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 해결을 위해 출범한 전문가협의체가 활동기간 종료와 권고안 발표를 나흘 앞두고도 합의점을 못 찾고 있다. 주민·야당 쪽 추천 위원들은 5일 기자회견을 통해 전문가협의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전 쪽 추천 위원 사퇴를 촉구할 예정이다.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반대대책위) 추천 위원인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한전 쪽 추천 위원들이 한전의 송전탑 강행 논리만 되풀이하는 상황에서 전문가협의체는 공사 재개를 위한 절차적 정당성만 인정해주는 기구가 되고 있다. 이에 (한전 추천 위원) 3명의 사퇴를 촉구하는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밝혔다.
밀양 송전탑 문제 해결을 위해 국회 중재로 지난달 5일 출범한 전문가협의체는 한전·반대대책위·국회에서 각각 3명씩 추천한 위원 9명으로 구성돼 그동안 한전과 전력거래소 쪽에서 제출한 자료를 검토해왔다.
갈등은 지난 2일 전문가협의체 회의에서 한전 추천 위원들과 주민·야당 추천 위원들이 각각 작성한 보고서를 내놓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양쪽이 제시한 보고서가 평행선을 달렸기 때문이다. 애초 이날 회의는 밀양을 지나는 90.5㎞ 구간 송전선로 건설 대신 다른 대안이 가능한지 여부를 논의하고 합의점을 찾기로 한 자리였다.
송전탑 건설 대신 기존 선로 활용, 우회 송전, 지중화(송전선 땅속에 매립) 등 대안을 요구해온 주민·야당 추천 위원들은 “한전 쪽 추천 위원들이 써온 보고서가 기존 한전과 전력거래소가 제출한 자료의 데이터와 논리를 그대로 인용했다. 원점에서 해결방안을 논의하자는 전문가협의체의 출범 취지와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보고서는 신고리원전 3호기를 가동하고 기존 선로를 활용할 경우에 대해 전력거래소의 자료와 유사한 시뮬레이션 값과 그래프를 제시했다. 이에 대해 한전 쪽 추천 위원인 문승일 서울대 교수(전기공학)는 “전력거래소의 데이터가 신뢰할 수 있고, 맞다고 판단해 (전력거래소의 자료를 참고해) 작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야당 쪽 추천 위원들이 반발하는 것은 전문가협의체 구성상 한전의 입장과 유사한 보고서가 ‘다수의견’으로 국회에 보고된 뒤 송전탑 공사가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야당 쪽 추천 위원들은 “한전이 기존선로를 활용할 경우 송전선에 걸리는 부하율과 정전 위험을 과장하고 있고, 지중화 역시 다른 공법을 적용하면 시간과 비용을 단축할 수 있다”며 다른 대안들도 실현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이다. 하승수 위원은 “주민·야당 위원들이 독자적으로 검증하고 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새로운 검증 기구를 구성해 검토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고 전했다.
40일이라는 시간이 기술적 쟁점을 논의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인 만큼, 더 시간을 갖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애초 송전탑 건설 강행의 명분인 신고리원전 3호기도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여부 조사 등으로 12월 가동이 불투명한 상태다. 여당 추천위원인 김발호 홍익대 교수(전자전기공학)는 “활동기간 안에 합의점을 못 찾으면 연장해서 충분히 논의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전 관계자는 “공사를 중단하고 전문가협의체를 통해 해결하기로 한 만큼 합리적인 방안이 나왔으면 한다. 권고안이 나오면 따를 것이다”고 말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