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찍어낸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15일 금융감독원이 내놓은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유동성 현황 및 향후 전망’ 자료를 보면, 미국과 일본,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6개국) 세 나라가 발행한 화폐 공급량(본원통화량)은 2007년 말 2조9000억달러에서 2013년 6월 6조6000억달러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우리 돈으로 약 4000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액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특히 주요 기축통화국 중앙은행들은 경기부양을 위해 국채 발행 등의 방식으로 통화 공급량을 급격히 늘렸다. 구체적으로 보면, 미국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3차례 ‘양적완화’를 실시하면서 2007년말 8000억달러였던 본원통화량이 2013년 6월 3조2000억달러로 4배 늘었다. 같은 기간 일본은 96조엔에서 173조엔으로, 유로존은 8000억유로에서 1조3000억유로로 각각 늘어났다.
경쟁적으로 돈을 풀었지만 그만큼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들 기축 통화의 공급량은 두배 이상 늘었지만. 실제로 시장에 풀린 돈(광의통화·M2)은 20%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금감원 자료를 보면, 2007년 미국·일본·유로존 세 나라의 광의통화는 28조4000억달러였는데, 2013년 6월 현재 34조2000억달러에 그쳤다. 화폐의 유통 속도를 보여주는 통화승수(본원통화량 대비 광의통화 비율)는 2007년 9.6에서 지난 6월에는 5.2로 크게 낮아졌다. 통화 공급량에 견줘 실제 시장에 돈이 많이 풀리지도 않았고 그나마 잘 돌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금감원은 “북유럽의 견조한 성장세와 미국의 경기 회복이 있었기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돈이 돌았다”고 분석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김철웅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팀장은 “경제 회복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고, 시장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늘어난 화폐가 실물 부문으로 원활하게 흐르지 못하고 중앙은행 등 금융부문으로 상당부분 환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제 상황이 좋다면 돈을 벌기 위해 앞다퉈 예금을 하고 대출을 받고 채권을 발행하는 등 돈이 활발하게 돌겠지만, 경제 상황이 나쁜 상황에서는 예금도 줄고 대출을 쓰겠다는 사람도 줄어 ‘돈맥경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세계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되지 않은 이상 비슷한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들 세 나라는 경기 회복세가 본격화되는 2015년 이후에나 양적완화를 중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그때가 되더라도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양적완화 축소가 이뤄질 것이다. 금감원은 “양적완화 축소가 개시되더라도 당분간 유동성 공급이 지속되지만, 사람들은 유동성 축소 정책으로 인식해 금리가 오르고 주가가 하락하는 등 시장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됐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