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1997년 3월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직전에 이건희 삼성 회장의 아들 이재용(현 삼성전자 전무)씨의 계열사 지분을 대량 매입한 정황이 새롭게 드러났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12일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공개한 ‘JY(재용) 유가증권 취득 일자별 현황’ 문건을 분석한 결과, 이런 정황을 알게 됐다고 27일 발표했다.
개혁연대 발표를 보면, 이재용씨는 94~95년에 두 차례에 걸쳐 신주인수권부사채(BW) 형태로 삼성엔지니어링 주식 28만주를 주당 5500원에 매입한 뒤 유상증자를 거쳐 총 47만4720주를 확보했다. 이후 97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이씨는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전량매각해 260억7800만원의 매매차익을 거뒀다. 또 94년 10월 에스원 주식 12만2천주를 매입한 뒤 에스원 상장 이후인 96년 8월부터 지분 매각에 나서기 시작해 97년 2월 나머지 주식의 전량인 10만1139주를 일괄매각해 모두 332억5200만원의 차익을 남겼다. 이재용씨의 두 회사 지분이 금산법 24조의 ‘5% 룰’이 적용되기 직전에 집중 처분된 것이다. 금산법 24조는 ‘동일계열 금융기관은 감독당국의 승인 없이는 비금융 계열사의 지분을 5%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는 것으로, 97년 3월1일부터 시행됐다.
이씨의 엔지니어링 주식과 에스원 주식 매각 직후 삼성생명의 해당 회사 지분율이 크게 올라갔다. 예를 들어 96년 말까지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갖고 있지 않았던 삼성생명은 이씨의 지분 매각 이후인 97년 6월 39만주(지분율 6.5%)를 보유한 주요 주주로 부상했으며, 에스원의 경우에도 삼성생명이 확보했던 지분이 이씨가 매각한 지분 규모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앞뒤 정황을 두고, 경제개혁연대는 그룹 차원에서 금융계열사를 동원해 이재용씨의 주식 매입을 기획했다는 의혹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이씨의 지분을 한꺼번에 대량 처분하는 데 따른 주가폭락의 위험을 방지하고 내부지분율 하락을 막기 위해 금융계열사를 동원할 수밖에 없었는데, 금산법 적용을 피해나가자면 그 시점이 97년 2월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특히 “금산법상 벌칙 규정은 2000년, 매각명령 등 시정조치권 조항은 2007년에 신설됐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지 몰라도 2003년 동부그룹에 대해 구보험업법에 근거해 매각명령을 내린 바 있다”며 “금융당국은 삼성생명 등이 위반한 사실을 인지했는지, 알았으면 왜 보험업법에 근거해 제재를 안 했는지 해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