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경영승계 물위로
경영능력 안갯속 세계속 삼성 이끌까
삼성 “경영수업 진행중…겸손하고 자질 뛰어나”
통과의례 곤란…CCO 자리 책임질 일 거의 없어
삼성 “경영수업 진행중…겸손하고 자질 뛰어나”
통과의례 곤란…CCO 자리 책임질 일 거의 없어
#1. 몇해 전 이건희 삼성회장이 이학수 부회장에게 물었다. “기업이 망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이 부회장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그래도 한 3년 정도는 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다음 말에 깜짝 놀랐다. “망할려면 반년 만에도 망한다.”
#2.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성공요인으로는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과 그룹의 사령탑인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의 조정기능, 계열사 전문경영인들의 능력 등 세가지가 꼽힌다. 삼성이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꼽는 이 회장의 리더십은 ‘직관경영 능력’과 ‘오너쉽을 통한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설명된다. “기업의 경쟁력은 신속한 의사결정에서 나온다. 반도체의 경우 투자규모가 몇천억에서 몇조 단위로 커지면서 투자결정이 더욱 어려워졌다. 남보다 앞서 적절한 투자결정을 내릴 수 있는 힘은 최고경영자의 직관에서 나온다. 일본이 이것 저것을 재며 투자를 미루고 있는 사이 삼성은 신속한 투자결정을 통해 경쟁력에서 한발 앞서게 됐다. 경영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이 회장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한국경제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에서 최고경영자인 총수는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핵심적 위치다. 국민들이 삼성의 경영권 세습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설적이지만 경영권 세습에 반대하는 이들의 논거도 여기에 뿌리를 둔다. “경영능력이라는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 현대의 정주영 회장 같은 창업세대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진정한 영웅들이다. 그러나 재벌 2·3세로 태어나 후계자가 된 것은 개인이 능력과는 관계없는 것이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상장기업의 경영권은 개인의 사유물이 될 수 없다”며 삼성의 경영권 세습은 자본주의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더욱이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삼성 계열사 평균지분은 1.14%에 불과하다. 나머지 99%에 가까운 주식은 다른 소액주주나 계열사들이 갖고 있다.
후계자에 맡기려면 경영능력 객관적 검증 ‘필수’
삼성 전략기획실은 “후계자가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경영권을 승계하는 게 문제될 게 없고, 그래서 경영수업도 하는 것 아니냐”고 응수한다. 그러나 경영수업만으로 유능한 최고경영자가 길러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나마 한국 재벌의 후계자 수업은 ‘통과의례’ 성격이 짙다. 20대에 형식적으로 회사에 적을 걸어 놓고, 외국에서 적당히 공부하다가, 30대 초반에 임원을 달고, 30대 후반 이후 최고경영자 반열에 오르는 초고속 승진이 관행이다. 세계적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가족기업이라 하더라도 무능한 가족에게는 (최고경영자의) 일을 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도 “재벌들의 경영권 세습이 용납되려면 후계자의 경영능력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럼 이 회장의 외아들로 삼성의 공식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경영능력은 어떨까? 그가 직접 관련된 사업은 2000년 전후로 시작된 e삼성 등 인터넷사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 사업은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이 이 전무의 경영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벌인 사업이다. 그나마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대부분 실패했다. 이 전무에게 사업실패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로 삼기는 한계가 있다. 그가 등기이사로 있는 S-LCD(삼성과 소니의 합작회사)가 설립 3년 만에 흑자를 낸 것도 그의 공으로 보기는 어렵다. 삼성 안에서의 평가 “겸손하다” “예의바르다” “반듯하다” 엄밀히 말해 이 전무는 그동안 경영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받을 수 있는 일을 맡은 적이 없다. 2001년 이후 6년간 삼성전자 경영기획실 소속으로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그럼 그의 ‘학점’은 어떨까? 삼성전자의 김광태 전 홍보전무는 “삼성은 운이 좋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이 암시하듯 삼성 안에서 이 전무에 대한 평은 “겸손하다” “예의바르다” “반듯하다” 등등 칭찬 일색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임원은 “사장단회의에 들어와서도 듣기만 하고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면서 “회식자리에서 손수 폭탄주를 만들어 직원들에게 돌리는 소탈한 모습들을 보면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 간부는 “이 전무가 언론 대응 관련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데 교육비가 너무 비싼 것 같다며 깎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해 놀란 적이 있다”면서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휴지 한장도 아껴썼다는 일화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 전무에게 엄격한 예의범절 교육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언론사 대표는 “이 회장을 만나는 자리에 재용씨가 따라왔는데, 차 마실 동안 한쪽 구석에서 등받이도 없는 불편한 의자에 앉은채 한마디도 하지 않더라”고 말했다. 이 전무가 5~6년 전부터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꾸준히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순동 삼성 전략기획실장 보좌역(사장)은 “이 전무가 일본과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기에 앞서 대학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한 것은 ‘먼저 근본을 알아야 한다’는 할아버지(이병철 회장)의 말씀 때문”이라고 말했다. “COO(최고고객책임자), 조명에 비해 책임질 일 거의 없는 자리” 이 전무가 좋은 자질과 열심히 노력하는 자세를 가졌다면 삼성에는 다행이다. 