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째 계속되는 전력난은 전기사용 피크시간대인 오후 2~5시 사이의 전력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에서 발생한다. 이른 아침이나 밤처럼 평소 전력 사정이 여유있을 때 생산한 전력을 모아놨다가 피크시간대에 공급할 수 있다면? 여유 전력을 휴대전화 배터리처럼 충전했다가 피크시간대에 가정이나 공장에서 쓸 수 있다면? 새로운 발전소를 계속 짓는 것보다 훨씬 지속가능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에너지저장장치(ESS·Energy Storage System)가 전력난과 함께 ‘해결책’으로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스에스 산업과 시장도 꾸준히 성장하는 흐름이다. 이에스에스는 심야 전력을 이용해 저수지 아래 물을 위로 끌어올려 전력이 필요할 때 방수하는 양수발전처럼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간에 공급하는 모든 설비를 일컫는다. 1조원의 비용이 드는 양수발전소 대신 최근에는 2차전지 등을 활용한 ‘대용량배터리’ 개념의 이에스에스 기술개발과 양산이 활발한 상태다. 문승일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지난 4월 국회 토론회에서 “이에스에스를 발전기에 포함시키고, 신재생에너지의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네비건트 리서치는 “전세계 이에스에스 시장이 2013년 16조원에서 2020년 58조원 규모로 연평균 53%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역시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이에스에스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이에스에스는 스마트그리드(지능형전력망)의 핵심 장치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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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스에스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소재와 2차전지 등에 대한 기술개발을 해온 국내 업체들도 이에스에스 시장 공략에 힘을 쏟고 있다. 주로 날씨에 따라 전력 생산이 불규칙한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저장해 공급하는 이에스에스 시장 진출이 활발하다.

엘지(LG)화학은 “세계 최대 태양광 인버터 회사인 독일 에스엠에이의 차세대 가정용 태양광 이에스에스에 배터리 공급 업체로 선정돼, 유럽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고 14일 밝혔다. 엘지화학은 지난 5월 북미 최대 이에스에스 실증 사업의 배터리 공급 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사업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테하차피 풍력발전단지에서 생산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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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과 삼성에스디아이(SDI)도 이에스에스시장 공략에 팔을 걷고 나서고 있다. 효성은 제주도에 5㎿규모의 이에스에스를 구축하고, 올 하반기에는 홍콩 전력청에 400㎾급 제품을 납품하는 등 이에스에스 구축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에스디아이는 지난 4월 독일 ‘유니코스’와 공동으로 유럽 최대 규모(10㎿급)의 이에스에스를 독일의 전력업체인 베막사에 공급하기로 했다. 석유화학 회사인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과 롯데케미칼도 이에스에스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물론 이에스에스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비싼 가격과 작은 용량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포스코경영연구소는 보고서에서 “본격적인 사업활성화는 민간주도의 경쟁체제 구축과 함께 2020년 이후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전망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