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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음악·공연·전시

마음 속 제주 진경 끄집어낸 강요배의 추상풍경

등록 :2018-06-14 14:05수정 :2018-06-14 19:11

제주의 작가 강요배 신작전 ‘상(象)을 찾아서’
강요배 작가가 2017년 그린 근작 <우레비>의 일부분.  천둥, 바람, 빗방울이 퍼붓던 과거 제주의 밤을 기억 속에서 떠올려가며 그렸다. 아크릴물감을 묻힌 종이붓을 재빠른 필치로 휘돌리며 대기 속을 난무하는 빗방울의 인상을 포착해냈다.
강요배 작가가 2017년 그린 근작 <우레비>의 일부분. 천둥, 바람, 빗방울이 퍼붓던 과거 제주의 밤을 기억 속에서 떠올려가며 그렸다. 아크릴물감을 묻힌 종이붓을 재빠른 필치로 휘돌리며 대기 속을 난무하는 빗방울의 인상을 포착해냈다.
깊은밤 벼락비가 쏟아졌다. 번갯빛에 내비친 먹구름의 검회색 속살, 내리꽂히다가 대기중에 산산이 흩어져 퍼지는 빗줄기의 갖은 흔적들이 화폭에 가득하다. 흰 파도가 검은 암벽을 격렬하게 쳐올라가며, 말간 하늘에 깃털구름이 용처럼 꿈틀거리며 지나가는 순간들도 잇따라 펼쳐지며 눈가에 들어온다. 자연현상의 강렬한 동세와 속도감이 단박에 시선을 빨아들이는 그림들이다.

30여년간 제주 자연을 그려온 강요배(65)작가의 신작들은 대자연의 극적인 순간순간들을 그림 속에 터뜨리듯 묘사한다. 지난달 25일부터 서울 소격동 학고재 본관, 신관에 차려진 신작전 ‘상(象)을 찾아서’의 주요 출품작들은 오직 자신의 주관적인 기억과 인식에서 끄집어낸 풍경들이다. 오랫동안 그려온 제주의 대자연이 여전히 등장하지만, 화면을 단색 혹은 여러 색이 얽혀든 추상적 이미지로 메워버린 작품들이 많다. 화면들은 생경한 것 같아도 생생하다. 밤하늘 우레처럼 쏟아지는 빗방울의 속도감이, 부서지는 파도의 물방울 방향까지 눈에 선연히 들어올 듯하다. 이런 생생함은 가까이 갈수록 형상이 사라지고 어둡고 밝은 색면과 선들의 엉킴만이 보이는 화면의 심연에서 온다.

2017년작 <상강(霜降)>.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 절기 상강 무렵의 노을진 하늘과 구름의 역동적인 풍경을 담았다.
2017년작 <상강(霜降)>.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 절기 상강 무렵의 노을진 하늘과 구름의 역동적인 풍경을 담았다.
화면의 심연을 풍부하게 하는 건 단연 질감이다. 깔깔하고, 퍼석퍼석하고, 성기고, 미끈하고, 재글거리는 등의 다기한 느낌으로 제주 자연의 기억을 화폭 속에 온전하게 살려내는 구실을 하고 있다. 구름 사이로 은은한 노을빛이 쏟아지는 <풍광>을 시작으로, 한라산 정상의 눈덮인 모습을 담은 길이 3m 넘는 <항산>(2017), 파도가 바위를 치고 부서져 내린 풍경을 담은 ‘치솟음’(2017) 등의 그림들은 형상 대신 색조와 선이 엉킨 질감 묘사에 집중한 산물들이다. 특유의 도구로 애용해온 구겨진 종이붓이나 빗자루 등으로 분방하게 휙휙 터치한 선들이 이런 효과를 극대화한다. 작가는 “형태가 없거나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이미지를 ‘추상(抽象)’으로 보는 미술계 선입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추상의 본래 말뜻은 이미지를 뜻하는 상(象)을 밖으로 끄집어낸다(抽)는 것이며, 자연과 역사를 품은 마음을 끄집어낸다는 추상의 본령을 좀더 명확하게 드러낸 것이 이번 출품작들이라는 게 작가의 말이다.

한라산의 하늘이나 우레비가 쏟아지는 풍경의 세부에 들어가면, 온갖 역사의 풍상을 겪고서 비틀어져 버린 피부나 고목의 등걸 같은 잔 이미지들을 만나게 된다. 작가가 80년대 이래 4·3항쟁 같은 제주의 역사를 눈을 보고 답사하고 경험하며 쌓은 인식과 시선으로 손을 움직여 나온 결과물들이다. 형상이 없다기보다 제주의 역사가 깃들고 작가의 시선이 닿은 관찰의 기억들이 오래도록 축적된 대상물의 내장 같은 속내들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강 작가는 그 질감의 정체를 “제주의 숭숭 뚫린 현무암 같은, 따뜻한 인간의 마음”으로 풀었다.

흰 눈밭 속 까마귀 떼를 그린 <설오(雪烏)>.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작법으로 그린 소품이다. 삶에 가까운 일상의 소소한 세계로 점차 시선을 돌리고 있는 작가의 최근 변화를 보여준다.
흰 눈밭 속 까마귀 떼를 그린 <설오(雪烏)>.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작법으로 그린 소품이다. 삶에 가까운 일상의 소소한 세계로 점차 시선을 돌리고 있는 작가의 최근 변화를 보여준다.
또하나 주목되는 것은 고양이나 까마귀, 왜가리, 작업실 주변의 정물 등 가까운 일상의 여러 풍경과 동물들에 애착을 갖고 그린 소품그림들이다. 까마귀 떼나 길냥이들을 담은 선화풍의 그림이나 좋아하는 반찬으로 두부, 오이 등을 적어내렸던 추사 김정희의 대련 글씨를 그대로 재현한 듯한 오이, 두부의 정물 그림에서도 주변의 사물들로 점차 눈길을 돌리고 있는 최근 작가의 마음을 읽게 된다. 17일까지 열리는 1부에선 강 작가의 신작들을 선보이고, 22일~다음달 15일엔 그간의 역사화를 모은 2부 성격의 회고전이 이어진다. 유명한 4·3항쟁 연작을 비롯한 작가의 주요 역사화들을 모아 선보이는 자리다. 02)739-4937.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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