하지만 그것은 최고경영자 심사대를 통과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될지는 모르지만 충분조건까지는 아니다. 그동안 이 전무에 대한 정보는 절대량이 부족했다. 그나마 삼성에서 들려준 얘기는 홍보 차원에서 사전에 철저히 걸러진 것들이다. 삼성은 앞으로 이 전무가 새로 맡은 삼성전자 최고고객책임자(CCO)로서의 활동을 통해 ‘이재용=삼성 후계자로서 적격자’라는 여론을 만들기 위해 총력전을 펼 것이다. 하지만 CCO 자리가 그의 경영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적당한 자리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경영능력은 권한과 책임이 함께 주어져야 공정한 평가가 가능하다. CCO는 삼성전자 국외 거래업체의 최고경영자들과 악수를 나누는 빛이 나는 자리이지만, 책임질 일은 거의 없다. 삼성전자의 한 고위 임원은 “이건희 회장에게 후계자로서 이재용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삼성의 축복일 수도 있고, 비극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전무의 기량이 미치지 못한다면 삼성의 3세 경영체제는 총수보다는 전문경영인의 역할을 더욱 크게 하는 새로운 지배구조를 강구해야 한다. <한겨레>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삼성의 경영실적 추이
삼성 전략기획실은 “후계자가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경영권을 승계하는 게 문제될 게 없고, 그래서 경영수업도 하는 것 아니냐”고 응수한다. 그러나 경영수업만으로 유능한 최고경영자가 길러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나마 한국 재벌의 후계자 수업은 ‘통과의례’ 성격이 짙다. 20대에 형식적으로 회사에 적을 걸어 놓고, 외국에서 적당히 공부하다가, 30대 초반에 임원을 달고, 30대 후반 이후 최고경영자 반열에 오르는 초고속 승진이 관행이다. 세계적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가족기업이라 하더라도 무능한 가족에게는 (최고경영자의) 일을 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도 “재벌들의 경영권 세습이 용납되려면 후계자의 경영능력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럼 이 회장의 외아들로 삼성의 공식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경영능력은 어떨까? 그가 직접 관련된 사업은 2000년 전후로 시작된 e삼성 등 인터넷사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 사업은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이 이 전무의 경영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벌인 사업이다. 그나마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대부분 실패했다. 이 전무에게 사업실패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로 삼기는 한계가 있다. 그가 등기이사로 있는 S-LCD(삼성과 소니의 합작회사)가 설립 3년 만에 흑자를 낸 것도 그의 공으로 보기는 어렵다. 삼성 안에서의 평가 “겸손하다” “예의바르다” “반듯하다” 엄밀히 말해 이 전무는 그동안 경영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받을 수 있는 일을 맡은 적이 없다. 2001년 이후 6년간 삼성전자 경영기획실 소속으로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그럼 그의 ‘학점’은 어떨까? 삼성전자의 김광태 전 홍보전무는 “삼성은 운이 좋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이 암시하듯 삼성 안에서 이 전무에 대한 평은 “겸손하다” “예의바르다” “반듯하다” 등등 칭찬 일색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임원은 “사장단회의에 들어와서도 듣기만 하고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면서 “회식자리에서 손수 폭탄주를 만들어 직원들에게 돌리는 소탈한 모습들을 보면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 간부는 “이 전무가 언론 대응 관련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데 교육비가 너무 비싼 것 같다며 깎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해 놀란 적이 있다”면서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휴지 한장도 아껴썼다는 일화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 전무에게 엄격한 예의범절 교육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언론사 대표는 “이 회장을 만나는 자리에 재용씨가 따라왔는데, 차 마실 동안 한쪽 구석에서 등받이도 없는 불편한 의자에 앉은채 한마디도 하지 않더라”고 말했다. 이 전무가 5~6년 전부터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꾸준히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순동 삼성 전략기획실장 보좌역(사장)은 “이 전무가 일본과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기에 앞서 대학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한 것은 ‘먼저 근본을 알아야 한다’는 할아버지(이병철 회장)의 말씀 때문”이라고 말했다. “COO(최고고객책임자), 조명에 비해 책임질 일 거의 없는 자리” 이 전무가 좋은 자질과 열심히 노력하는 자세를 가졌다면 삼성에는 다행이다. 하지만 그것은 최고경영자 심사대를 통과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될지는 모르지만 충분조건까지는 아니다. 그동안 이 전무에 대한 정보는 절대량이 부족했다. 그나마 삼성에서 들려준 얘기는 홍보 차원에서 사전에 철저히 걸러진 것들이다. 삼성은 앞으로 이 전무가 새로 맡은 삼성전자 최고고객책임자(CCO)로서의 활동을 통해 ‘이재용=삼성 후계자로서 적격자’라는 여론을 만들기 위해 총력전을 펼 것이다. 하지만 CCO 자리가 그의 경영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적당한 자리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경영능력은 권한과 책임이 함께 주어져야 공정한 평가가 가능하다. CCO는 삼성전자 국외 거래업체의 최고경영자들과 악수를 나누는 빛이 나는 자리이지만, 책임질 일은 거의 없다. 삼성전자의 한 고위 임원은 “이건희 회장에게 후계자로서 이재용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삼성의 축복일 수도 있고, 비극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전무의 기량이 미치지 못한다면 삼성의 3세 경영체제는 총수보다는 전문경영인의 역할을 더욱 크게 하는 새로운 지배구조를 강구해야 한다. <한겨레>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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