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는 돈이 쌓여가는 반면, 가계는 빚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해 재벌그룹 상장사들의 내부유보금이 40조원 가까이 불어나 500조원을 돌파했다.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만 따져본 것이다. 유보금은 영업이나 투자활동으로 벌어들인 소득이 기업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남아 있는 자금이다. 같은 기간 가계는 67조6000억원의 빚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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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재벌닷컴이 국내 10대 그룹 96개 상장사의 2014회계연도 재무제표(개별)를 기준으로 살펴본 결과, 이들 96개사 유보금은 지난해 말 현재 503조9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37조630억원(8.1%)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유보금이 납입자본금 대비 어느 수준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유보율도 1년 전 1257.6%에서 1327.1%로 69.5%포인트나 뛰었다.

그룹별로 나눠 보면,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낸 현대중공업그룹을 뺀 9개 그룹에서 모두 유보금이 늘었다. 18개 상장사를 보유한 삼성그룹의 증가폭이 가장 컸다. 이 그룹의 유보금은 1년 전보다 20조6500억원(11.7%) 늘어나 지난해 말 현재 196조7100억원에 이르렀다. 현대차그룹(11개 상장사)도 유보금이 10조원 남짓 늘어나 102조1500억원으로 집계됐다. 두 그룹 유보금 총액은 2013년 기준 명목 국내총생산(GDP)과 단순 비교하면 20.9% 수준이다. 이밖에 에스케이(SK)그룹은 5조4300억원 늘어난 53조500억원, 포스코그룹은 5500억원 불어난 45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엘지(LG)·롯데그룹은 1조8700억원과 8500억원씩 늘어나 유보금은 42조3200억원, 27조9400억원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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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별로는 삼성전자가 전년보다 9.8% 증가한 138조8700억원으로 10대 그룹 상장사 가운데 유보금이 가장 많은 회사로 나타났다. 2~3위에 이름을 올린 현대차(44조9400억원)나 포스코(42조4400억원)에 견줘도 세배 이상 많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일부 투자금도 섞여 있는 등 유보금 모두가 기업 곳간에 현금 형태로 쌓여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유보금이 불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자금이 기업 안에 고여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내부유보금 증가는 기업 수익은 크게 늘어난 반면 배당성향은 높아지지 않은 데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은행의 국민계정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기업의 2013년 수익은 2000년에 견줘 3.33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가계소득은 2.06배로 증가하는 데 머물렀다. 가계는 소득 증가가 완만한 가운데 주택 매입 등을 위해 빚을 늘려, 가계부채는 2014년 말까지 최근 5년 사이에만 313조원이나 늘어났다. 기업에는 돈이 쌓이고 가계는 빚을 내는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우리 경제는 내수 침체가 길어지고 금융 불안이 커가고 있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 내에 머물고 있는 소득을 밖으로 끌어내고 가계소득을 증대하는 정책 대응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경락 기자, 이정훈 기자 sp9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