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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중앙은행 앞 쌓이는 청구서…기후도 대응해라?

등록 :2021-10-11 18:21수정 :2021-10-11 20:05

기후 변화 및 저탄소 전환 경제 및 금융 충격
중앙은행들 기후 연구 늘리고, 정책 반영 고민
중앙은행 역할 물가→금융→고용, 불평등→기후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그는 기후 변화 대처에 소극적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임기가 내년 2월 끝난다. 전 세계 경제에 영향력이 가장 큰 사람인 까닭에 연임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그런데 최근 미국 민주당 내 일부 인사들은 그의 연임을 반대 중이다. 금융 규제와 인종 간 경제적 불평등 해소에 더 적극적인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파월 의장이 기후 변화 대처도 잘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중앙은행이 기후 변화와 어떤 관계가 있길래 연준 의장 교체에도 언급되는 걸까.

“기후 문제 중앙은행도 무관하지 않아”

중앙은행은 화폐 발권력을 통해 시중 돈의 양을 늘리거나 줄이면서 전체 경제 수준을 조절한다. 지난 몇 년간 전 세계에서는 기후 문제가 중앙은행에도 무관한 일이 아니라는 논의가 부상했다. 기후 변화가 경제 및 금융에 주는 충격을 고려하면 중앙은행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후가 실물 경제 및 금융에 주는 위험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물리적 충격이다. 홍수·태풍·폭염의 자연재해는 건물과 사람 등 시설물과 노동력에 피해를 입힌다. 이것은 전체 경제의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또한 금융 측면에서도 가계 및 기업의 상환 능력 저하와 담보물 가치 하락으로 인한 은행 건전성 악화, 피해 수습에 대한 보험 회사의 부담 가중 등의 문제가 생긴다. 중앙은행이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할 물가도 재해에 따른 가격 급등락이 발생한다.

두 번째는 저탄소 경제로의 이행에서 나타나는 충격이다.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정책은 관련 자원에 의존도가 높은 기업의 이익 감소, 생산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기업의 부도율과 주가에도 영향을 준다. 그러면서 연쇄적으로 관련 기업의 자산(대출, 채권, 주식)을 보유한 금융 기관에 손실을 안긴다. 물가 또한 각종 연료 가격이 변동되면서 ‘그린 인플레이션’ 등의 불안이 생긴다.

실제로 미국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은 지난 2018년 해수면 상승과 기상 혼란 등으로 향후 수십 년간 미국 경제 성장이 최대 3분의 1까지 감소한다고 밝혔다. 연준은 올해 9월 27개 은행에 대한 기후 변화 스트레스 테스트도 최초 실시했다. 27개 은행은 석유와 가스 산업 대출금이 많은 곳이다. 연준은 기후 변화 및 저탄소 환경으로 전환 시 화석 연료 기업에 대출이 많은 은행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도 올해 6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기후변화 이행리스크를 고려한 은행부문 스트레스 테스트’를 발표했다. 한은은 2021~2050년 저탄소 경제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이 국내총생산(GDP)과 국내은행 자기자본비율(BIS 기준 총자본비율) 등에 주는 영향을 추정했다. 기후 변화 대응 이행으로 인한 2050년 지디피 손실 규모는 올해 대비 2.7~7.4%로 나타났다.

2050년 기준 국내은행 자기자본비율은 은행이 보유한 고탄소산업 기업 관련 자산 가격 하락으로 기준년(2020년 말) 대비 2.6%포인트~ 5.8%포인트 하락했다. 한은은 “기후 변화 이행 부담이 실물 경제와 은행 경영 건전성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2040년 이후 급격히 커질 것”이라며 “고탄소 산업 투자 기피 현상 심화로 은행들이 관련 대출·채권 및 투자 자산 매각에 어려움을 겪으면 경영 건전성 악화가 예상보다 클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물가·금융 안정을 목표로 하는 중앙은행들에 이러한 위험은 외면할 수 없는 부담이다. 이 때문에 대응에 나서는 중앙은행도 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올해 7월 기후 요소를 통화정책 틀(프레임워크)에 포함하는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중앙은행은 기후가 물가에 주는 영향에 주목한다. 은행은 “기후 변화 대응의 주된 책임은 정부와 의회에 있으나 물가 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통화정책 프레임워크에 포함하겠다”고 설명했다.

