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이 시장에 쏟아낸 2조원가량의 기업어음과 회사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산 매각 등 동양그룹이 현재 진행중인 구조조정이 차질을 빚으면서 4만명에 이르는 투자자들이 들고 있는 기업어음과 회사채가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21일 동양그룹과 금융감독원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동양그룹이 발행한 기업어음과 회사채 물량 가운데 투자자들이 들고 있는 물량은 각각 1조원이다. 동양그룹은 지난 3월 말 현재 부채비율이 1300%(연결 기준)에 이를 정도로 재무상태가 매우 취약한 형편으로, 지난해 말 이후 자산 매각 등 구조조정을 진행중이다.
동양그룹이 발행한 기업어음 등은 신용등급이 BB-(한국신용평가 기준)로 투자 부적격(투기) 등급이다. 하지만 연 8% 안팎의 고금리를 제시하고 있는 탓에 한차례도 청약이 미달되지 않을 정도로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지난 7월 공모한 회사채 청약 경쟁률도 1.8 대 1 수준이었다.
고금리 유혹에 이끌려 채권의 부도 위험을 간과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셈이다. 기업어음과 회사채는 상환 기일 전에 발행 기업이 부도가 나면 원칙적으로 투자금을 한푼도 회수할 수 없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동양그룹 채권에 너무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당국은 동양그룹의 회사채와 기업어음 투자자를 각각 2만5000명과 1만5000명으로 추산했다.
동양그룹은 올해 들어서만 매달 1차례 정도로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발행하고 있다. 대부분 운영자금과 만기가 된 회사채 및 기업어음 상환 목적이다. 한마디로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금융권 관계자는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에서 흔히 나타나는 ‘폭탄 돌리기’”라고 꼬집었다. 특히 동양그룹은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을 우회하기 위해 금융기관 대출을 회사채 등 시장성 여신으로 전환해왔다.
이러한 폭탄 돌리기는 오는 10월 말을 넘기기 어렵다고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동양그룹은 회사채와 기업어음 판매를 소속 금융계열사인 동양증권에서 절반가량 처리하고 있다. 신용등급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10월 말부터는 계열 증권사를 활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10월 말부터 투자 부적격 등급을 받은 기업어음과 회사채는 소속 금융계열사에서 판매할 수 없도록 관련 규정이 지난 4월 말 만들어졌다.
신용등급 개선의 관건은 구조조정 성사 여부다. 동양그룹은 지난해 말 고강도 재무구조 개선과 에너지 중심의 사업구조 재편 계획 등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구조조정 성과는 미미하다. 단적으로 올 상반기까지 2조원의 유동성을 확보할 계획이었으나, 21일 현재까지 유동성 확보 실적은 목표 대비 17.5% 수준에 그치고 있다. 시장 일각에선 동양그룹 사주 일가가 자산 매각에 소극적인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동양그룹 고위 관계자는 “인수 후보자들이 예상 매각 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후려치면서 자산 매각이 지연되고 있다. 내달 중순까지는 지연된 자산 매각을 완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양그룹은 다음달 중순까지 동양매직과 동양파워 매각 등으로 6000억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하면 10월 위기를 넘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경락 기자, 곽정수 선임기자 sp9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