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1980년대 후반 무렵이 그 시작인 것 같다. 현란하고도 가벼운 이미지의 댄스가 이전보다 적극적인 문화 아이템으로 소비되기 시작한 것이. 이때 댄스 음악을 이끈 삼두마차는 소방차, 김완선, 박남정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동방신기, 이효리, 비쯤 된다고 해 두자. 물론 지금에 견주면 아주 소박하지만.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하면, 김완선과 박남정은 댄스 키드들의 우상으로 각광받으며 남녀 댄스 가수로 쌍벽을 이루는데, 그들은 세칭 ‘한국의 마돈나’ 혹은 ‘한국의 마이클 잭슨’으로 회자되곤 했다.
물론 비유는 비유일 뿐이지만, 이 시기의 댄스 음악이 마이클 잭슨으로 대변되는 브레이크 댄스의 수혜자들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박남정이 플로어에서 슈트 차림에 모자를 들고 ‘문워크’를 선보이던 모습이 눈에 선한 이들도 있으리라. 이들의 춤을 비교하면, 가령 소방차가 큰 스케일에 힘을 가미해 애크러배틱한 남성적 춤(가령 공중에서 마이크 던지고 받기, 공중회전하기 등)을 보여 주었다면, 박남정은 작은 체구에 걸맞게 유연하면서도 절도 있는 동작과 민첩하고 ‘발 빠른’ 아기자기한 춤을 전매특허로 내세웠다.
박남정은 1988년 봄 〈아 바람이여〉로 혜성처럼 데뷔해, 같은 해 늦가을 두 번째 음반을 발표하면서 인기 절정에 이르렀다. 그 중 대표곡인 〈널 그리며〉는 코믹스러운 고갯짓과 손놀림의, 일명 ‘ㄱㄴ 댄스’로 전국적 인기를 얻었고, 그 여세를 몰아 〈사랑의 불시착〉으로 계속적인 인기를 얻으며 명실공히 1980년대 댄스 음악의 지존으로 군림했다. 그는 2집 앨범에 수록된 몇몇 곡들을 작사·작곡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은 새로우면서도 새롭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새로운 세대로 불린 댄스 키드들(의 음악) 역시 1970년대 음악 계보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김완선의 음악이 이장희, (산울림의) 김창훈의 손길을 거쳐 탄생했다면, 박남정의 음악은 안치행과 김기표 등의 손길을 거쳤다. 안치행 작곡의 〈아 바람이여〉나, 김기표 작곡의 〈사랑의 불시착〉 〈안녕 그대여〉 등처럼. 굵직한 그룹사운드 출신인 안치행과 김기표가 직접 음악 비즈니스계에 나서 성공을 거둔 사실에 대해서는 이전에 소개한 것으로 대신하자. 박남정과 소방차뿐 아니라 여러 가수들의 음악을 통해 김기표나 김명곤, 이호준 등 그룹 출신의 뮤지션들이 작·편곡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점도 수차례 이야기한 바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1970년대 말, 80년대 초에 유행한 이른바 ‘트로트 고고’의 잔향이 박남정의 노래에 진하게 남아 있다는 점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단적으로 말해 트로트풍의 단조 선율과 쿵짝거리는 고고 스타일의 리듬이 결합된(또는 트로트 고고가 진화한) 댄스 버전이라 할 만하다. 빠른 댄스 리듬이 ‘뽕끼’ 가득한 선율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곤 하는데, 박남정의 나름(!) 구성진 보컬까지 여기에 가세한다. 이를 두고 ‘토착화한 댄스’ 등으로 규정하는 것은 부르는 사람 마음이겠지만.
최지선/대중음악 평론가