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부채가 한 국가 내에 적정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부실 위험은 물론 소비 위축 등 거시 경제 변수에도 영향을 준다. 또 대출을 갚기 위해 일을 더 하는 현상도 빚어질 수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들어 가계부채 증가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둔 보고서를 내거나 언급을 부쩍 자주 하고 있다. 지난 6월 펴낸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한은은 “적정 수준의 부채는 효율적 자원 배분을 통해 소비를 증대시키지만, 적정 수준을 넘으면 원리금 상환 부담 증가 등으로 소비 감소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원론적인 진단이지만 현 부채 규모가 적정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는 인식을 넌지시 드러낸 것이다.
지난달 펴낸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이 보고서는 가계 소비가 제약되는 부채 임계 수준을 콕 짚어 제시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기준 45.9%, 소득대비대출비율(LTI) 기준 382.7%이 그것이다. 한해 갚아야 할 원리금 상환액이 연 소득의 약 절반(45.9%)을 넘거나 전체 대출 규모가 연 소득의 약 4배(382.7%)가 넘을 경우 빚 부담 때문에 소비를 줄이게 된다는 게 한은의 추정이다.
한은은 이미 임계 수준을 넘은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본다. 올해 1분기 임계 수준을 초과한 가계 비중은 디에스아르 기준 6.3%, 엘티아이 기준 6.6% 등이다. 특히 저소득과 청년층 대출자 중 디에스아르 기준를 초과한 비중은 각각 14.3%, 9.0% 등이다. 10명 중 1명 꼴로 대출을 갚느라 쓸 돈이 없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부동산담보대출이 많았던 점을 염두에 두면 번 돈의 대부분이 부동산 대출 상환으로 빠져나가는 ‘빚의 굴레’에 빠져 있는 셈이다. 한 사람의 소비는 다른 사람의 소득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소비 감소는 경제 부진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가계부채 증가는 빚을 갚기 위해 일을 더 하는 악순환도 낳는다. 영국 중앙은행은 지난달 ‘가계부채 및 노동 공급’ 보고서에서 “가계부채 상환 부담은 소비 지출 뿐만 아니라 노동 공급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2002년~2018년 통계를 활용해 자국 내 가계를 대출 없는 주택 자가 보유자, 대출 있는 주택 자가 보유자, 주택을 소유하지 않은 세입자 등으로 나눴다. 그 결과 정책금리가 1%포인트 인상돼 가계의 상환 부담이 증가할 경우, 대출이 있는 주택을 소유한 가계의 노동시장 참가율은 0.7%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출을 보유한 가계가 가구주의 실업 등으로 상환 능력에 문제가 생길 때는 다른 가족 구성원의 경제활동참가율과 주당 근로시간이 각각 1.9%포인트, 1.2시간 증가했다. 반면 대출이 없는 주택 자가 보유자나 세입자 등에서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
보고서는 “영국 중앙은행의 가계금융조사에 따르면 금리 인상 등에 따른 상환 부담 증가 시 소비를 줄이겠다고 응답한 가계의 비중은 60%이며, 노동 공급을 늘리겠다고 응답한 가계의 비중은 20%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전슬기 기자 sg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