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한 방송국에서 친환경농업의 허실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한다는 소식에 농민들과 유통 관계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농약 안 쳤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느냐며 의문을 표하던 소비자들의 불신을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순환 원리와 노동력만으로 농사를 짓는 유기농업이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74년, 40년 전의 정농회 창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기농을 개척하던 초기에는 정부의 증산정책에 거스른다고 농민들이 빨갱이로 몰리기 일쑤였다. 시장에 내놓으면 벌레 먹어 볼품없는 작물이라고 상품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고난의 시기를 겪었다. 하지만 벌레도 못 먹는 걸 사람에게 먹일 수 없다는 신념으로, 유기농민들은 바른 농업의 길을 고집했다. 똥지게도 마다하지 않는 고된 노동을 견뎌냈다. 이 땅의 유기농업을 일군 것은 이들 선구자 농민들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뿌리를 내린 친환경 시장이 이제 전체 농산물의 10%를 넘어 주류 농산물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됐다. 아이 건강을 생각하는 엄마라면 누구나 친환경농산물을 찾는 시절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나서서 법을 만들고 진흥책을 실시하고 있다. 농산물 시장의 전면 개방에 맞서 우리 농업이 살 수 있는 길은 친환경농업뿐이란다. 소비자가 몰리니 대기업도 뛰어들어, 대형 할인매장의 친환경식품 코너는 하루가 다르게 평수를 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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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친환경 시장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장벽은 신뢰의 문제이다. 정부가 나서서 인증제로 보증하는데도, 소비자의 신뢰가 그렇게 두터워지지는 않고 있다. 돈이 된다니까 농민들이 너도나도 친환경농업에 달려들고, 그중 유기농의 신념이 없는 일부 농민들이 스스로 신뢰에 금이 가게 하는 ‘농약 사고’를 가끔씩 일으키고 있다. 병충해가 기승을 부릴 때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농약을 뿌리는 농민들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는 것이 신뢰를 형성하는 출발점이다. 생협들이 그동안 해온 방식이다. 생협의 소비자 조합원들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농민들과 농사짓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람에 대한 서로의 믿음을 가꿔왔다. 한살림생협은 아예 생산자 농민과 소비자들이 하나의 조직 안에서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관계를 형성했다. 농민들 스스로 친환경의 신뢰를 관리하고 소비자들이 함께 점검하는 자주적인 인증도 조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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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들어가는 작물을 보다 못해 농약통을 멨다가도 직접 만났던 소비자의 얼굴이 떠올라 그만두었다는 한 농민의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농산물의 진위에 대한 믿음을 넘어 사람들 사이의 믿음을 만드는 것이 생협이 추구하는 살림살이 경제의 핵심이다. 협동조합이 이윤이나 상품을 앞세우는 사업체가 아니라 사람 중심의 사업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뢰는 정부나 지자체, 혹은 시장이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안전한 농산물의 필요를 절박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자발적 참여와 노력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불신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 신뢰의 온기를 불어넣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윤형근 한살림성남용인생협 상무 ecosou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