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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자동차

‘세차’에 이토록 진심인 사람들…내 차는 주인 잘못 만났구나 [ESC]

등록 :2022-07-15 11:38수정 :2022-07-16 01:11

[커버스토리] 세차 디테일링의 세계
수행하듯, 마음을 닦아내듯…차를 닦는 도시의 수도승들
“목욕 뒤 바나나우유 하나 입에 물고 나오듯 개운한 마음”
불면의 여름밤, 뒤척이다 달려나가고 싶을 만한 취미 생활
때 벗기고 반짝이는 광 내는 그 시간만이 주는 세차의 매력
미트로 차를 닦고 있는 한 세차 동호회 회원. 미트로 차를 닦을 땐 힘을 주지 않는다. 스튜디오어댑터 경지은
미트로 차를 닦고 있는 한 세차 동호회 회원. 미트로 차를 닦을 땐 힘을 주지 않는다. 스튜디오어댑터 경지은

세차. 어떤 사람들에겐 노동, 누가 대신 해줬으면 좋겠다 싶은 이 두 글자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엔 이런 생각을 했다. 낚시를 대신 해주고 돈을 받는 직업은 없다. 게임을 대신 해주고 돈을 받는 직업도 없다. 시장주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동네마다, 마트 지하주차장마다 대신 세차를 해주고 돈을 받는 세차장이 있는 걸 보면 사람들이 세차를 꼭 그렇게 유쾌한 노동으로 바라보는 것만은 아닌 듯해 보인다. 나만 해도 그랬다. 귀찮은 일. 누가 대신 해줬으면 좋을 일. 그런데 세차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가장 큰 세차 커뮤니티인 ‘퍼펙트 샤인’ 회원은 27만명이 넘는다). 도대체 왜?

세차가 좋다고요? 도대체 왜?

세차를 마치고 개운하게 광을 낸 차량. 스튜디오어댑터 경지은
세차를 마치고 개운하게 광을 낸 차량. 스튜디오어댑터 경지은

“네? 세차 왁스가 100만원을 호가하는 물건이 있다고요? 10만원이 아니라 100만원이요? 도대체 그걸 왜 사는데요?” 취재를 하던 중 진심이 튀어나왔다. 주변 지인들에게 자동차 세차 마니아로 알려진 직장인이자 나의 지인이기도 한 박세차(가명)씨가 답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자동차 세차 브랜드 중에 ‘자이몰’(zymol)이란 게 있다. 200년 전 유럽 왕실의 마차를 관리하던 전통에서부터 내려온 유구한 역사의 브랜드다. 나는 비록 왕족이 아니고, 내가 타는 차가 왕들이 타는 마차는 아니지만, 나는 내 차를 왕이 타는 마차처럼 아껴주고 싶다. 내 차를 빛나는 보석처럼 만들고 싶다. 이런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니? 이런 진정성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뭘 취재하겠다는 거야?” 세차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는 내게서 ‘도대체 왜’의 그림자가 느껴졌는지, 그가 내뱉은 일성이다. 하지만 박씨는 세차를 너무 사랑하면서도 100만원이 넘는 자동차 왁스를 샀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하진 않았다. 세차가 뭐길래, 사람들은 왜 그렇게 목숨을 거는 걸까.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세차 커뮤니티 회원으로 활동하는 여럿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세차를 시작했나요?”라는 질문에 세차 동호인 대부분 비슷한 답변을 했다. 집 다음으로 가장 비싼 돈을 들여 사는 물건인 자동차를 처음 사는 순간, 사랑에 빠진 그 순간, 이 아름다운 광을 더 오래 유지하고 싶어 세차에 입문한다. 세차 고수 장포수(‘퍼펙트 샤인’ 동호회 닉네임)씨는 자동차를 빨간색으로 선택한 이유로 “광이 잘 먹어서”라는 대답을 했다. “처음에는 아버지 차를 같이 세차하러 다녔어요. 아버지 차를 닦을 때도 차가 깨끗해지면 기분이 좋더라고요. 나중에 돈을 모아 제 차를 사게 되었는데, 그때 이 빨간 트레일 블레이저를 샀어요. 광을 먹고 어둡게 빛나는 제 차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너무 좋고 개운해요. 저희끼리 하는 말인데 하얀색 차는 마음의 광을 낸다는 표현이 있어요. 하얀 차는 관리가 편한 한편, 어떻게 해도 유색 차만큼 빛나게 만들기는 힘들거든요.” 세차 동호회 회원들은 차를 사고 세차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세차를 잘할 수 있는 차를 사는 사람들이었다.

