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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인플레이션 낡은 해법, 그때는 맞았어도 지금은 틀리다

등록 :2022-01-07 08:59수정 :2022-01-07 09:43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파이낸스 l 주요 중앙은행 인플레이션 대응
2021년 12월15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텔레비전에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마친 뒤 인플레이션 대책을 발표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다. REUTERS
2021년 12월15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텔레비전에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마친 뒤 인플레이션 대책을 발표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다. REUTERS

중앙은행이 침체에 대응하는 도구는 기본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인다. 초저금리와 돈을 푸는 양적완화가 대표적이다. 시중 유동성 증가를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21세기 들어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지 않았던 이유가 있다. 양적완화의 이중적 성격 때문이다.

양적완화는 시장금리 상승 억제책으로 매우 효과적이었다. 시장금리가 오르면 중앙은행이 개입해 해당 채권을 매수하면 됐다. 그것이 민간채권이든 정부채권이든 상관없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시장이 반응하지 않을 때 금리를 내리는 묘약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중앙은행의 시장개입은 인플레이션 유발인자이기도 하지만 디플레이션 압력도 동시에 높인다. 과다한 부채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유동성 폭증은 일시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지만 그만큼 부채 압력 역시 커진다. 부채 폭증은 실물경제 침체의 원인이 되고 디플레이션으로 귀결된다. 중앙은행의 새로운 도구들은 양날의 검이다. 덕분에(?) 21세기 들어 인플레이션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인플레이션의 귀환

2021년 초 세계는 희망에 들떠 있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란 터널의 끝이 보였다. 경제 역시 좋았다. 거칠 것 없는 회복세와 재정·통화 정책으로 풀린 천문학적 규모의 돈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하리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주요 중앙은행은 그것을 ‘일시적’이라 치부했다. 필자 역시 그랬다. 2021년 여름까지만 해도 인플레이션은 지나가는 바람 같을 것으로 생각했다. 높은 수준의 부채가 경제활동을 억압해 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이 더 가능성이 크다고 믿었다.

그런데 가을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라는 생각이 점점 똬리를 틀었다. 겨울에 들어서면서 인플레이션은 그 뿌리가 깊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돌아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1년 12월 주요 20개국(G20)의 2022년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4.4%로 예상했다. 2021년 9월 전망치는 3.9%였다. 불과 3개월 만에 대폭 높였다. 특히 미국은 5%대 중반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놀랄 일은 아니다. 2021년 10월 미국의 전년 동월 대비 물가상승률은 6.2%, 11월 6.8%에 이르렀다. 이는 거의 40년 만의 최고치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수익률곡선제어 정책을 펴고 있다. 특정 국채의 금리 상하한선을 설정한 뒤 이를 넘으면 무제한 매입하거나 매도함으로써 금리를 관리한다. 장기금리를 낮게 유지해 신용 확대를 꾀하거나 채권시장에 몰린 자금을 실물경제로 흘러가게끔 유도할 목적이다. 경제 활성화가 목표다. 중앙은행이 가진 전가의 보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이 도구가 말을 듣지 않고 있다. 시장금리 제어를 통한 인플레이션 억제 기능이 엷어지고 있다.

흔들리는 중앙은행

대표적으로 호주중앙은행(RBA)이 시장의 역풍에 흔들리고 있다. 호주중앙은행은 국채 3년물 금리를 2024년 4월까지 연 0.1%로 유지한다고 공언했다. 이 채권 금리가 2021년 10월부터 급등해 현재는 거의 연 1%에 이른 상황이다. 이유가 뭘까?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으리란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관련 채권 매도가 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하락한다. 보유 채권 가격이 내려가리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면서 매도가 늘어난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호주중앙은행의 개입은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시장의 반응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유로존의 물가상승세는 심각하다. 독일의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92년 이래 최고치인 6%를 기록했다. 스페인과 벨기에는 5.6%였다. 11월 유로존 전체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9%에 이른다. 유럽중앙은행 물가 목표치인 2%의 2배를 훌쩍 넘는 수치다. 시장의 반격이 시작됐다. 유럽의 약한 고리인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국채 금리가 치솟았다. 11월에 내리긴 했지만 인플레이션이 지속된다면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란 견해를 유지했다. 가격상승세임에도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주요 중앙은행들은 그 뒤를 따랐다. 이제 인플레이션의 반격이 시작됐다. 주요국 중앙은행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캐나다중앙은행은 11월1일부터 양적완화를 완전히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금리인상 시기도 2022년 하반기에서 같은 해 4월로 앞당기기로 했다. 역시 국채 금리 상승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영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의 3년물 국채 금리는 9월 초 0.2% 수준에서 10월 말 0.8% 부근까지 치솟았다. 11월 말 현재 0.5% 수준이다. 2배 이상 올랐다. 금리인상 시기가 머지않았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기준금리를 올린 국가도 있다. 한국을 포함해 뉴질랜드, 노르웨이 등이다.

