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와 얼굴들을 만난 시간은 밤 9시였다. 그것도 불타는 금요일 밤, 9시.
하니 티브이 스튜디오의 조명이 환하게 켜졌다. 녹화를 앞둔 스튜디오는 언제나 그렇듯 약간의 어수선함과 설렘이 겹쳐져 있었다.
사실, 2집 앨범 ‘장기하와 얼굴들’로 돌아온 장기하와 얼굴들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고 싶은 마음의 욕망은 6월부터 시작됐다. 그들을 찾는 곳이 많아 기다리고, 기다리기를 한 달. ‘아자!’는 드디어 ‘앗싸!’가 되었다.
홍대 라이브 신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음악인을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인 ‘착한 콘서트 두드림’은 웹 친화적인 방송을 제작하기 위해 러닝타임이 15분으로 정해져 있다. 15분 안에 채우지 못한 이야기를 10문 10답으로 정리했다.
주연은 “진심을 담았다”는 이야기를 세 번쯤 강조한 장기하와 “외모와 아무런 상관없이 뽑았다”고 했던 ‘얼굴들’을 캐스팅했다. ‘얼굴들’은 ‘미남’이었다. (직접 확인하시길)
이제 막 존재감을 드러낸 ‘얼굴들’을 소개한다. 웃음이 많은 베이시스트 정중엽. 기타 연주는 기본이고 앙증맞은 표정으로 코러스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는 이민기. 언뜻 보면 드럼을 칠 것 같지만, 건반 위를 날아다니는 가녀린 손가락을 가진 이종민, 그리고 진짜 드러머 김현호가 함께했다. 다음은 ‘장기하와 얼굴들’과 나눈 10문 10답이다.
하나, 2집 앨범과 뮤직비디오가 화제입니다. 뮤직비디오 직접 출연을 하기도 했는데, 연기 경험이 있었나요?
장기하 : 연기 경험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봉숭아학당의 오서방 역할을 했습니다. (좌중 폭소)
- 두 편(그렇고 그런 사이, 티브이를 봤네)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는데,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장기하 : 사실, 영상을 제작해본 경험이 없었어요. 제가 보기엔 괜찮은데. 뮤직비디오를 공개했을 때, 반응이 어떨까? 솔직히 걱정을 많이 했죠. 다행히 참신하고, 독특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힘을 많이 얻었고요.
요즘 굉장히 뿌듯한 것은 몇 분이 올려주신 영상을 보면 미취학 아동들이 ‘그렇고 그런 사이’ 뮤직비디오 화면 앞에서 따라하는 장면이 있더라고요. 야, 이거. 이제 텔레토비와 경쟁해볼 수 있겠구나! (웃음) 생각했죠.
- 첫 연기 도전인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장기하 : 다른 사람의 뮤직비디오를 위해 연기해야 됐으면 어색했을 것 같아요. 촬영 현장엔 어느 날의 제 진심이 완전히 담겨 있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고, 그게 어느 날의 저 자신이니까 거기에 맞춰서 그 분위기에 맞는 걸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티브이를 봤네’ 후반부에 박장대소를 해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장면은 고민이 많았죠. 주위 사람들 중에서 가장 웃기는 사람을 떠올리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둘. 장기하씨 1집 활동 때와 다른 모습입니다. 안경을 벗고, 수염을 밀었습니다. 이유가 있나요?
김현호(드럼) : 2집 활동을 시작하기 전이었어요. 어느 날, 장기하씨가 수염을 밀고 왔더라고요. 또 어느 날엔 안경을 벗고 왔죠. 그래서 지금 이러고 있는데 (웃음) 제 생각엔 어느 날, 집에서 수염을 밀고 안경도 벗고 거울을 봤는데, ‘어~ 괜찮다.’라고 스스로 생각을 했을 거예요. 맞습니까?
