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음원사이트 멜론, 출판사 태림스코어와 공동기획으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선정 작업을 진행했다. 음악평론가, 음악방송 피디, 음악 전문 기자 등 47명이 투표한 결과를 바탕으로 1위부터 100위까지 순위를 매겼다. 한겨레는 8월28일부터 9월28일까지 한 달 동안 순위를 역순으로 공개한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정오에 디지털 기사로 열 장의 앨범을 공개하고, 그 가운데 두 장의 앨범을 꼽아 전문가 리뷰를 소개한다. 전체 앨범을 듣거나 전문가 리뷰를 보려면 맨 마지막에 안내한 멜론 특집 페이지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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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 명반 31~4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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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위 H2O <오늘 나는>(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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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록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파격적 작품

32위 김수철 <작은거인 김수철(1집)>(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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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다 핀 꽃 한 송이, 활짝 피다

33위 삐삐밴드 <문화혁명>(1995)

- 사람들의 뒤통수를 후려친 도발적 혁명

34위 시나위 <Heavy Metal Sinawe(1집)>(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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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정통 헤비메탈의 시작점

35위 봄여름가을겨울 <1집>(1988)

- 퓨전재즈를 가요에 본격 도입한 앨범

36위 가리온 (2004)

-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 전설의 시작

37위 마그마 <Magma>(1981)

- 한국 헤비메탈의 효시

38위 동물원 <동물원 1집>(1988)

- 평범해서 특별한, 청춘과 일상의 사운드

39위 디제이 소울스케이프 <180g Beats>(2000)

- 한국 힙합 디제이 선구자의 데뷔작

40위 유앤미블루 <Cry.... Our Wanna Be Nation!>(1996)

- 한국 모던록의 가능성을 증명한 앨범

33위 삐삐밴드 <문화혁명>(1995)

전문가 리뷰 | 진정 문화혁명이었다. 시나위와 H2O 출신의 달파란(강기영), H2O 출신의 박현준, 그리고 신인 보컬리스트였던 이윤정으로 이루어진 삐삐밴드는 당시 가요계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음악으로 많은 사람들의 뒤통수를 때렸다. 1992년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한국의 가요계는 과거에 비해 좀더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경직된 분위기가 유지되었으며, 당시 가요계는 싱어송라이터들이 이끌던 팝발라드, 중장년층을 넘어 ‘가요톱텐 1위곡’을 곧잘 배출하곤 했던 트로트, 서태지와 아이들로 인해 촉발한 10대 위주의 댄스뮤직으로 천하삼분지계가 일어난 시점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95년 ‘갑툭튀’한 삐삐밴드는 하나도 진지해 보이지 않고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낯섦으로 ‘순진한’ 가요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1990년대 중반은 메인스트림 가요뿐만 아니라 홍대를 중심으로 발화한 인디음악 신에 있어서도 매우 귀중한 시기이며, 특히 펑크(Punk)는 당시 인디를 상징하고 정의하는 최전선 장르였다. 그런 펑크를 메인스트림 음악 신에 툭 내던진 앨범이 바로 삐삐밴드의 데뷔작 <문화혁명>이며, 실제로 삐삐밴드는 경직된 대한민국의 문화 시스템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오기 위한 문화기획 성격도 포함하고 있었다.

<문화혁명>은 음악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기에 충분한 앨범이지만, 이 음반의 가치는 작품 전반에 흐르는 이들의 방향성, 자세, 도전에 더 많은 의미를 둘 수 있다. 즉, ‘안녕하세요’, ‘딸기’, ‘슈퍼마켓’, ‘요즘 애들 10계명’ 등 개성이 듬뿍 묻어나는 제목과 가사들은 단순하고 꾸밈없는 내용으로도 음악을 만들고 발표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조성해주었고, ‘가수’라고 하기엔 노래를 정말 너무 막(?) 부르고 못(?) 부르는 이윤정의 보컬은 대중들에겐 당황스럽고 충격적인 목소리였던 셈이다. 1990년대 중반 홍대에서 인디 신이 나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던 계기에는 삐삐밴드의 충격요법도 일정 부분 포함되어 있었으리라.

<문화혁명>으로 소기의 목적인 ‘문화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삐삐밴드는 이듬해 좀더 전자음악의 비중을 높인 <불가능한 작전>을 공개했고, 이 앨범 역시 데뷔작과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게 된다. <문화혁명>에서는 비교적 무난한 ‘안녕하세요’로 대중의 간을 봤다면, <불가능한 작전>에서는 ‘유쾌한씨의 껌 씹는 방법’으로 당차게 정면승부를 벌였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삐삐밴드는 이후 이윤정이 탈퇴하고 고구마(권병준)가 가입하며 삐삐롱스타킹으로 이름을 바꿔 2기 활동을 맞이했지만, 당시 출연했던 음악방송에서 카메라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고 렌즈에 침을 뱉는 퍼포먼스로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해당 방송사로부터 영구적으로 출연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삐삐롱스타킹은 해체하였다.)

