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조세 원칙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당정이 뜻을 모아 세운 가상 자산 과세가 여당 대통령 선거 후보 확정 이후 흔들린 데 이어, 현행법 위반 논란을 낳고 있는 세금 납부 유예 꼼수 구상도 구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정부는 이런 여당의 무리수에 제동을 걸고는 있지만 힘에는 부친다. 여기에다 국민의힘의 윤석열 대선후보도 부동산 세제의 개편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세금의 정치 도구화 현상’이 짙어지는 흐름이다.
내년 1월부터 가상자산에서 발생한 소득에 과세하기로 한 방침을 흔든 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다. 이 후보가 과세 시점을 1년 유예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이후 과세 유예 구상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던 여당도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2030 등 이 후보가 취약한 젊은 계층의 표를 구애하기 위한 정치적 포석이라는 분석이 많다. 물론 이 후보와 여당은 과세를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는 걸 과세 유예의 명분으로 내걸고는 있다.
정부는 느닷없는 과세 유예 요구에 줄곧 반대 입장은 명확히 내고 있다. 총대는 경제 부처 수장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멨다. 홍 부총리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나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예정대로 과세한다”라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과세 인프라 미비 논란에 대해서도 “과세 가능하고 자신 있다”고 홍 부총리는 답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와 여당에서 나온 방역지원금 지급을 위한 세금 납부 예외 구상도 조세 원칙을 허문다는 평가가 있다. 초과 세수가 10조원가량 발생한다는 분석이 나온 이후 나온 주장이다. 남을 것으로 예상하는 세수를 올해가 아닌 내년에 걷는 ‘편법’을 동원해 전 국민에게 1인당 수십만원씩 뿌리자는 주장이다. 이달 들어 코로나19 감염자가 늘면서 ‘재난지원금’ 대신 ‘방역지원금’으로 문패를 바꿨다.
이 구상은 현실 가능성을 넘어 ‘불법 논란’에 휩싸여 있다. 납세자 사정을 고려해 세금 납부를 늦춰준 사례는 있지만 다음 해에 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유예하는 건 사례도 없을 뿐만 아니라 법률적 근거도 취약하다는 뜻이다. 홍남기 부총리는 국회에서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납부 유예할 경우 국세징수법에 저촉된다”고 말한 까닭이다. 국세청 고위직을 지낸 한 전직 관료는 세금 납부 유예 구상에 대해 “공무원에게 직권 남용이란 범죄를 저지르라는 요구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재명 후보와 여당의 이런 행보는 표면적으로는 여당과 정부 간 혹은 여당과 세정당국 간의 갈등 내지 대립으로 비치지만 해당 사안을 깊이 들여다보면 ‘편법과 원칙’의 대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당과 이 후보의 요구에 명분이나 법적 기반이 약하다는 취지다. 조세나 재정 분야 전문가들이 이념적 성향과 무관하게 “이해할 수 없다”란 반응을 보이는 까닭이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조세 원칙은 물론 자산 과세 강화를 약속한 문재인 정부 기본 기조와도 어긋난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현 정부에서 재정개혁특별위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별도 법을 만들거나 개정하지 않고서는 민주당이 말하는 납부 유예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난맥상에 야당도 가세하면서 혼란은 더 커질 전망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종합부동산세 전면 재검토’ 약속이 그 예다. 예년 보다 부쩍 늘어난 종부세 고지서를 최근 받아든 납세자의 불편한 심리를 겨냥한 발언이다. 대선 레이스가 막바지에 치달을수록 쏟아질 ‘익지 않은 매표 발언’의 예고편 성격이 짙다. 특히 서울 지역 아파트·전세 거래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등 불안 양상을 보이는 부동산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이 되어 시장 불확실성이 커질 우려도 있다.
정준호 강원대 교수(부동산학)는 “코로나19 이후 자산 격차가 더 커지는 상황에서 종부세를 낮추는 것은 서울, 특히 강남 3구에 혜택을 주는 것으로 조세 형평성을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