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무역·첨단기술 분쟁을 해소하고 글로벌 경제질서가 예전의 다자간 자유무역체제로 돌아가는 상황은 오지 않을 거라는 세계경제 석학들의 진단이 나왔다. 중국을 포위하려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반도체지원법은 실현 불가능하고 오히려 미국 재정적자 문제만 더 키울 거라는 비판도 나왔다.

26일 세계경제연구원 주최로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국제컨퍼런스(‘지정학적 도전, 기후변화 위기, 그리고 세계경제 미래’)에서 앤 크루거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는 “바이든 행정부는 세계 자유무역질서에서 이탈한 채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대중국 관세 전쟁을 그대로 이어받아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있고, 이번 반도체지원법도 매우 실망스럽다”며 “보호무역주의가 새로 확대되는 분기점이 된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험했던 것보다 더 거대한 세계경제 침체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크루거는 미국이 반도체 외에 다른 산업으로 ‘중국 포위 정책’을 확대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미국 안에서 모든 칩을 자체 생산하려는 목표는 달성 불가능하고 나중에 (바이든의) 끔찍한 실수로 판명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내 반도체 생산 원가가 기존 글로벌 분업체제 방식보다 40~50% 높아져 미국내 여러 제조상품 가격이 대폭 뛰게 될 것이고, 반면에 이 비용을 미국 정부가 대규모 재정보조금으로 해결하려들면 재정적자 문제만 더 키우게 될 거라는 주장이다. 그는 “바이든이 잘못을 깨닫고 빨리 다자 세계무역체제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기조연설에 나선 프레드 버그스텐 미국 피터슨경제연구소 명예원장은 “향후 글로벌 경제는 미중 패권경쟁 속에 경제리더십이 없는 미래를 맞을 위기에 놓여 있다”며 “1·2차 세계대전 사이에 있었던 재앙적 시기와 같은 막대한 피해를 입을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중국은 구매력 기준 국내총생산, 외환보유고 및 무역규모, 세계성장률에서 차지하는 비중에서 미국보다 이미 앞서가고 있고, 향후 10년 이상 지금보다 더 앞서게 될 것이라며 “중국은 미국과 거의 대등한 수준에 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중 양국이 동시에 굴복을 선언해 5년째 이어지고 있는 무역 분쟁을 끝내야 한다”며, 대안으로 ‘기능적 디커플링’을 제안했다. 양국이 인권·가치·안보에서는 의견 불일치를 수용하되, 경제부문에서는 상호 보완적으로 서로 보복관세를 줄여가는 등 실용주의적 협력을 지속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미-중의 경제 디커플링은 글로벌 경제에 재앙”이라며, 바이든 행정부가 실행중인 반도체지원법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국이 미-중 경쟁의 중심에 있는 만큼 적극적인 중재자로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클 스펜스 스탠포드대 교수(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온라인 연설에서 지금 글로벌 경제는 1980년대 초 이후 불안정성이 가장 높아진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경제질서가 다자간 무역체제로 되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며, “혼란스런 미-중 갈등 구도가 다소 개선된다 하더라도 한층 복잡하고 중첩적인 다자주의 무역체제가 전개될 것이고, 다양한 분열과 분절화가 향후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계완 선임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