연준도 최근 견해를 바꾸고 있다. 12월 초 현재, 채권매입축소(테이퍼링) 속도를 높여 양적완화를 2022년 3월까지 종료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 일정은 11월부터 시작해 2022년 6월에 끝내는 것이었다. 한 달여 만에 계획을 변경해 테이퍼링 규모를 2배로 늘리고 가속화한다는 얘기다.

2021년 7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고층건물 밀집 지역에서 기차역 신설 공사를 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채권 금리는 중앙은행(RBA)이 공언한 억제선의 10배를 넘었다. REUTERS
2021년 7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고층건물 밀집 지역에서 기차역 신설 공사를 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채권 금리는 중앙은행(RBA)이 공언한 억제선의 10배를 넘었다. REUTERS

‘비둘기 행보’를 지속해온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기조 변화도 눈여겨봐야 한다. 12월1일 하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는 기존 견해를 버리고 높은 인플레이션이 2022년 중반까지 이어지리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심지어 2022년 하반기에도 인플레이션이 정상화될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연준은 12월14~15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성명에서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란 문구를 삭제하고 “테이퍼링 속도를 2배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또 2022년에 세 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2022년 3월 테이퍼링이 종료되면 봄에 금리인상이 가능하다.

새로운 양상

테이퍼링과 금리인상은 긴축을 의미한다. 전통적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인플레이션에도 효과가 있을까? 의문이다. 지금의 인플레이션 현상은 전통적 형태라고 보기 어렵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다는 희망에 수요가 늘기는 했다. 하지만 절대량이 늘었는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감염병 대유행(팬데믹)으로 급격히 줄었던 수요가 되살아나는 기저효과성 수요 증가라고 봐야 한다. 공급 부족 양상도 전통적인 것과는 차이가 있다. 생산량 부족이라기보다 공급망 혼란에 따른 공급 부족이다. 화폐가 과잉 공급되면서 자산시장의 인플레이션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것은 초저금리 시대마다 있었던 현상으로, 전반적인 물가상승세를 유도한다고 볼 수는 없다. 지금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은 공급망 혼란이다. 여러 현상이 복합되면서 인플레이션을 만들어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침체는 수많은 사람을 일자리에서 내몰았다. 이제 회복 국면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아 다시 일해야 한다. 그런데 불가사의하게도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세계 전체적으로 그렇다. 현재 공급망 혼란과 물류시스템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은 ‘인력 부족’에 있다. 노동에 관한 시대정신의 변화에 기인하는 인력 부족이 공급망 혼란으로 이어져 특정 재화의 가격과 임금 상승을 낳고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한다.

정책적 오류나 개입도 문제를 키웠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무역전쟁은 일시에 공급망을 혼란에 빠뜨렸다. 3년 전 트럼프가 미국 기술을 사용한 중국산 반도체 수입을 중단시키지 않았다면 현재와 같은 반도체 부족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 각국이 탄소중립을 위한 친환경·신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하지 않았다면 에너지 가격 급등 현상을 피했을 수 있다. 급격한 전환은 갈등을 낳고 시스템에 부하를 주기 마련이다.

빅데이터 혁명도 한몫했다. 기술 발달은 ‘최적화’를 이끌었다. 재고나 잉여를 최소화하는 기술은 이미 일상이 됐다. 그것이 어떤 시스템이든 잉여가 없을 때 취약하다. 문제가 생기면 대처할 방법이 없다. 공급망 혼란으로 공급이 부족해지면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문제는 이런 요인을 통제하는 게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재고나 잉여를 늘리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경제주체가 그렇게 시도한다면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정책 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정치적 합의가 필수다. 근본적으로 노동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이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노동에 관한 시대정신 변화를 이해하고 노동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 과정은 천문학적 비용을 수반한다.

결국 비용 증가를 피할 방법이 없다. 가격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하다. 적어도 공급망 재편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그렇다. 하지만 주요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대응은 통화정책에 치중돼 있다. 발생 원인이 다른데 해법은 과거와 같다. 오늘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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