스노우폼으로 차량의 때를 씻는 모습. 스튜디오어댑터 경지은
스노우폼으로 차량의 때를 씻는 모습. 스튜디오어댑터 경지은

나의 차야, 너는 주인을 잘못 만났구나

수십만명 사람을 결집시킬 만큼, 세차의 매력은 있을 터. 그 세계에 직접 뛰어들어보기로 했다. 장포수씨와 인천 계양구 효성동에 있는 세차장 ‘맥스워시’ 신민우 대표의 조언을 받고 세차 입문 용품부터 샀다. 어라? 그런데 입문 용품을 사는 데 들어간 비용이 내 예상과 달리 너무 적었다. 버킷(세차용 양동이), 워시보드(간이 빨래판), 미트(차를 닦는 수건), 카샴푸(거품을 일으켜 차를 닦는 세제), 세차 카드 1만원까지 충전하니 총 7만8천원이 들었다. 이거 다른 취미에 비해 진입 비용이 너무 적지 않은가. 더군다나 세차를 맡겼을 때 드는 1회 비용까지 생각하면 너무 좋은 취미인데?

“이 정도면 가능하다고요?” 내가 묻자 장포수씨가 답했다. “이것 말고도 장비야 많죠. 다목적 세정제인 에이피시(APC·All Purpose Cleaner), 타르 제거제, 페인트 클렌저, 왁스, 유막 제거용 그라인더, 폼건 등이 있지만 지금 준비한 정도면 충분히 세차의 재미를 알 수 있어요.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한 세차 동호회 회원이 섬세한 손길로 유막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스튜디오어댑터 경지은
한 세차 동호회 회원이 섬세한 손길로 유막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스튜디오어댑터 경지은

장포수씨는 “일단 세차장에 도착하면 베이(세차를 하며 물을 뿌리는 칸막이 공간)에 차를 넣지 마시라”고 했다. “우선 차 앞 후드를 열어서 열을 식혀줘야 해요. 엔진의 열기 때문에 거품이 마르면 안 되기 때문에 일단 후드를 열고 오늘 어떻게 세차를 할지 생각하는 거죠. 장마철이라 비가 올 테니까 유막을 제거해야겠다, 어제 고속도로를 달렸으니 벌레 사체와 타르를 제거해야겠다, 이런 식이죠.” 장포수씨는 “아무 생각 없이 미트질을 하다 보면 잡생각도 사라지고, 몸을 쓰는 일이라 기분이 개운하다”고 덧붙였다. “베이에 차를 넣고 폼건으로 뿌린 거품이 흘러내리는 모양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데, 이런 걸 요즘 유행하는 ‘불멍’, ‘물멍’에 이은 ‘세차멍’이라고 하면 될까.

후드를 열고 엔진의 열기가 빠지길 기다리고 있는데, 반짝반짝 빛나는 회원들의 차 사이에 상처 입고 더러운 나의 차가 서 있었다. ‘아, 너는 주인을 잘못 만났구나. 나는 너를 다른 아이들처럼 사랑해주지 못했구나.’ 세차 동호인들의 차는 아주 다양했다. 비싼 차도 있었고, 오래된 차도 있었고, 사회 초년생의 차도 있었다. 그런데 공통점은, 모든 차가 사랑을 받고 있는 듯했다. 물건을 아낀다는 게 개인의 성격 같기도 하지만, 세차 중 만난 닉네임 ‘포토리’씨는 이렇게 말했다. “전에 회사 대표님을 모시고 거래처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대표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깨끗하게 차를 관리하는 걸 보니 일도 깔끔하게 잘할 것 같다고. 기분 좋았죠.”

미트로 닦을 땐 힘주지 마세요

차의 열기가 어느 정도 식은 뒤에 베이에 차를 넣었다. 내 차의 상태로 말하자면 약 한달 전쯤 자동 세차를 했고, 그 이후에 장맛비를 한번 세차게 맞은 상태였다. 장포수씨가 차의 상태를 보더니 “음… 일단은 다목적 세정제를 뿌려야겠어요”라고 말했다. 영문은 잘 모르겠지만, 차 상태를 바라보는 표정이 심각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마치 병원에서 엠아르아이(MRI)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들고 ‘의사 선생님, 제가 심각한가요?’라고 묻는 환자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장포수씨가 설명을 이어갔다. “다목적 세정제는 때를 불리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돼요. 원래는 고압수를 뿌리면 약하게 붙은 때는 떨어져 나가고, 카샴푸로 좀 깊은 때를 불리면 되는데, 이 차는 상태가 좋지 않네요.” 분무기에 든 다목적 세정제를 차 표면에 뿌리자 마치 목욕탕에서 온탕 속에 들어간 상태처럼 때가 불려졌다. 차에 붙었던 벌레 사체나 새똥 같은 물질들이 풀어지면서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세차용 버킷. 스튜디오어댑터 경지은
세차용 버킷. 스튜디오어댑터 경지은

다양한 세차 도구들. 스튜디오어댑터 경지은
다양한 세차 도구들. 스튜디오어댑터 경지은

3분 정도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때가 불었다고 판단되자, 고압수로 1차 샤워를 진행하고 폼건으로 거품을 뿌렸다. 그런데 가만 보니 세차는 목욕과 순서도, 방법도, 그 개운함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①가볍게 샤워를 하고(이물질 제거) ②탕 속에서 몸을 불린다(세정제 뿌리기). 그다음은? ③본격적인 때밀이의 시간! 카샴푸를 양동이에 담아 물과 섞은 다음 차 구석구석을 닦는 시간이다. 여기서 팁, 카샴푸를 섞을 땐 물과의 비율이 매우 중요하다. 제품 설명에 쓰인 비율(카샴푸와 물의 비율이 1:400, 1:1000 등으로 표기돼 있다)보다 양동이에 물을 적게 담고 카샴푸를 섞은 뒤, 고압수를 양동이에 추가로 쏘아 물의 양을 맞추면 거품이 아주 잘 일어난다.

