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서포터즈’로 선정된 케이티(KT) 임직원 400여명이 지난 2월21일 발대식을 마친 뒤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케이티는 사회책임경영의 하나로 아이티 서포터즈를 통한 ‘정보기술 나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케이티 제공
‘아이티 서포터즈’로 선정된 케이티(KT) 임직원 400여명이 지난 2월21일 발대식을 마친 뒤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케이티는 사회책임경영의 하나로 아이티 서포터즈를 통한 ‘정보기술 나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케이티 제공

“동강 건너에 있는 산 중턱의 외딴 집에 할머니가 홀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전화를 놔 달라고 신청했어요. 산 길을 따라 전화선을 까느라 600만원 가량 비용을 들였는데, 아 글쎄 그 할머니가 시외전화는 데이콤 것을 쓰겠다고 하더라구요. 서울에 있는 아들이 데이콤 요금이 싸다고 했다나요. 힘이 쫙 빠지더라구요. 그러나 어쩝니까.”(유재훈 케이티 영월지점 과장)

“홍수로 오지 마을의 길이 다 끊겼을 때, 그 마을로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대부분 케이티 직원입니다. 케이티 직원 중에는 전화선을 깔고 보수하는 일을 수십년 동안 해온 사람들이 많은데요, 이들은 전화선이 끊겨 통화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는 잠을 못 이룹니다.”(전홍표 케이티 강원본부 과장)

케이티 직원들은 한결같이 “케이티는 다른 통신업체와 다르다”라고 강조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전화는 연결되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통신구에 화재가 났을 때였어요. 화재는 진압됐지만, 열이 식지 않아 누구도 들어가길 꺼리는데, 전화국 직원이 케이블을 빨리 복구해야 한다며 들어가더라구요.” 황대운 마산지점장은 “월급을 아무리 많이 줘도 사명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케이티 직원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모습이 배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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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시절의 기억, 부담이면서 최고의 자산민영화 뒤 자부심 상처…정체성 위기 벗어나야

케이티는 1890년대부터 1981년까지는 정부기관, 이후부터 2002년까지는 한국전기통신공사, 그 뒤에는 종합통신업체 케이티로 변신하면서 우리나라 통신시장을 키우고, 서비스를 발전시켜왔다. 지금도 통신업계의 ‘맏이’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종합통신업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케이티 이동전화 자회사(한국이동통신)가 민영화돼 에스케이텔레콤으로 성장했고, 통신업계의 핵심 인력 가운데 상당수가 케이티 출신이다. 케이티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에도 ‘최고의 직장’으로 꼽히고, 케이티 직원들은 최고의 사위감·며느리감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2002년 케이티가 민영화하면서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다. 직원들이 자부심으로 느끼던 게 ‘미련한 것’ 내지 ‘바보스런 짓’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자본의 논리가 기존 가치관을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케이티가 ‘공룡’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비대하고 미련하다는 뜻이다. 구조조정을 하라는 요구였다. 급기야 “날 수 있는 공룡이 되자”는 경영목표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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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구조조정을 왜 하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6만4천여명에 이르는 임직원 수를 3만명대로 줄이는 것, 그 자체가 목표인 것처럼 보였다. 부서별로 할당이 떨어졌고, 나이가 많거나 부부가 함께 근무하는 사원들이 우선 정리 대상으로 지목됐다. 특히 부부 사원들에게는 당연히 한 명은 나가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압력이 가해졌다. 버티는 부부 사원들은 각각 오지로 발령낸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대부분 아내쪽에서 눈물을 훔치며 사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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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만6천여명이 나가면서 케이티의 임직원 수는 3만8천여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공룡’이란 꼬리표는 여전히 따라다닌다. 날기는 커녕, 더 허약해졌다는 지적도 많다. 게다가 케이티는 공기업 민영화의 실패 사례로 꼽히고 있다. 민영화 뒤 고용 사정과 소비자 편익이 함께 나빠졌다는 것이다. 위기관리 능력도 떨어진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케이티의 한 직원은 “미련한 놈 취급을 하는데, 누가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케이티는 ‘소비자들의 기대’를 자산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비용 유발 요인으로 볼 것인가를 놓고도 혼선을 빚고 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소비자들은 이삿짐을 내놓으면서 전화를 이전해 달라고 신청하고, 통신업체들이 똑같이 소비자를 홀대하는 행위를 했어도 케이티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다른 업체는 몰라도 케이티는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케이티 내부에서는 “왜 케이티만 갖고 그러느냐”는 불만과, 케이티가 가진 최고의 자산이란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 효율성을 중시한다고 하면서도 ‘끌어주고 밀어주는’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있고, 사장이 바뀔 때마다 경영 철학이 바뀌는 것도 혼선을 일으켜 민영화 효과를 살리지 못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케이티는 지금도 “변화하고 또 변화하라”며 혁신의 고삐를 죈다. ‘디지털 지식사회를 이끄는 세계적인 종합통신업체로 도약하자’는 게 목표다. 사회책임 경영도 강조한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케이티’ 하면 떠오르는 모습은?정장과 캐주얼 모두 어울리는 전문직 남성대학생들이 그린 케이티의 이미지는 보통 체형에 유행을 타지 않는 정장 차림을 한 32살 안팎의 전문직 남성이었다. 이는 <한겨레>와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대학생 219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10대 기업 이미지 조사’에서 나온 결과다. 케이티에 대한 설문 결과를 항목별로 살펴보면, 성별 이미지로 남성을 꼽은 응답 비율이 68.2%로 높은 편이었다. 나이는 30~34살이라는 응답 비율이 18.6%로 가장 많았고, 35~39살과 40~44살이라는 비율이 각각 14.7%였다. 그밖의 항목들에 대한 응답 빈도 수로 1위와 2위를 살펴보면, 키는 176~180㎝(24.8%)와 171~175㎝(23.3%), 얼굴형은 계란형(24.8%)과 둥근형(24.0%), 체형은 보통 체형(41.1%)과 마른형(18.6%), 옷차림은 유행을 타지 않는 정장 차림(38.0%)과 유행에 민감한 캐주얼 차림(30.2%), 직업은 전문직(24.0%)과 판매서비스직(22.5%) 등이다. 케이티의 이미지에는 정보통신 분야의 기업답게 젊고 전문적이라는 인상이 녹아들어 있었다. 옷차림에서 유행을 타지 않는 정장 차림과 유행에 민감한 캐주얼 차림이라는 응답 비율이 경합을 이룬 것은 과거 공기업의 이미지와 현재 아이티 대표 기업의 이미지가 중첩돼 있는 결과로 보인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