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나라 최고 ‘집부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아니라 박 아무개씨란 말이 항간에 떠돌았다. 지난 2007년 심상정 민주노동당(현 통합진보당) 의원실에서 일하던 손낙구 보좌관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는 곧바로 국세청에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납부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하지만 국세청은 개인 정보보호를 내세워 거부했다. 손 보좌관은 “정보 누출이 그렇게 염려되면 종부세를 많이 낸 1위부터 100위까지 자료를 익명으로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국세청은 종부세 납부액을 1~5위까지 평균값, 6~10위까지 평균값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다고 알려왔다. 손 보좌관은 “그렇게 하느니 의미가 없다”며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이듬해 같은 당 소속의 이정희 의원은 여당인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이 발의한 종부세 감세 법률안이 실제 시행되면 세수가 얼마나 줄어드는지 국회예산정책처에 분석을 의뢰했다. 국회예산정책처한테서 돌아온 답은 ‘세수 추계 불가’였다. “국세청이 과세 정보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이 의원은 당시 국세청에 요구한 ‘소득세 납세 표본자료’를 18대 국회 임기가 마무리되는 지금까지도 받지 못하고 있다.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의원들은 납세 자료 공개를 요구하지만, 국세청은 앵무새처럼 “개인 정보이므로 제출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으로 버텨오고 있다. 법을 만드는 국회조차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과세 자료를 받지 못해 법률안 제개정에 따른 비용을 가늠할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소득분배 악화 및 집중이 우리사회의 핵심 화두로 떠오르고 있음에도, 정작 가장 중요한 기초자료인 과세 자료를 국세청이 공개하지 않아 제대로 된 실태 파악조차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례로 조세연구원은 지난달 국내에서 처음으로 우리나라 소득 상위 1%(100분위 중 1분위)가 전체 소득의 16.6%를 차지하고 있다는 자료를 내놨다. 분석을 맡은 박명호 연구위원은 “어차피 국세청에 상세 자료를 요구한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분석에 한계가 있었음을 내비쳤다. 현재 국세청이 매년 공개하는 국세통계연보에는 100분위(모집단의 1%)보다 표본의 유용성이 크게 떨어지는 10분위 자료만이 실려있다. 통계청 관계자는 “우리조차 국세청 자료를 받아볼 수 없다”며 “좀 더 구체적인 과세 자료가 있다면 소득분배의 실태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선진국은 정보공개에 적극적이다. 영국의 과세 당국은 이미 1911년 전체 인구의 약 0.05%에 해당하는 1만2000명의 ‘슈퍼 부자’에 대한 구체적인 납세자료를 공개했다. 미국도 납세자의 이름 등을 숨긴 채 ‘마이크로 데이타’(개인별 과세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경제학)는 “미국과 프랑스처럼 마이크로 데이타를 임의로 표본 추출해 공개해야 한다”며 “그게 어렵다면 과표 및 소득 구간을 더욱 세분화화고, 과거 자료들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국세청이 과거에 비해 정보 공개의 문턱을 조금 낮추고 있는 건 사실이다. 국세청은 지난해 처음으로 국회예산정책처에 ‘소득세 100분위’ 자료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는 일회성에 그쳤을 뿐이며, 그나마 다른 기관이나 일반엔 공개되지도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정보 공개 폭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홍헌호 시민사회경제연구소장은 “스웨덴이나 핀란드 같은 나라에선 옆집의 세금 납부내역까지 다 볼 수 있다”며 “소득분배 개선 등의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국세청에 좀 더 상세한 과세 자료 제공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