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 부동산과 금융자산 등을 포함한 부(자산)의 불평등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취업난이 커지고 임금 상승도 더딘 점을 미뤄보면 이런 부의 불평등은 앞으로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경제학)가 29일 발표한 ‘한국의 부의 불평등 2000~2013’ 보고서에 담긴 분석 결과다.
■ 상위 10%가 자산 66% 점유

상위 계층 부의 집중도 변화
상위 계층 부의 집중도 변화

보고서를 보면, 2010~2013년 상위 1%가 보유한 자산 비중은 전체의 25.9%였다. 상위 10%의 자산 비중은 66%로, 전체 자산의 절반이 넘었다. 반면 하위 50%의 자산 비중은 2%에 그쳤다.

2013년 현재 상위 1%는 최소 9억9100만원 이상, 상위 10%는 최소 2억2400만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으로 따지면 그 규모가 훨씬 커진다. 상위 1%의 평균 보유 자산은 24억3700만원, 상위 10%는 6억2400만원이다. 상위 1%와 10% 안에서도 격차가 크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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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 자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동산 가치는 공시가격 기준이다. 실제 가격보다 낮게 평가됐다는 것이다. 김낙년 교수는 “부동산 가치 산정 기준을 시가로 전환하면 자산액은 34%가량 커진다. 시가를 기준으로 하면 상위 1%는 13억원을 넘어야 하고, 상위 10%는 3억원을 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상위10% 자산 66% 보유하위50%는 2%에 그쳐돈이 돈버는 사회 갈수록 심화저성장·극심한 취업난 속‘부모 주머니’ 사정 따라부와 빈곤으로 삶의 질 엇갈려
계층별 평균 자산 변화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계층별 평균 자산 변화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부의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부자들의 자산이 더 빠른 속도로 불어났기 때문이다. 2000~2007년엔 상위 1%가 전체 부의 24.2%, 상위 10%가 63.2%를 차지했는데, 2010~2013년에 이들의 자산 비중이 각각 1.7%포인트와 2.8%포인트씩 올라갔다. 평균 자산도 상위 50%는 2000년 1억2000만원에서 2013년 1억8400만원으로 1.5배 늘어나는 데 그쳤으나, 상위 1%는 같은 기간 1.8배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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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상위 10%의 자산 비중
국가별 상위 10%의 자산 비중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부의 불평등 수준을 다른 나라와 비교한 내용도 담고 있다. 2010년 현재 미국과 영국은 각각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76.3%와 70.5%를 차지해 우리나라보다 자산 집중도가 높았다. 반면 프랑스와 스웨덴은 각각 62.4%와 57%로 우리나라보다 낮았다.

보고서는 “미국·영국·프랑스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상위 10%의 자산 집중도가 80~90% 수준으로 매우 높았으나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하락한 뒤 1980년대 이후 다시 상승하는 유(U)자형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만 미국과 영국은 자산 집중도 상승이 두드러진 반면, 프랑스는 62%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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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성장 속 부의 대물림

김낙년 교수의 이번 연구는 프랑스의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문제의식이나 주장과 맞닿아 있다. 피케티 교수는 2014년 국내에서도 발간된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세계적인 부의 불평등 양상을 고발한 이후 크게 주목받고 있는 학자다. 피케티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성장률이 떨어지면서 노동을 통해서 얻는 소득보다 과거에 축적된 부와 그로부터 얻는 수익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며 “부(자산)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 교수는 이번 보고서에서 부의 원천은 따지지 않았다. 즉, 상속 또는 증여를 통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인지 아니면 본인이 경제활동을 통해 축적한 부인지를 구분하지 않은 채 부의 불평등 수준만 보여줬다. 김 교수는 “남은 과제는 자산 분포의 실상을 풍부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최근의 상황을 보면, 피케티의 이론이 국내에서도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있고 취업난과 교육 격차가 커지면서, 대물림된 부가 개인의 경제활동보다 재산 형성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세대의 자조적 표현인 ‘수저 계급론’도 맥락을 같이한다. 수저 계급론은 부모가 갖고 있는 부의 수준이 자녀의 삶을 결정짓는다는 세태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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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부를 이전받는 사람이 소수에 불과한 상황에서, 물려받은 부가 자기 능력이나 성과에 따라 받는 보상보다 중요해진다면 부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종/김경락 기자 sp9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