차를 닦는 온전한 노동의 시간. 이 시간을 즐기느냐 아니냐가 이 취미를 즐길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하는 시간이 될 것 같았다. 힘내서 열심히 해봐야지. 그렇게 미트로 힘주어 차를 닦으려는 순간, “안 돼요! 힘주지 마세요!”라고 장포수씨가 황급하게 나를 말렸다. “힘으로 때를 떨어트리는 게 아니라 케미컬제의 화학성분으로 때를 벗기는 거예요. 세차 마니아들이 자동 세차를 말리는 이유는 힘으로 차 표면을 닦다가 흠집이 생기면 아무리 노력해도 온전한 광을 만들어낼 수가 없어서거든요. 지금 이 차의 상태가 그래요. 아무리 노력해도 원래의 광을 끌어낼 수는 없어요. 이미 자동 세차기에 들어가버렸으니까….”

‘아. 그런 거였구나. 그래서 계속 그런 표정을 지은 거였구나. 아무리 열심히 한들 다른 차들처럼 광을 낼 수가 없어서 안타까운 거였구나.’ 체념 어린 그의 표정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래도 세차를 이어갔다. 미트로 살살 닦은 차를 고압수로 헹궈내고 수건으로 묻은 물기를 말린다. 여기까지가 일상적인 세차의 끝. 여기서부터 왁스를 발라서 광을 올릴 거냐, 유리를 닦고, 유막을 걷어내서 장마에 대비할 거냐의 깊이로 빠져들겠지만, 기본적으로 나의 차는 세차를 시작하기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때 빼고 광을 내 개운해져 있었다. 여기저기 상처가 있고, 자동 세차기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나와 자동차 사이의 좋았던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정도의 상태. 내가 보기엔 충분한데, 이 정도만 해도 괜찮은데, 이제 더 깊은 세차의 세계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어떤 방법이든 찾아내 자동 세차기의 흔적을 지워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취미로의 세차가 시작되는 상태. 그때, 이 취재를 처음 시작했을 때 박세차씨가 던진 또 다른 말이 떠올랐다. “진정한 세차인은 신차 출고 당시보다 더 완벽한 상태를 만들 수 있다고 믿지. 실제로도 가능하고. 방법은 반드시 있다.”

세차는 여름밤 즐기기 좋은 활동이다. 스튜디오어댑터 경지은
세차는 여름밤 즐기기 좋은 활동이다. 스튜디오어댑터 경지은

세차, 의외의 마음 수행

매일 도로 위를 달리다 보면 다양한 차를 만난다. 비싼 차, 싼 차, 오래된 차. 저 차는 새로 태어난 아이가 있구나. 저 차는 화려한 걸 좋아하는구나. 각양각색의 스티커로 주인의 상태를 알려주는 차. 그런데 가끔 그런 차를 본다. 저 차 주인은 성격이 굉장히 깔끔하구나. 저 차는 오래된 차인데 관리가 정말 잘되어 있구나. 21세기 도로 위에서 차는 차 주인의 또다른 얼굴이다. 그리고 깔끔한 얼굴을 만나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세차를 끝냈을 때, 내 차는 주인의 관심 부족으로 더 이상의 광을 낼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최선을 다해 목욕을 하고 바나나우유를 마셨을 때처럼 개운한 기분. 한바가지 흘린 땀 때문에 얼굴은 상기되었지만 마음은 편안해졌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세차를 한다는 세차인들의 마음도 일견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어느 여름밤, 또는 어느 새벽 잠은 안 오고 몸을 쓰고 싶은 여름의 짧은 밤. 당신도 그동안 아껴주지 못했던 당신의 차를 끌고 세차장을 향해보길. 그리고 오래된 스트레스를 깨끗하게 닦아내보길.

초보를 위한 세차 순서와 필요 물품

1 세정: 다목적 세정제(APC, All Purpose Cleaner)로 도장면 때를 불린다.

2 스노폼: 불려진 때를 내려보낸다.

3 본세차: 카샴푸로 도장면에 남아 있는 이물을 없앤다. (힘주지 않도록 주의)

4 드라잉: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다. (역시 힘을 주지 않고 톡톡 치거나 수건으로 덮는 느낌으로 진행)

5 왁싱: 도장면을 왁스로 코팅하는 작업.

6 유리 세정: 유리 세정을 하고, 유막을 없애면 비 올 때 와이퍼를 쓰지 않아도 물이 흘러내림.

꼭 필요한 도구: 버킷(양동이), 워시보드(간이 빨래판), 미트(세차용 수건), 카샴푸, 세차카드

그 밖의 세차 도구: 다목적 세정제, 개인용 스노폼건, 글라스 세정제, 왁스, 유리수건 등은 차후 구매해도 큰 문제 없음.

허진웅 이노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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