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승 교수, 한국사회학회 논문
민주화 세대 오랫동안 권력 쥐어
다음 세대에 기회 자체 오지 않아
386, 486, 586. 민주정부가 들어서자,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대를 사람들은 386이라 불렀다. 이들이 40대, 50대로 나이 듦에 따라 ‘86’ 앞에 붙는 숫자도 따라서 바뀌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이들을 제외하면, 어떤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 30년이나 생명력을 유지한 적은 없었다. 이는 곧, 민주화 세대가 30년 동안 한국 사회의 중핵에서 물러난 적이 없음을 방증한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를 두고 “민주화 세대가 ‘점유의 정치’와 노동시장의 ‘위계체제’를 통해 ‘세대의 권력 자원’을 수립했고, 이로 인해 세대 간 불평등이 증대됐다”고 해석한다.
다소 논쟁적인 이런 해석은 한국사회학회(회장 신광영 중앙대 교수)의 사회학대회 둘쨋날인 8일 이 교수가 발표할 논문 ‘민주화 세대의 집권과 불평등의 확대’에 담겨 있다. ‘점유의 정치’는, 민주화 세대의 지식인 그룹이 초기엔 국가권력과 대치하고 시민사회 형성을 주도했지만 점차 민주적인 선거 경쟁 등을 통해 이 권력을 점유한 과정을 일컫는다. 이 교수가 15대(1996년)~20대(2016년) 국회의원 선거 당선자의 나이 분포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그동안 민주화 세대가 정치권력을 얼마나 강고하게 틀어쥐고 있었는지 드러난다. 이들은 30대였던 1996년 총선에서 이미 10명(3%)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이들이 40대에 진입한 2004년 총선에선 106명(35%), 50대가 된 2016년 총선에선 161명(54%)이 국회의원이 됐다. 이들의 비율이 커진 만큼 다른 연령대의 당선자는 줄었는데, 특히 아랫세대가 ‘직격탄’을 맞아 지난 총선에서 30대 의원은 2명(1% 미만), 40대 의원은 50명(17%)에 그쳤다.
노동시장의 ‘위계 체제’와 그로 인한 불평등 구조는 기업 임원의 연령 분포로 살펴볼 수 있다. 이 교수가 1998~2017년 국내 100대 기업의 상무이사~대표이사 연인원 9만3천여명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00년대 초반 임원의 8.9%였던 민주화 세대의 비율은 10년 만에 60.3%까지 올랐다. 이 상승세는 꺾이지 않아, 2017년엔 임원의 72%에 이르는데 이 역시 다른 세대는 이루지 못한 기록이다.
이 세대는 소득 상승에서도 다른 세대보다 ‘더 빨리, 더 많이’ 현상이 관찰된다. 이 교수의 1990~2016년 가계동향조사 결과 분석에서, 같은 44살이라도 2007년의 1963년생은 15년 전인 1992년의 월소득(145만원)보다 104만원, 71.7%가 오른 249만원을 벌었다. 반면 2016년의 1972년생은 2002년(202만원)보다 43만원, 21.3%가 오른 245만원을 벌었다. 이런 차이는 다른 연령대에서도 비슷해, 민주화 세대의 소득 상승 규모와 비율은 다른 세대의 2~3배에 이르렀다.
이런 결과가 민주화 세대의 잘못은 아니다. 이 교수는 이들에게 ‘세대의 기회’가 있었다고 본다. 가령 민주화 국면은 이들이 권력과의 투쟁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민주적인 권력 자체를 창출할 기회가 됐다. 1997년 외환위기는 윗세대에겐 정리해고, 아랫세대에겐 취업문 닫힘이었지만, 이들에겐 직장에서 오래 버틸 기회가 됐다. 문제는 이들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모두를 오랫동안 갖게 되면서, 다음 세대에게는 기회 자체가 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민주화 세대 상층 리더와, 그에 속하지 못한 동세대나 다른 세대들과의 권력자원 갭이 커지면서 세대 내, 세대 간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들 사이에 증대되는 소득 불평등은 ‘세대의 정치’가 ‘위계구조’로 전화돼 발생한 결과”라며 “세대 간 (수혜) 이전의 전략 마련과 형평성 증진을 위한 민주화 세대의 희생과 사회적 합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