장기하 : (망설이다가) 맞습니다. (좌중 폭소)
셋. 1집 앨범 ‘별일 없이 산다’와 2집 앨범 ‘장기하와 얼굴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장기하 : 1집 앨범의 작사·작곡·편곡은 제가(장기하) 혼자 도맡아서 했기 때문에 하나의 밴드 앨범이라기보다는 한 명의 싱어 송 라이터 앨범의 성격이 더 강했던 게 사실이죠. 이번 앨범은 멤버 5명과 앨범 프로듀싱을 같이 해준 하세가와 요헤이(김창완 밴드 기타리스트)씨까지 참여했습니다. 같이 편곡 작업을 했고요. 녹음 같은 경우도 모두 다 같이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합주하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더욱 밴드적인 음악이 됐고, 다양한 색깔이 조화를 이루는 다채로운 앨범이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넷. 멤버별로 앨범 수록곡 중에서 마음에 드는 곡을 골라 소개해주세요.이민기(기타) : 타이틀 곡 중의 하나인 <그렇고 그런 사이>가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에요. 장기하씨가 곡을 써왔고 처음에 들었을 때, 이 노래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했죠. 정말 재미있는데, 나 말고 누가 이 노래를 듣고, 좋아할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노래이기도 해요. 알고 보니 멤버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나는 좋은데, 다른 사람은 누가 좋아할까? 어느 날부턴가 저도 그렇고 멤버들이 후렴구를 부르고 있는 걸 보고, 이 모든 걸 관찰하던 하세가와 요헤이 형님이 “그러니까, 이 곡을 타이틀 곡으로 해야 된다”라고 말했죠.
>> 미리듣기 ♪ 그렇고 그런 사이
김현호(드럼) : <날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란 곡을 좋아합니다. 이 곡은 기하씨가 데모곡을 가지고 왔을 때와 최종적으로 앨범에 실린 음원이랑 가장 많은 차이가 있는 노래에요. 편곡과정에서 많이 열려있던 노래였죠. 어떻게든 멤버들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많았고, 공연 때도 열려있는 상태로 연주합니다. 그래서 연주할 때도 재미있습니다. >>미리듣기 ♪ 날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장기하 : 저는 뭐, 제가 작사와 작곡을 했기 때문에 다 좋은데요. 최근에는 <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가 좋습니다. 가장 최근에 만든 곡이기도 하고요. 이 곡을 만들었을 때, 그래 이제 10곡 찼으니까 앨범을 내자고 결심했죠. 이 노랠 만들고 나서 뿌듯하다는 생각을 했죠.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 노래입니다. >>미리듣기 ♪ 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정중엽(베이스) : <깊은 밤 전화번호부>를 꼽겠습니다. 성인이 되면서 학교 다닐 때와 달리 친했던 친구들과 소원해지는 경우도 있잖아요. 술 한 잔 하고 싶은데, 늦은 시간에 전화하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부담도 되고, 지금 연락하는 걸 오해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되죠. 그 과정을 담은 노래란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그런 경험도 있고, 경험하신 분들도 많으니까 공감대가 형성될 것 같아요. >>미리듣기 ♪ 깊은 밤 전화번호부이종민(키보드) : <뭘 그렇게 놀래>를 좋아합니다. 이 곡은 첫 곡인데요. 일단 가사 자체가 자신감 있고요. 앨범 포문을 여는 느낌이 좋아요. 이 곡을 연주할 때, 클라비넷(전자 키보드의 일종)을 쓰는데, 악기에 기타 와우페달을 걸어서 연주했어요. 그런 요소가 재미있었어요. >>미리듣기 ♪ 뭘 그렇게 놀래-본인의 연주가 가장 빛이 났다는 얘기인가요? 이종민 : 뭐, 꼭 그런 얘기는 아닙니다. (웃음)다섯. 키보디스트 이종민씨는 1집 때, 장기하와 얼굴들의 멤버가 아니었죠? 세션 멤버였는데. 2집을 통해 정식멤버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장·얼에 합류하게 되었나요? 이종민(키보드) : ‘킹스턴 루디스카’라는 스카밴드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장기하와 얼굴들 1집 때, 객원 멤버로 건반 세션을 맡았습니다. 소속감을 많이 느끼고 있고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웃음) 세월의 흐름 속에 이렇게 섭리대로 왔구나 싶어요. 이것은 나의 운명이다. 아버지 태몽이 장기하! (좌중 폭소) 아무튼 재미있게 신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기하 : 이렇게 긴 얘기 중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는지는 포함이 안 됐네요. 3집엔 말 잘하는 키보디스트로… (웃음) 여섯. 