추천곡 ‘딸기’ | <문화혁명>에서 싱글로 내세워 당시 TV에서 삐삐밴드가 들려주었던 곡은 ‘안녕하세요’였지만, 이들의 ‘돌아이’ 감성을 제대로 표출한 곡은 ‘딸기’다. 시종일관 “딸기가 좋아”라며 난데없이 딸기 예찬을 펼치다 끝나는 이 곡은 펑크(Punk) 그 자체에 가장 충실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어른들 눈치보지 말고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하자”는 의중이 딱 느껴진달까? 이런 정서는 <불가능한 작전>의 ‘슈풍크’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김봉환 / 벅스 콘텐츠 기획자

34위 시나위 <Heavy Metal Sinawe(1집)>(1986)

전문가 리뷰 | “그대는 몰라 진실한 음악을/ 그대는 몰라 즐거운 음악을” 시나위의 노래 ‘젊음의 록큰롤’의 가사 중 일부다. 저때는 저랬다. 헤비메탈이라는 장르는 1986년 당시 한국에서 가장 ‘힙’한 음악이었다. 나만 알고 있기 너무 아쉬워서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었다. 당시 젊은이들의 마음을 충동질하는 진실하고 즐거운 사운드의 절정이 바로 헤비메탈이었던 것이다. 이 땅에 그 헤비메탈의 꽃을 피운 시작점이 바로 시나위의 역사적인 1집 <Heavy Metal Sinawe>다.

무엇이 그렇게 젊은이들의 마음을 충동질했을까? 시대를 막론하고 ‘증폭된 사운드’는 젊은이들의 몸과 마음을 움직여왔다. 척 베리의 로큰롤이 그랬고, 레드 제플린의 하드록이 그랬으며 메탈리카의 스래시메탈이 그랬다. 지금은 EDM이 그것을 대체하고 있다. 다프트 펑크와 스크릴렉스의 전자음악이 록페스티벌의 관객을 뛰게 하고 있는 것이다. 약 30년 전, 헤비메탈은 컴퓨터의 힘을 빌리지 않은 인간의 육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증폭된 사운드였다. 그것을 한국에서 거의 처음으로 현실화시킨 것이 바로 시나위다.

1980년대는 억압된 시대였다. 민주주의의 물꼬가 트이기 전이었고 대중음악의 종류도 다소 한정적이었다. 정치적인 억압 때문에 대중의 취향이 다변화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때문에 영미권처럼 장르 음악이 발전할 리 만무했다. 이미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인해 모던포크, 록, R&B 계열의 실력파 아티스트들이 대거 구속·수배되면서 대중음악의 맥이 끊겼다. 방송에서는 트로트 등의 나긋나긋한 음악만 남았다. 젊은이들의 음악이 거세된 것이다. 이때 한국은 다양한 장르 음악이 꽃피울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렸다.

그로부터 약 10년 뒤 80년대 중반,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에 헤비메탈 밴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나위, 부활, 백두산, 작은하늘 등의 밴드들이 자웅을 겨루며 밴드 붐의 분위기를 형성해나갔다. 거기에 첫 깃발을 꽂은 것이 바로 시나위 데뷔앨범 <Heavy Metal Sinawe>였다. 새로운 음악에 목말라 있던 젊은 층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는 당시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시나위는 아이돌그룹을 방불케 할 만큼 팬덤을 지닌 인기 록밴드로 자리하게 된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 ‘그대 앞에 난 촛불이여라’는 당시 각종 음악차트에서도 상위권에 올랐다. 이처럼 <Heavy Metal Sinawe>가 대중적으로 성공하면서 가요 제작자들은 메탈 밴드에게 눈을 돌리게 된다. 이로써 80년대 후반 헤비메탈은 가요계에서 일정한 지분을 차지하게 됐고, 더 나아가 가요 트렌드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Heavy Metal Sinawe>는 한국 록의 영원한 송가 ‘크게 라디오를 켜고’로 그야말로 호쾌하게 시작한다. 음질은 다소 조악하지만 신대철의 호방한 기타와 임재범의 남성적인 보컬은 그러한 음질을 충분히 뚫고 나올 정도로 위력적이다. ‘그대 앞에 난 촛불이여라’는 가요의 감성에 기대지 않고 동시대 영미권 메탈 발라드의 품격을 재현한 결과물이었다. 거칠게 달려가는 ‘남사당패’, ‘젊음의 록큰롤’은 그야말로 당시 열악한 가요계를 정면 돌파하는 전형적인 헤비메탈 넘버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이 음반은 헤비메탈이 지닌 여러 미학을 골고루 보여주고 있다.

시나위 1집은 열악한 레코딩 환경에서 녹음됐다. 신대철에 의하면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비롯한 수록곡 대부분이 보름 만에 작곡됐다. 또한 메탈 앨범 녹음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사흘 만에 원테이크로 녹음을 마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제한적인 환경에서 마스터피스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신대철과 임재범이라는 두 거대한 봉우리의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들은 헤비메탈이라는 산을 오르기 위한 두 개의 높은 벽(성량, 연주력)을 한 방에 부숴버렸다. 신중현의 아들로서 천재 기타리스트로 불렸던 신대철, 그리고 당시 가요계에서 독보적인 성량을 구사한 불세출의 보컬리스트 임재범의 만남이 없었다면 이런 위력적인 앨범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둘의 만남은 길진 않았지만,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날카로운 순간을 만들어냈다.

추천곡 ‘크게 라디오를 켜고’ | ‘크게 라디오를 켜고’는 시나위를 상징하는 곡이자 한국 헤비메탈의 영원한 송가로 꼽힌다. 헤비메탈의 어법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시나위의 오리지널리티를 보여준 이 곡은 영미권 메탈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한 흔치 않은 사례로 평가해볼 수 있다. 기존 가요의 감성에 기대지 않고 순수하게 헤비메탈 사운드가 주는 쾌감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거의 유일한 노래이기도 하다.

권석정 / 카카오엠 피디

정리 /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