연대는 3일 논평에서 “재단을 거치지 않고 최씨를 지원한 재벌로 삼성이 유일한 것은 삼성-권력 간 유착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의심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삼성은 지원 대상(최씨 모녀)이 누구라는 것을 알고 준 것이니 뇌물죄에 해당한다”며 “지난해 삼성물산 불공정 합병 논란과 관련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 표대결을 벌였을 때 국민연금이 삼성을 지원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