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바그다드에서 가지고 온 각종 주전자들. 그 모양과 빛깔이 눈길을 끈다.
고향 바그다드에서 가지고 온 각종 주전자들. 그 모양과 빛깔이 눈길을 끈다.

버스정류장. 예쁘장하게 생긴 여학생이 옆에 있는 남학생과 재잘재잘 떠든다. 귀엽기도 하지! 뽀뽀도 예사로 하고 요즘 여학생들 참 멋져! 이윽고 버스가 도착하고 바이바이 손 흔들며 버스에 올라탄 여학생. 냅다 어떤 남학생 옆에 앉더니 또 재잘재잘 귀여움을 떨며 뽀뽀를 한다. “오래 기다렸어, 버스 맞춰 타기 힘드네~ 헤헤” 그녀의 양다리 작전에 나는 그만 기절한다.

이미 늙어버린 나, 그 여학생의 삶의 방식에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혼내주고 싶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아마 버스 밖 남학생도 그녀와 헤어지고 다른 여학생과 함께 버스를 타고 희희덕거릴 것이고, 버스 안의 남학생도 버스에서 내리면 다른 여학생과 조잘조잘 떠들며 뽀뽀도 할 것이다.

세상 이치가 그런 것이, 특히 사람을 만나는 일은 정말 자기 크기만한 사람을 만난다. 그래서 내 꼴이 어떤지 궁금하면 지금 만나는 여자나 남자의 꼴을 보면 안다. ‘꼴 보기 좋은’남자를 만나고 싶으면 내 꼴을 보기 좋게 만들면 된다. 주위에 꼴 보기 싫은 남자만 득시글하다고? 그럼 내 꼴이 그 모양 그 꼴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일했던 경제주간지의 이 모 기자는 먹는 꼴이 나와 닮았다. 그래서 맛집 취재를 갈 때면 “선배 어디로 가요” 하면서 잘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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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고향 바그다드 음식점이 드물다는 사실에 페트라를 연 주인장의 요리 솜씨. 콩을 다져서 크로켓처럼 튀겨낸 ‘팔라펠’이다.
자신의 고향 바그다드 음식점이 드물다는 사실에 페트라를 연 주인장의 요리 솜씨. 콩을 다져서 크로켓처럼 튀겨낸 ‘팔라펠’이다.

이태원에서 먹을거리를 찾던 중 그와 내가 발견한 집이이다. 러시아풍 글씨가 한 눈에 쏙 들어왔다. 불쑥 들어간 집은 참으로 어설픈 인테리어에 불규칙한 모양의 테이블이 널려 있었다.


쌀과 가지를 넣은 만든 ‘양고기 막로바’
쌀과 가지를 넣은 만든 ‘양고기 막로바’
주문을 하는데 주인장이 한국어를 몰라 어설픈 영어를 쓰게 된다. “one, this~”“ok”“thanks~”“어, here~”“where are you from?” 외국인을 만나면 늘 이 질문만 한다. 갑자기 먼 여행을 온 것처럼 낯설고 새로운 재미가 새록새록 하다. 보통 이국적인 맛을 볼라치면 멋진 인테리어로 장식된, 그래서 음식 값은 더 비싸지만 그 양은 쥐꼬리만한 그런 집들이 대부분인데 이 집은 그냥 소박하다. 바그다드의 작은 동네 어귀에나 있을 법한 음식점이다. 이곳은 소박한 무슬림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양고기 스튜는 우리네 국물 요리처럼 약간 얼큰하고 그 안에 고기는 참으로 부드럽다. 요구르트는 일찍이 맛보지 못한 담백한 건강식 그대로이다. 여자들에게 더없이 좋다. 야채와 함께 나오는 쌀 요리 또한 부드럽고 깔끔하다. 주인장 어머니의 손맛 그대로, 바그다드식이다. 그 맛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도저히 이 집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한쪽 벽에는 영화에나 나오는 무슬림 담배 장식이 있다. 테스트용으로 한 대 태울 수도 있다.

주인장은 팔레스타인인으로, 무슬림이다. 호주에서 MBA를 공부했고 한국에서는 영어강사도 하고, 모 대기업에서 컨설턴트 일도 했다. 한국 생활을 하면서 문득 자신의 고향 맛을 내는 음식점이 드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페트라레스토랑>를 열게 되었다.

주인장은 한국인과 아랍계 사람 사이의 문화적인 교류가 전혀 없는 것이 가슴이 아프단다. 그것이 이곳을 열게 된 또 다른 이유다. 주인장의 동생도 한국을 너무 사랑해서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지금까지는 캐나다, 스페인 등 유럽 사람들이 단골들인데, 앞으로는 한국인들도 ‘마구마구’ 왔으면 좋겠단다. 그는 우리가 보기에 비슷해 보이는 아랍계 요리들을 정확히 구분한다. 터키는 터키식, 바그다드는 바그다드식, 전혀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아직은 낯설고 멀기 만하게 느껴지는 바그다드. 그곳을 여행하지 않아도 온 몸과 혀로 바그다드를 느낄 수 있는 곳, <페트라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맛보고 내 그릇 안에 이 집을 넣어두자. 그러면 지구의 한쪽 귀퉁이가 내 것이 된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위치 서울 용산구 이태원
전화번호 02-790-4433
영업시간 오전11시~오후 12시
메뉴 샌드위치(점심) 5천원 / 음료 1천5백원~3천5백원 / 각종 샐러드 및 요리 5천원~7천원 / 양고기, 케밥 등 1만1천원~1만7천원

*귀뜸 한마디 술은 팔지 않지만 특별히 한국인인 경우 와인 한 병 정도는 가져와서 먹을 수 있다. 현금으로 계산하는 것이 좋다. 카드로 계산할 경우 수수료를 더 내야한다. 특이한 맛집을 찾아다니는 직장상사를 모시고 가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