대출과 자금 지원에 기후 요소를 반영하는 중앙은행도 있다. 일본 중앙은행(BOJ)은 올해 7월 기후 변화 대응 관련 투자 및 융자를 취급하는 금융 기관에 0% 금리로 엔화 자금을 공급하기로 했다. 한은도 올해 9월 외화자산 운용에 ESG(친환경·책임·투명 경영) 투자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다만 중앙은행들의 기후 대응은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기후 변화에 직접적인 금리 조정은 어렵다. 거시 경제와 물가 전망, 자산 매입과 자금 지원 등에 기후 요소를 간접적으로 반영하는 방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일부 국가들은 중앙은행의 직접적 대응보다는 금융 규제 활용부터 고민할 가능성도 있다. 파월 연준 의장은 올해 6월 “기후 변화가 통화정책에서 직접 고려해야 할 요소는 아니며, 기후 관련 금융 위험은 기존 은행 감독과 금융 안정 기준에 속해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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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은 하나인데, 쌓이는 과제들

중앙은행의 전통적 책무는 물가 안정이다. 중앙은행이 가진 화폐 발권력이 물가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금리를 조정해 물가를 안정시키고, 전체 경기 수준을 조절한다.

그런데 각종 경제 위기를 거치며 중앙은행 역할이 계속 추가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금융 안정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고, 코로나19에는 고용과 불평등 책임이 더욱 강화되는 분위기다. 여기에 기후 변화 대응까지 중앙은행 숙제로 얹어진 셈이다.

중앙은행 앞에 청구서가 쌓이는 것은 정책 파급력이 워낙 강해서다. 중앙은행의 금리는 실물 경제, 자산 시장, 경제 주체들의 기대 심리 등 전체 경제를 바꾼다. 중앙은행 통화정책에서 영향을 받는 문제들이 많고, ‘이것도 고려해서 결정해라’는 사회적 요구가 빚발치는 것이다.

하지만 중앙은행 정책 수단은 금리 조정 하나다. 돌은 하나인데, 맞춰야 하는 곳들이 자꾸 늘어나는 모습이다. 현실에서 경기와 물가, 고용, 사회적 불평등, 기후 변화 등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각 목표가 상충되는 모습을 보이면 중앙은행은 어디를 맞춰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결국 우선순위를 정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터지는 궁지에 몰릴 수 있다. 최근 연준이 고용시장 회복을 기다리느라 인플레이션 대응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한은도 지난 8월 실물 경제와 금융 안정 목표 사이에서 ‘가계부채 및 자산시장 대응’을 우선순위로 선택한 후 금리를 올렸다.

특히 중앙은행 금리는 무차별적이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에 다른 금리를 적용할 수 없다. 이에 통화정책은 개인 상황마다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라 세밀한 불평등 대응도 쉽지 않다. 같은 저금리여도 어떤 사람은 경기 개선으로 실직을 피하고 대출 이자가 감소하면서 불평등이 완화되지만, 또 다른 사람은 낮은 금리로 자산을 불려 불평등 강화를 촉진하기도 한다. 통화정책 불평등에 양면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중앙은행이 갈수록 어려운 상황에 놓일 것으로 전망한다. 금리 결정에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불어날수록 선택이 어려워지고, 잘못된 결정이 주는 충격은 훨씬 커진다.

엄상민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중앙은행 수단이 하나여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전방위적 영향이 강하기 때문”이라며 “중앙은행이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중요한 수단을 잘못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중앙은행 목표들이 상충하는 상황일 때는 목적을 정한 후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대로 될 것인지에 대해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슬기 기자 sg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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