음악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가요? 장기하 : 무엇보다 하나마나 한 음악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남들이 이미 많이 한 건 또 할 필요가 없잖아요. 가사로 따지면 누구나 다 알고, 누구나 많이 노래로 했던 건 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냥 독특하기만 하고, 그 이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걸 또 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최근에 정중엽(베이스)씨 아버지가 좋은 말씀을 해주셨는데) 예술 창작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너무 익숙해서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것을 낯설게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저희가 만드는 음악도 익숙하면서도 낯선 음악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일곱. 얼굴들에게 묻습니다. 용의주도 ‘전략가’ 장기하. ‘이럴 땐, 정말 다른 사람 같다’ 싶을 때는 언제입니까? 이종민(건반) : 늘 가던 길을 모를 때요. 확실히 ‘길치’의 성향이 있어요. 다른 말로 길눈이 어둡다고 하죠. 아, 신은 공평하구나! 이민기(기타) : 밥을 다 먹고, 밥이 남으면 모아두잖아요. 그걸 보면서 ‘맛있겠다’란 얘길 꼭 해요. 정중엽(베이스) : 굉장히 치밀한 사람이에요. 음악적인 면에서는 편곡에 대한 전략도 잘 짜는 사람이고, 방송을 한다든가, 공연을 하는 상황에서도 저희는 웃고 떠들고 있는데, 혼자서 생각을 하고 있어요. 배울 점이 많고, 대단하기도 하고. 김현호(드럼) : 바로, 옆에 두고 ‘장기하를 칭찬합시다’를 하고 있네요. 장기하 : 아, 이거 괜찮은데요! (웃음)여덟. (팬 질문)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장기하 : 마음이 있다면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합니다. 아직 전화번호도 모르고 있다면 일단 전화번호 알아내야 합니다. 말을 안 해봤으면 말을 해봐야 하고요. 데이트를 안 해봤으면 해봐야 하죠. 해볼 건 다 해본 다음에 도저히 안 될 것 같다 생각되면 그때는 깨끗하게 포기하면 됩니다. 아홉. (팬 질문) 장기하와 얼굴들처럼 재미있게 사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장기하 : 사는 건, 항상 선택의 연속이잖아요. 두 개 중 하나, 혹은 세 개 중 하나를 선택해서 길을 가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항상 안전한 선택만을 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이유 없이 위험 속에 자신을 던질 수는 없지만 (웃음) 사실, 저는 앞날에 대한 두려움엔 보통 실체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굉장히 걱정을 했던 위험도 그 시기를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 걸로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소위, ‘지른다’고 하잖아요. 가끔 그렇게 해보면 삶이 더 다채롭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편이라서 여러분도 그렇게 해보시면 어떨까요? 김현호(드럼) : 저는 평소에 재미있게 살고 있지 않습니다. 최근에 가장 재미있었던 게 단독공연 때였습니다. 재미있는 추억이 필요하시면 장기하와 얼굴들 공연에 오시면 됩니다. (장기하 : 오예!) 그러면 같이 재미있어질 겁니다. 공연에 이미 오셨는데, 또 다른 재미를 찾고 싶으시면 다음 공연에 또 오시면 됩니다. 이종민(건반) : 저렇게 정신을 차리고 사는 사람이 있어요. (좌중 폭소) 열.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장기하 : 2011년도 절반이 지났는데, 나머지 절반은 장기하와 얼굴들이 책임지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공연 함께하셔도 무조건 재미있는 시간을 만들어 드릴 자신이 있으니까, 결국 공연 보러 오시란 얘기네요. (웃음) 8월 26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올림픽공원 88호수 수변 무대에서 장기하와 얼굴들 2집 발매 기념 앵콜 콘서트 ‘장기하와 얼굴들-우리는 그렇고 그런 사이’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가을에는 지역을 돌면서 단독 콘서트를 계획하고 있고요. 가깝게는 7월 31일 지산밸리락페스티벌 마지막 날에 무대에서 만나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수진 피디 jjinpd@hani.co.kr 사진/두루두루 에이엠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