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여 간 논의 끝에 지난달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미 증시 상장 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후공시 방안을 확정했다. 공시는 오는 2026년부터 시작된다. 세계 자본시장의 중심부인 미국에서 기후공시가 의무화됨에 따라 여타 국가와 시장에서 추진돼 온 기후공시 도입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미 금융당국이 기후공시 규칙 최종안을 발표한 건 지난달 6일(현지시각)이다. 미 증시 상장 기업이 대상인 터라 포스코와 에스케이텔레콤, 케이티, 케이비금융, 한국전력 등도 공시 대상 기업이다. 국내 상장기업인 이들 기업은 미 증시에도 증권예탁증권(DR) 등의 형태로 올라가 있다.
공시 항목 중 핵심은 온실가스 배출량이다. 다만 범주가 가장 넓은 스코프3 기준 배출량은 공시하지 않아도 된다. 스코프3은 협력사와 물류 등 공급망 전반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도 포괄한다. 스코프1(직접배출량)과 사용한 전력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까지만 포함하는 스코프2(간접배출량)까지만 공시 대상이다. 2년 전 발표된 초안에는 스코프3도 공시 대상으로 포함돼 있었으나 기업들의 공시 부담을 고려해 기준을 완화한 것이다.
공급망서 배출되는 온실 가스는 포함 안돼
공시 범위는 온실가스 배출량에 그치지 않는다. 그 중 하나가 기후 변화가 가져올 사업과 재무에 미칠 위험이다. 기후 변화가 고유의 사업·재무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는 점을 반영한 조처다. 다만 얼마만큼 각 기업들이 객관적이고 합리적 수준에서 공시하느냐를 놓고 자칫 투자자와 기업 간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기업 규모에 따라 공시 의무화 시점은 차이가 있다. 대기업(시가총액 7억 달러 이상)은 2026년부터, 중견기업(시총 7500만~7억달러 및 연 매출 1억달러 이상)과 소기업(시총 7500달러 미만 및 연 매출 1억달러 미만)은 각각 공시 의무화 시점이 이보다 1, 2년씩 늦다.
기후공시 의무화에 대한 관심은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높아졌다. 이미 여러 기관에선 기후 공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 캘리포니아주는 지난해 제정한 기후기업데이터책임법을 통해 스코프3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을 관내 기업들은 2027년부터 공개토록 했다. 유럽연합도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를 통해 기후 공시를 권고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 역시 2중국 증시 상장 대기업을 대상으로 스코프3 기준 공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손서원 삼성증권 이에스지연구소 연구원은 “영국·일본·싱가포르 등도 기후공시제가 검토·추진되고 있다. 기후공시는 세계적 차원에서 확산되고 그 강도도 높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후공시 기준 놓고 갈등 불거질 듯
한국 정부도 조만간 기후공시 기준을 발표할 예정이다. 애초 금융위원회는 기후공시 의무화를 2025년부터 실행하기로 했으나 그 시점을 1년 이상 연기한다고 지난해 10월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의무화 시점 이유로 금융위는 미국 등 주요국 기후 공시 의무화 지연과 기업의 애로사항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일단 국내 전문가들은 미국 금융당국이 스코프3 기준 배출량 공시를 접은 점을 염두에 두면 한국 역시 미국보다 더 높은 수준의 공시를 국내 상장 기업에 요구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스코프3 기준 배출량 공시를 의무화할 경우 국내 기업의 반발이 거세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낸 보고서에서 “한국도 글로벌 표준을 참고해 공시 기준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다만 의무화 시기와 대상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